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비채나-장고 끝의 (어쩌면 예상된) 악수
게을러서 후속 글이 늦었는데, 이 글은 최근 광주요에서 열었다는 “모던 한식” 레스토랑 <비채나>를 위한 것이었다. 바쁜 세상에 긴 글 같은 건 읽고 싶지 않은 분들을 위해 친절하게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비채나에서 먹은 음식 또한 이 글에서 지적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그 글에서 담고 있는 문제점이 깔아놓은 경로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
(배 무알콜 칵테일. 온도가 잘 맞았다. “꿀”이라는 칵테일은 아예 따로 ‘달다’고 설명을 달아놓았던데, 그런 설명 없는 이 칵테일도 충분히 달았다)
일단 가장 궁금한 건, 이런 식당을 계획할때 “모던” 한식이라는 것의 큰 그림을 어떻게 상정하는가다. 물론 이곳에서는 밥과 찌개 등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 등도 있지만(글을 쓸때 이런 부분을 다시 확인하려고 해도 홈페이지 같은 게 없다. 예약을 하면서 홈페이지의 부재에 대해 물어봤더니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뭔가 순서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레스토랑의 홈페이지 같은 걸 거의 만들지 않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지만 이 정도의 규모나 배경 등이라면 충분히 신경 쓸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음식을 보고 있노라면 소위 말하는 “코스”는 여전히 반찬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 시간차를 두고 따로 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바로 탄수화물의 부재다. 탄수화물이 없으면 맛의 조화나 균형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거의 강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밥이 나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설사 그런다고 해서 각각의 요리에서 탄수화물의 자리를 아예 들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양식으로 코스를 먹어도 항상 빵은 식탁 위에서 자리를 지키는데, 그건 포만감이라기 보다 단백질과 지방에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로 본다. 이런 종류의 한식에서도 잘 부친 밀전병이나 여러 가지 국수(메밀같은 종류까지 포함해서), 심지어는 당면까지 선택의 폭은 넓다. 궁리를 좀 한다면 포만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늘이 덜 익어서 아렸다. 먼저 가본 사람도 같은 이야기를 한 걸 보면 저 만큼만 구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두 번째는 전체적인 맛의 측면이다. 한편 이건 세계적인 경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현대적인 한식=최대한 가벼운 맛’이라는 접근 방법이 강박처럼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전통적인 음식을 현대화하려면 큰 그림을 보고 그 맛이나 조리의 핵심을 살릴 수 있는 접근을 하거나, 그럴 경우 스스로가 세운 철학 또는 콘셉트(여기에서는 이를테면 ‘최대한 가벼운 맛?”)에 어긋난다면 버리고 다른 방법론을 선택하는게 맞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결과물인 음식 자체가 일종의 모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그날 먹었던 은대구 조림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조림이라는 조리 방식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한다. 첫 번째는 직화로 굽는 등, 짧은 시간 동안 직접 조리할 수 없는 재료를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조리 방식이라는 측면이다. 서양 요리의 예를 들자면 기본적인 스튜나 오소 부코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치나 고등어 등, 짧은 시간 구워서도 충분히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생선을 굳이 조려야 하는지, 설사 우리가 오랫동안 써 온 방법론이라고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두 번째 측면을 생각한다면 그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능하다. 은근한 불에 푹 끓여 모든 재료의 맛이 한데 어우러진다는 측면이다. 생선에는 무를 비롯한 채소의 맛이 배어있고, 또 반대로 무에는 생선의 맛이 배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재료의 맛이 국물에 배어 있으니 밥을 비벼 먹어도 맛있는, 그런 성질이 조림이라는 조리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다.
