미식의 이해 (9)-재료론 3편, 단백질 2편(가금류와 양 등)

한국에 꼬꼬면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꼬꼬뱅’이 있다. 둘 다 닭을 바탕으로 삼았지만, 족보가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전자가 닭‘맛’ 라면이라면 후자는 닭으로 끓인 스튜다. 슬프게도 일종의 토사구팽격 요리다. 늙어 더 이상 암탉 무리를 거느릴 수 없게 된 수탉을 주로 썼기 때문이다. 세월의 무게만큼 살도 질기기에 와인에 재웠다가 천천히, 오래 끓여야 한다. 그래서 꼬꼬뱅(Coq au Vin, 수탉과 와인)이다.

긴 조리 시간 등으로 원래 쉽지 않은 꼬꼬뱅이 요즘은 더 어려운 요리가 되었다. 물론 닭이 문제다. 이제 노계는 먼 친척뻘인 봉황처럼 전설의 동물 취급을 받는다. 생산성과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닭을 짧게 키우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5~8주, 평균 6주면 도마 위에서 성인식을 치른다. 어린데다가 운동도 안 해 육질이 부드러우니 오래 끓여댈 거리가 없다. 대신 맛도 없다. 가뜩이나 셰프들에게 ‘빈 캔버스’ 대접을 받는 닭의 맛은 이제 0으로 무한 수렴한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 요리, 특히 파인 다이닝에서 닭의 자리가 흔들리는 건 절대 아니다. 없어서는 안 된다. 사실 ‘빈 캔버스’에는 긍정적인 의미도 담겨있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맛의 중심과 두께를 잡아 다른 재료의 맛을 살려준다. 물 대신 닭 육수를 쓰는 이유다. 고기 또한 마찬가지다. 쓰임새의 측면에서 닭을 비롯한 가금류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나눠 가진다. 첫 번째는 상징성이다. 통으로 조리해 내면 보기에도 좋고 부위마다 다른 맛이며 식감도 선사한다. 칠면조부터 닭을 지나 비둘기나 메추리까지, 통째로 냈을 때 나오는 그림이 있다.

두 번째는 식감과 맛의 대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껍질의 존재다. 건강을 염려해 벗겨 먹는 요즘 추세는 사실 모두에게 비극이다. 껍질, 보다 정확하게는 살과 껍질 사이의 지방이 맛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벗겨내는 건 결국 얼마 없는 맛의 뿌리를 뽑는 셈이다. 요즘은 먹어도 대세에 지장 없다는 연구 결과가 대세니 믿고 먹어도 좋다. 다만 반드시 지방을 녹여내 겉(껍질)은 바삭하고 얇게, 속(살)은 부드럽게 먹어야 믿은 보람이 산다. 그래서 통닭구이를 비롯, 모든 가금류의 조리는 껍질을 최대한 바삭하게 살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누글누글하게 남겨두느니 차라리 벗겨버리는 게 낫다. 한편 통으로 굽지 않는다면 가금류는 말아주는 게 껍질과 살의 조화 및 대조를 살리는데 제격이다. 그 대표가 프랑스의 ‘발로틴(Ballotine)’이다. 닭을 손질해 다리살로 무스를 만들어 가슴살과 전체 껍질에 넣고 만 뒤, 실로 묶어 소시지 비슷하게 형태를 잡아서 굽는다. 이탈리아의 ‘인볼티니(Involtini)’도 비슷한 조리법인데, 주로 가슴살을 쓰고 껍질 대신 프로슈토로 감싼다.

봉황이 닭의 먼 친척뻘이라면 오리는 사촌 정도라 할 수 있을까? 조금 섣부른 판단이다. 고기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트 등에서 썰어 파는 오리 가슴살을 보면, 빨간 게 흡사 돼지고기 같다. 사실 맛도 비슷하다. 모두 느린 떨림 근육(slow-twitch muscle)이기 때문이다. 닭과 달리, 오리는 날 수 있다. 따라서 운동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해주기 위한 단백질인 ‘미오글로빈(myoglobin)’이 근섬유에 많으니 색이 붉고 맛도 진하다. 비둘기, 메추라기도 마찬가지다. 반면 닭은 가슴살을 비롯한 대부분의 근육이 빠른 떨림 근육(fast-twitch muscle)이다. 운동량이 적고 ‘글리코겐(glycogen)’이 많아 색도 맛도 옅다. 그래서 하얀 고기(white meat)다.

결국 오리, 특히 가슴살은 껍질이 붙은 포유류의 고기나 다름없다. 그래서 주요리의 단백질로 식탁에 오르는데, 양쪽의 특성을 모두 살려야 하므로 기본이되 어렵다. 따라서 불앞에 선 사람의 기본기를 파악하기에 좋다. 껍질은 바삭하되 속에는 붉은기가 남은 미디엄 레어 정도로 굽는데, 차가운 팬의 바닥에 껍질-칼금을 긋는다-이 붙은 면이 닿도록 올려 천천히, 오래 구워 껍질과 살 사이의 지방을 녹여 낸다. 제대로 굽지 않으면 껍질과 살 사이에 지방이 두껍게 남아 있다. 이런 오리 가슴살을 우리나라에서 꽤 많이 만났다. 한편 신맛과 살짝 감도는 특유의 쓴맛이 지방을 덜어주므로, 오렌지는 오리와 두운은 물론 맛에서도 좋은 짝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달고 끈적거리는 소스로 오명에 시달리는 신세지만 ‘오렌지 소스의 오리(Duck a L’Orange)‘라는 고전 요리가 있다. 구운 오리에 오렌지 소스를 곁들이는 프랑스 요리가 1960년대 영국으로 건너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나이 많은 여성이 어리게 보이도록 옷을 입은 경우, 영국에서는 ‘Mutton dressed as lamb’이라는 표현을 쓴다. 양에 있어 어린이(lamb)와 어른(mutton)의 구분은 중요하다. 그 특유의 향이 매력의 선을 넘기 때문이다. 파인 다이닝에서는 주로 양갈비를 많이 쓰는데, 반드시 갈빗대에 붙은 살과 지방, 근막을 다듬어 손질해 보기 좋게 만든다. 이를 영어로는 ‘french’라 일컫는데(양갈빗대를 다듬다-french the lack of lamb), 요리용어로 흔히 쓰지만 의외로 유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렇게 손질한 양갈비는 통으로, 또는 두 짝을 합쳐 왕관 모양으로 오븐에 굽거나 한두 대 단위의 ‘찹(Chop)’으로 썰어 팬에 굽는다. 오리와 마찬가지로 양 또한 붉은기가 남아 있도록 미디엄 레어로 익혀야 한다.

-월간 <젠틀맨> 2013년 6월호

 by bluexmas | 2014/01/18 14:19 | Tast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