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타르틴- 과대평가 파이
작년 가을, ‘펠앤콜과 타르틴은 과대평가 되었다’는 요지의 트윗을 날렸다가 타르틴의 한국인 셰프라는 사람과 언쟁(?)을 벌인적이 있었다. 트윗을 그대로 옮겨와야 가감없이 그 상황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 기억에 의존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옮기자면 이렇다. 그보다 훨씬 더 전에 타르트를 먹었는데, ‘필링’은 차치하고서라도 크러스트가 지나치게 단단했다. 버터향이 물씬 풍기는게 재료에 별 문제는 없었으므로 포크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크러스트는 더욱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혹시 반죽을 너무 많이 치대 글루텐이 발달했나?’였다.
트윗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했더니, 검색으로 발견했는지 타르틴의 셰프가 멘션을 보냈다. 이후의 대화를 간략히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그: 반죽을 많이 치대서 그런 게 아니라, 쇼케이스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설사 그렇다고 쳐도 그 정도로 딱딱하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부러 두 번 구워 딱딱하게 만드는 비스코티를 빼고는 그 정도로 딱딱한 서양 과자는 없다. 파이 크러스트는 ‘flaky’ 해야 한다.
여기에 그는 르 꼬르동 블루의 레시피로 만드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며, 파이 크러스트의 ‘flaky’함이 뭔지 정확하게 모르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가장 미국적인 파이를 파는데 웬 코르동 블루의 레시피? 나는 원래 그 타르트가 나이 지긋한 미국인이 그의 오래된 레시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그 반응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그렇게 소모적인 논쟁을 겪고 나니, 내가 혹시라도 놓치고 있는 게 있는지 확인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인가 타르틴에 들러 블루베리 파이를 사와서는, 여전히 그렇게 딱딱한 걸 반으로 갈라 랩으로 싸서 각각 냉장실과 실온에 두고 다음날 아침 먹어보았다.
미국 가정식의 상징과도 같은게 파이지만, 사실 파이는 절대 쉬운 음식이 아니다. 다 크러스트 때문이다. 파이, 타르트, 퍼프 패스트리 등의 반죽은 밀가루를 쓰되 그 핵심인 글루텐의 발달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일반 빵처럼 물을 더해 많이 치대 글루텐 사슬을 발달시키면 반죽이 질기고 단단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터, 쇼트닝, 라드 등의 지방으로 밀가루를 감싸, 그 글루텐 사슬을 짧게 끊어(shorten) 준다. 그래서 ‘쇼트닝’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런 반죽을 오븐에 넣으면 버터가 녹고 수분이 증발하면서 그 자리가 비어 공간이 생기는데, 이 공간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방으로 감싼 반죽들이 낱낱이 부서 또는 흩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flakiness’의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이 포스팅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밀푀유의 그 패스트리다. 이렇게 조각조각 부스러진 입자들은 결국 바삭함으로 치환되어 부재료들의 부드러움과 대조를 이뤄 어우러지는게, 이것이 바로 각종 패스트리의 매력이다. 뻣뻣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동시에 바삭해야하는, 이 모순적인 특성을 한꺼번에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파이 크러스트는 사실 가정식의 범주에 무작정 집어넣기에 어려운 음식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에서도 사과 파이 크러스트의 비법(?)을 밝히기 위해 원작자가 여러 번에 걸쳐 취재하는 과정이 나온다.
다음날 아침, 각각을 비교해보자 역시 실온에 두었던 것이 훨씬 더 부드러웠다. 최소한 그 단단함이 어느 정도 보관 때문이었다는 건 사실이었는데,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처음 먹었을때도 파이의 크기에 비해 테두리의 골을 너무 크게 잡았고(보통 손가락으로 골을 만들기도 하지만 포크로 눌러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 정도로 작은 파이라면 그 방법으로 섬세하게 골을 잡아야 균형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또 그 테두리에 비해 바닥이 얇다는 느낌이어서, ‘분명 반죽을 같은 두께로 밀어 은박접시에 올렸을텐데 어떻게 두께가 다를 수 있지?’라며 궁금하게 여겼는데 그 답은 두께의 차이가 아니었다.
파이라는 음식이 어려운 이유 또 한가지는, 뚜껑까지 씌우는 ‘더블 크러스티드 파이(double crusted pie, 전형적인 사과파이를 연상하면 된다)’가 아닌 경우 크러스트를 미리 구워 익힌 다음 속을 채우고 마저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블라인드 베이킹(blind baking)’이라 부르는데, 버터가 녹고 수분이 증발하면서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은박지를 깔고 콩, 동전, 아니면 제과재료상에서 파는 ‘pastry weight’ 등으로 눌러 굽는 번거로운 과정이다. 게다가 반죽을 밀어 접시에 올리고 골을 잡은 다음, 굽기 전 30분 정도 냉동실에 휴지시키는 것이 정석이니 그것까지 감안하면 크러스트만 놓고 보아도 파이는 정말 보통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아니다.