하지만 그날 먹었던 은대구 조림에서는 이러한 조림의 장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고등어나 갈치는 그렇다 쳐도 왜 굳이 섬세하디 섬세한 대구를 조려야 하는지도 이해를 못하겠지만, 모든 재료를 따로 조리해 마지막에 국물을 조금 깔고 더한 것처럼 맛의 어우러짐을 느낄 수 없었으며 또한 조림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가벼웠다. 그래서 가볍다 못해 심심하고 또한 건조한 느낌이었는데, 42,000원짜리 코스에서 먹은 세 가지 요리가 공통적으로 그러했다. 첫 번째 나온 버섯 샐러드 또한 여러 가지의 버섯과 아보카도를 한데 담아 냈는데 어떤 소스나 드레싱(아니면 “한식”이니까 양념장)으로 한데 버무려 재료가 어우러진다기 보다, 그냥 이 버섯 따로, 저 버섯 따로 양념해 한데 담아낸 듯, 버섯마다의 간 또한 균일하지 않았다. 수분이나 기름 조금이 아쉬웠다. 게다가 연이어 나온 요리 또한 기름기 별로 없는 돼지 등갈비 구이였기 때문에 이 둘을 먹고 마지막으로 은대구 조림을 먹으니 전체적으로 너무 가볍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각각의 손님을 위해 작은 솥에 지어주는 밥. 돋보였는데 쌀알갱이의 탄력-쫀득함?-이 어느 정도여야 좋은 쌀 또는 밥이라고 할 수 있을 걸까?)
양념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는 보통의 한국 음식보다 가볍고 싱거운 요리를 내겠다고 결정했다면, 그 자체는 충분히 존중할 수 있다. 다만 통일성을 지키기 위해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만 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따져볼 수 있는데, 하나는 싱겁고 가볍게 조리하겠다면 모든 음식이 다 그래야만 한다. 식사와 함께 나온 반찬 세 가지 가운데 맨 왼쪽 시래기(?) 무침은음식 전체에서 이 식당이 그었을 거라 짐작하는 선을 꽤 넘어선 정도로 짰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정도 수준의 레스토랑이라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두 번째는 짠맛 외 다른 맛과의 균형이다. 우리나라 음식이라면 특히 매운맛이 어렵고 또 중요하다. 고추가루는 갈수록 매워지는데 짜게 먹으면 안된다고들 하니 소금은 적게 쓰면 균형이 깨진다. 이를테면 이날 먹었던 김치가 그렇다. ‘칼칼하다’라는 형용사를 주저없이 붙일 수 있었지만 지나치게 싱거워 맛이 없었다. 봉피양에서 김치 연구손가를 세워 만든다며 돈을 받고 파는 김치를 먹었을때 싱거운 것 아닌가, 생각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건 그것보다도 더 싱거웠다. 디저트에서 설탕을 지나치게 빼면 수분도 빠져 정체성을 잃듯, 김치도 짠맛을 너무 빼면 똑같이 정체성을 잃는 것은 아닐까?
이제 디저트로 넘어가보자. 예전에 무궁화에 대한 글을 쓰며 13만원짜리 한식 코스의 디저트가 호떡이라는 걸 비판했다. 그 정도의 수준과 가격이라면 길거리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호떡을 잘 만든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콘셉트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최고로 잘 다듬은 테크닉과 더불어, 그건 파인 다이닝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호떡을 예쁘게, 잘 구워서 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안일하다. 떡이며 유과, 약과 등등이 그래도 아직 명맥은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니,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한식 파인 다이닝을 표방한다면 디저트는 조금 더 정통 한식에 가까운 걸 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게 이렇게 자본을 가지고 레스토랑을 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식 같은 것의 가능성은 디저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여태껏 그런 걸 내는 레스토랑에 가본 적이 없다. 양갱이나 두유 묵 같은 디저트도 있었지만 내가 먹은 대추 마카롱이나 잣 타르트(따로 주문)는 개인적으로 그 전에 먹은 음식과도 궤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나마 대추 마카롱에는 대추 특유의 향이 잘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크러스트의 지방이 살짝 배어나오도록 따뜻하게 데워(물론 그럴 필요 없는-파이, 타르트 등은 상온에서 먹는 것 아닌가?) 내는 방법조차 모르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 잣 타르트는 좋은 재료를 썼다는 인상은 주었으되 거기까지일 뿐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기사에서 “고급식당이라는 틀에 맞춰 획일적인 인테리어를 하거나 한식을 세계화 한다고 해서 꼭 퓨전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비채나 대표의 인용구를 볼 수 있는데 대추 마카롱이나 잣 타르트가 퓨전이 아니라면 무엇이 퓨전인지 잘 모르겠다.
