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토마토소스=헛수고

어디에선가 우연히 집에서 끓이는 토마토소스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미안하지만 헛수고다. 하지 않을 것을 권한다. 이유는 물론 아주 간단하다. 토마토가 맛이 없다. 원래 토마토의 맛은 굉장히 복잡하다. 채소로 분류하지만 달고 시고 짠맛도 있으며 글루탐산 때문에 감칠맛도 난다. 이런 토마토를 끓여야 농축된 맛의 소스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건 맛도 향도 별로 없는 가운데 신맛만 두드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유야 당연히 여러 가지다. 일단 품종 자체가 날로 먹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할 뿐더러, 전 세계적으로 유통의 편의를 위해 빨리 따는 경향도 한 몫 거든다. 대부분 퍼럴때 따니 두면 색깔이 들기는 하지만 진한 맛은 나지 않는다. 이런 토마토를 사다가 끓이면 신맛만 두드러져 별로 맛도 없는데다가 색깔도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주홍색이 된다. 게다가 손도 꽤 많이 간다. 그냥 끓여서 되는 게 아니니 일단 끓는 물에 데쳐 껍질을 다 벗겨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끓이고 또 갈고… 그냥 밥에 반찬 한 두 가지라도 잘 챙겨놓고 먹는 편이 낫다.

게다가 토마토는 그렇게 싼 채소가 아니다. 한 여름에 올가에서 1kg 10,000원짜리 토마토를 사다 먹었는데 이것도 맛이 너무 없는 것들이 몇 주 연속으로 오는 가운데 가격도 두 배로 뛰어 끊었다. 사진의 토마토는 목포에 놀러갔다가 공판장에서 kg 5,000원에 산 것인데, 향도 질감도 맛도 올가의 것보다 훨씬 좋지만 역시 소스를 끓일만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런 토마토를 끓여 소스를 만들겠다고 한 보따리 사봐야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뿐이다. 하루 세 끼 토마토 소스만 먹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이태리나 미국산 토마토 통조림을 인터넷에서 사다 쟁여두었다가 그때그때 따서 쓰는 편이 훨씬 더 낫다. 400g 넘는게 3,000원.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한편 이탈리아산의 경우 ‘산 마르차노’의 것을 최고로 치는데, DOC로 보호받고 가짜가 훨씬 많다.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파는 것들도 잘 보면 ‘산 마르차노 스타일’ 운운하지만 진짜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먹을만은 하니까 우리나라 토마토와 맛을 비교해보시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스 끓이기 그 자체에 대한 의심. 국산이든 통조림이든 굳이 소스를 만들겠다면 어쩔 수 없는데, ‘이태리 할머니’ 운운하면서 오래 푹푹 끓일 필요가 없다. 통조림이라면 이미 한 번 익힌 것이므로 피자 등을 만든다면 그냥 손으로 으깨거나 프로세서로 갈아 올리기만 해도 된다. 죽어도 직접 끓여야겠다는 경우라도 길게 잡아 한 시간 이상 끓일 필요가 없다. 이를테면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할때까지 끓인다’고 말하는 건 참 쉬운데,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건 그 향 화합물이 이미 재료에서 빠져나와 공기에 섞였음을 의미한다(초콜릿이 가장 좋은 예. 베이킹을 하는데 냄새를 맡는다면 그건 이미 ‘게임 오버’). 오래 끓이지 않고, 막판에 발사믹 식초 등을 조금 더해 끓여 닳은 단맛과 신맛의 귀퉁이를 다시 벼려준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어설픈 정보로 스타일만 흉내내는 것보다 이것저것 찾아보고 몸을 덜 움직이는 편이 바쁜 이 세상에서 훨씬 더 스스로에게 도움된다. 음식 몸으로 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맛도 없는 토마토로 이런 거 한 냄비 끓여 먹는다고 굳이 음식 잘하는 것도 아니다. 육수 등 오래 끓여 만드는 요소를 쓰는 문화다보니 이런 것들도 같은 시각으로 접근하는데, 좋은 재료가 없고 값도 싸지 않으니 굳이 직접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헛수고는 개인의 자유지만 그게 엄청난 정보나 지식, 혹은 라이프스타일의 구축인 것처럼 널리 퍼뜨리지는 말자. 미련해보인다.

 by bluexmas | 2013/09/11 15:15 | Taste | 트랙백(1) | 덧글(26)

 Tracked from 푸른별출장자의 먹고 살.. at 2013/10/13 23:01제목 : 토마토들 그리고 토마토 소스

"수제" 토마토소스=헛수고 미대륙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토마토는 감자, 고구마, 고추, 옥수수와 함께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스페인과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의 무역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새로운 음식들이 탄생하게 했으며 지금은 원산지인 남미에서 볼 수 없던 품종들까지 많은 변종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육이오동란을 거치면서 고추가 없는 한국 음식을 상상……more