사진을 보면 크러스트의 바닥에 블루베리 모양으로 자국이 나 있는데, 이는 블라인드 베이킹을 했다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게, 손바닥만한 크기의 파이를 몇 백개씩 만드는 상황이라면 여기에 은박지든 뭐든 깔고 누를 것을 올리고 굽고 또 걷어내고 속을 더하고 다시 굽는 과정이 보통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블라인드 베이킹을 건너 뛴다면, 최악의 경우 바닥이 완전히 익지 않아 과일 속과 바닥이 닿는 부분은 아예 익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상태가 어째 그래보이지 않는가? 단면을 보면 속이 맞닿는 부분이 덜 익어서 하얗다. 질척하게 깔려 있는 부분을 벗겨내면 골을 잡은 테두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얇은 바닥이 드러난다. 만약 블라인드 베이킹을 한 건데 저렇다면, 또 하나의 가능성은 속의 부피를 맞추기 위해 블루베리에 섞은 전분 등이 바닥에서 익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이 파이의 바닥은 질척하고 눅눅하며 생밀가루 맛이 나는게, 최악이었다.
핵심은 간단하다. 파이는 만만한 음식이 아니다. 따라서 제대로 만들어서 파는건 힘들다. 제대로 안 만들면 이렇게 된다. 그런데도 잘 팔린다. 처음 타르틴의 파이를 먹었을때 파티세리 미쇼의 것도 같이 먹었는데, 크러스트의 완성도가 훨씬 높았다. 하지만 파티세리 미쇼는 없어졌고, 레스토랑 또한 썩 잘되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최소한 멀쩡하게라도 만들어 팔려는 가게가 망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손님에게로 돌아온다. 맨날 하는 뻔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변함없는 현실이다.
# by bluexmas | 2013/02/01 12:39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27)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4/02/21 16:52
… 대해 나의 입장을 마지막으로 밝힐 필요를 느껴, 셰프에게 메일 전문 공개에 대한 승인 따로 받았다. ‘긴 글 작성’ 링크 아래 붙여 두었으니 그 메일과 작년 2월의 평가글을 미리 읽어보시라 권하겠다. 그래서 1년 전의 상황이 어떠했느냐… 이 소식을 들었을때, 나는 블라인드 해제 요청과 동시에 맞고소를 계획하고 있었 … more
예전에 제가 망친(..) 파이 바닥이 딱 저 모양이었.. 제가 만든 건 사과 버터 개떡이었지만요. ^^;;
타르틴 파이 먹으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겐 무리겠다며 웃었는데 좀 딱딱했어요 ㅎㅎㅎ
저도 가서 먹어봤는데 파이 피지라 해야 하나? 즉, 겉면이 좀 딱딱하더군요.
제가 평소 먹고 다닌 파이랑은 틀리게 딱딱해서 아, 여기는 뭐 다른 나라 스타일로 만들어서 그런가 싶었건만… 근데 가격은 비싼것 치곤 이태원까지 가서 먹어야 할 디저트 집은 아닌듯합니다. 이태원 가뜩이나 주차할곳 없는데…ㅡㅡ
친구가 맛나다고 해서 같이 간 게 처음이었는데 처음갔을때 파이는 안먹고 케이크 종류를 먹었거든요.
장사가 잘 되는건 터가 좋아서 그런거 아닐까, 싶어요 ㅎㅎㅎ
많이 배우고 가네요~
왜 내가 이제까지 먹어본 파이들은 다 건빵 수준이었을까…
나쁘지는 않았지만, 가격이 그리 저렴하지는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두 번 갈만한 가게는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근처에 있는 패션 5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
너무 달고 너무 뻑뻑해서;;;
베이스로 쓰는 패스트리 컵 자체가 에러네요.
유럽이나 미국 슈퍼마켓에 가면 패스트리 컵 미리 만들어 구워놓은 것들 다양한 크기로 많이 팔던데 거기에 필링만 채워서 구우면 파이 완성…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공장제 패스트리 컵만도 못해 보입니다.
버터값하고 오븐에 들어가는 가스료 전기료가 너무 비싸서 그랬나 싶다는…
유럽.호주.일본에서 7년동안 먹어본 타르트의 크러스트는 타르틴이 내놓는 크러스트의 맛이 아니였어요. 2008년에 첨 타르틴에 갔을때도 크러스트가 좀 딱딱했지만, 타르트를 대량으로 만들면서 딱딱함이 더 해진것 같더라구요.
사장 및 파티쉐가 각성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짜 타르트좀 만들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