한편 같은 기사에서 “한식을 한식답게 하고 전통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차별화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인용구도 같이 읽을 수 있는데, 공간이나 서비스, 디테일까지, 적어도 그날 먹으면서 받았던 인상을 종합한다면 광주요의 두 번째 레스토랑 시도가 장고 끝의, 그것도 어느 정도는 예상된 악수는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점심을 먹으며 가장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부분은 디테일의 부재랄지, 쓸데없는 곳에는 신경을 지나치게 쓰고 정작 써야할 부분에는 무심한 일종의 엇박자 같은 상황이었다. 예를 들어, 막 공간에 발을 들여 놓고 자리에 앉으면 두, 세 사람이 바로 쫓아와 물을 따르고, 메뉴를 주고 호출기를 놓고 간다. 하지만 겨울인데 외투를 보관해주는 곳이 없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 꽤 넉넉하게 자리를 배치한 열린 공간에도 옷걸이 같은 건 없으니, 손님이 외투를 벗고, 접어서 빈 자리 등받이에 직접 올려 놓아야 한다. 가방 등을 보관하라고 직물(?)로 된 바구니까지 준비하는 세심함과 모순된다고 느꼈다. 나보다 나중에 온 옆자리의 손님이 물수건을 받길래, 물어보니 청하지 않아도 주는 것이라며 그제서야 가지고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생선의 경우 분명히 잔가시를 다 발라내서 손님이 뱉어내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되는데, 가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나중에 음식하는 분을 만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이상하지 않게 생각한다고 들었다). 이건 한식 파인 다이닝의 고질적이며 공통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요리마다 수저를 바꿔주지 않는다. 한편 세련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던 은(?) 수저는 너무 두꺼워 그다지 오목하지도 않은 접시 바닥에 간신히 깔린 조림 국물을 떠먹을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잣 타르트에는 챙이 두 개 달린 작은 포크가 딸려 나오는데, 일단 잣이 타르트에서 빠져 나오면 한 알씩 간신히 찍어야만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디저트라면 당연히 숟가락도 함께 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편 공간도 꽤 재미있었다. ㄷ 또는 ㅁ자 공간으로 가장자리가 열려 탁자를 놓고, 그 안쪽에 모임을 위한 방이나 주방, 화장실 등이 있던데, 일단 처음 발을 들여놓는 손님이 공간의 전환을 느낄 수 있는 전실의 부재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처음 건방지게 예약도 안하고 갔다가 만석이라고 해서 돌아왔는데, 자동문 바로 뒤에 직원이 서 있다가 만석이라고 해서 공간 자체에 아예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나가야만 하는 그 경험(조금 농담을 섞어서 말하자면 문전박대?)이 재미있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약을 하고 점심을 먹었던 날 또한 만석이었는데, 안쪽의 방에서 무슨 모임을 하는지 거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꽤 시끄러운 반면, 아주 열린 공간에 비교적 듬성듬성 앉은 홀의 손님은 그 공간의 특성 때문인지 비교적 조용조용히 밥을 먹었다. 원래 방이 시끄러운 홀로부터 거리를 두고 조용한 대화를 위한 공간이라는 일반적인 설정을 생각한다면 이 관계의 역전이 어쩌면 이 레스토랑의 정체성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말하건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지만 젊은 세대가 모처럼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 by bluexmas | 2012/12/04 13:14 | Taste | 트랙백 | 덧글(9)
물론 사람들마다 느끼는 만족도는 다르겠지만 반찬을 코스로 서브한다는 느낌은 모든 한정식에서 저도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더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비채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가온은 서너 번 맛을 봤는데..
제가 남다른 미각의 소유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최고급 원재료의 맛을 잘 모르겠더라구요.
거기다가 같이 간 사람들이 갈 때마다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가서 그런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서 매번 기분 좋게 식사하지는 못했었어요.-.- 아쉽게도…
비채나도 한식도 칭찬 많이 받았음 좋겠네요.
1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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