 Commented by 훌리건스타일 at 2013/09/11 15:27 

헌츠를 씁시다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2

네 좋습니다 (…)
 Commented by 도넛 at 2013/09/11 16:43 

맞아요 경험자로써 오래걸리고 신맛만 나요…ㅋㅋㅋ큐ㅠㅠㅠ 맞는말만 집어 써주셨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2

원래 맛없으니 끓여도 맛 없지요.
 Commented by znee at 2013/09/11 16:58 

국내에 유통되는 토마토들이 소스를 만들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에 동의 합니다.

혹시 방울토마토나 대추토마토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3

방울토마토는 완숙해서 따는데 얘는 또 단맛 위주입니다. 게다가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중노동이죠…
 Commented by 배길수 at 2013/09/11 18:08 

생으로 먹기 싫은 상태의 토마토 뚝뚝 썰어서 김치찌개에 물 대용으로 넣는다면 모를까(…) 허망하더라고요 진짜 ㅋㅋㅋㅠ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3

아 그런 쓰임새도 있네요. 허망한 맛입니다.
 Commented by fthero at 2013/09/11 18:23 

한국산 토마토는 가볍게 데치는 정도로 하는게 좋고, 원래 토마토 소스를 내는 토마토는 품종 자체가 다르죠..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품종이라고 보는게 나을 듯.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3

네 그쪽은 길쭉한 plum tomato죠.
 Commented by 애쉬 at 2013/09/11 18:27 

통조림 토마토에 국산 생토마토를 다져넣어 말씀 하신대로 ‘신맛을 벼려준다’+신선한 맛으로 통조림 맛을 살짝 가려주는 조리법이 괜찮더군요

‘맛있는 조리법’과 ‘맛있을 것 같은 조리법’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것이죠

이게 더 진화해 ‘맛있을 수 밖에 없는 조리법’이 되면 이게 참….. 혀가 할 일이 없어지네요 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3

아 그런 방법도 있군요. 역시 애쉬님은 아는 것도 많으시고^^ 뭐든 집에서 손으로 만든다고 좋은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럼 밭을 가꿔야죠.
 Commented at 2013/09/11 19: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3/09/20 01:54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유영하다 at 2013/09/11 20:37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토마토는 요리용이 아니죠 ㅠ_ㅠ 윗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통조림 토마토 + 국산 생토마토 조합이 딱 좋아요! 토마토 넣는 요리를 할 때는 빨간색 방울토마토 넣으면 그나마 좀 나은 것 같더라구요ㅎㅎ 대추토마토는 물이 많아서….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4

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시도하고 좌절하셨다니 ㅠㅠㅠ
 Commented by 호모덕질 at 2013/09/11 20:51 

정말 유용한 말씀 해주셨네요. 전에 방울토마토 한상자 떨이하길래 솔깃해서 충동구매했다가.. 처치곤란이 되어버려서 토마토 소스 만들었는데, 그닥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거든요.-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4

네 게다가 껍질을 벗겨 줘야 하는데 그게 또 엄청난 일이지요…
 Commented by 사과쨈 at 2013/09/12 00:19 

헛수고 한번 하고 두번다시 안하기로 다짐했답니다 ㅋㅋㅋ ㅠㅠ 스파게티로는 진짜 영 아니라서 걍 스프찌개로 끓여버렸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5

네 고추가루 얼큰하게 푸셨는지요…?
 Commented by 어벙 at 2013/09/13 10:39 

토마토 스프 만들려다가 핫소스 스프를 연성한 비운의 기억이 생각나네요.

우리나라 토마토는 왜 그리 맛없을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5

생식용인데 맛도 없는게 더 기가 막혀요.
 Commented by pachi at 2013/09/14 05:59 

저희 동네 토마토 농원에서 130종의 토마토를 재배한다고해서 놀랐어요. 얼마전에 자가 토마토 축제도 했다던데 ㅠㅜ 놓쳤어요 으흑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5

네 토마토 엄청 종류 많죠… 다음 해에는 꼭 드셔보세요 ㅠㅠ
 Commented by Ithilien at 2013/09/15 22:57 

저도 따라해보려다가 어머니께서 이걸로 해봐야 토마토만 버린다고 이전에 직접 시도하신 경험담을 말해주셔서 바로 포기했던 기억이듭니다.

역시 그냥 생으로나 먹어야….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09/20 01:55

네 그것도 간신히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