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디저트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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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설날에는 한식 디저트를 주문해 한 번씩 먹어보곤 했는데, 올해는 건너 뛰었다. 대신 초콜릿을 먹었다. 한식 디저트는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할까. 가장 먼저 생각할 건 역시 맛의 맥락이다. 한식에서는 단맛과 짠맛의 경계가 분명히 나뉘지 않는다. 끼니를 위한 음식에도 단맛이 개입한다는 말이고, 요즘은 디저트에 맞먹는 수준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양식 개념에 충실해 단맛을 몰아주는 디저트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먹을 수는 있다.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 전형적인 “한식”을 먹고 후식으로 스타벅스의 푸라푸치노 같은 걸 선택하는 경우를 대표적 예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먹는 이가 큰 피로를 느낄 수 있다.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의 디저트가 그랬다. 좋은 디저트였지만 먹기가 어려웠다. 식혜나 수정과는 기본적으로 좋은 디저트라고 생각하는데, 이 또한 현재 한식의 맥락에서 마지막에 먹는 음식으로는 너무 달다.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으나 맥락 탓에 밀린다. 여기에 후려치는 고추와 마늘의 매운맛까지 감안한다면, 궁여지책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과일이 차라리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요리라고 볼 수 없으며, 요즘의 단맛 추세로는 온갖 양념의 회오리가 거치고 지나간 입을 가셔주기에 역부족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 요리의 영역에 속하는 디저트를 한식의 영역에 편입시키려면,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할 건 질감이다. 일전에 젊은 한식 셰프와 디저트에 화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나는 전형적인 한식 디저트가 현대화 되면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역이 파인 다이닝이라고 생각해서, 다식 등을 메뉴에 검토할 수 없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질감이 걸림돌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무래도 식사의 마무리로는 일반적인 한국 음식처럼 씹어야 할 필요가 없는 질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모두들 씹는맛, 쫄깃쫄깃함 찾는 현실에서 바람직한 변화라고 보는데, 대신 책을 뒤지지 않고 일반적으로 쉽게 기억할 수 있는 한식 디저트 대부분은 입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부드러움을 기본 가치로 추구하거나 공기를 불어 넣는 조리법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떡의 대부분이 그렇고 유과나 다식도 마찬가지다. 작게 만든다면 플레이팅 디저트에도, 맨 마지막의 프티 푸르에도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 수는 있지만 같은 크기의 서양 디저트와 비교해보면 밀도가 높고 단단하다.

다음은 맛이다. 디저트가 식사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건, 단맛을 중심으로 지니는 맛이 먹고 싶은 욕구를 잘라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막말로 ‘임팩트’가 커야 한다. 많은 양을 먹지 않지만 표정이 깨끗하고 뚜렷한 맛이 이전까지 먹은 음식의 여운을 단칼에 잘라 해체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공간전개형’, 즉 모든 음식을 한번에 내는 한식이라면  더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한 선결 과제는 무엇일까? 단맛과 신맛 자체의 강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참기름의 역할을 재고해야 한다. 한식 전반에 걸쳐 안 쓰이는 곳이 없고, 떡 등 한과에서는 ‘글라사주’의 역할까지 맡지만 너무나도 개성이 뚜렷한 맛을 지니므로 의도하지 않은 맛과 향으로 영향을 미친다. 달리 말해, 전형적인 디저트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참기름의 느글거림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현대 요리에서 짠맛(savory)의 요소를 결합시켜 의도적으로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있으니 그 영역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소수의 예외로 보아야 한다. 일반적인 식사의 끝에서 제 역할을 하는 디저트를 위한다면 참기름은 썩 잘 어울리는 요소가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한식을 놓고 고민할 수 있는 방법론의 영역까지 생각이 미친다. 한식 방법론에 양식 재료를 도입하는 방향과 그 반대 방향 가운데 하나가 더 우월하다고 여길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 따지면 그렇지 않다. 묻지도 따지지고 않고 ‘맛있으면 그만 아닌가’ 카드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식 방법론에 양식 재료를 도입하는 것보다 양식 방법론에 한식 재료를 도입하는 쪽의 호환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것이다. 신맛의 가장 흔한 원천인 시트러스류는 기본이 생식 위주고, 깨 같은 재료는 디저트의 중심맛으로는 어울리는 표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런 종류의 맛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가셔주는 디저트의 역할을 맡기엔 어울리지 않아 막연하게 치환하는 것으로는 제 역할을 못한다는 말이다. 정식당의 흑임자 파운드 케이크나 예전 비채나의 잣 타르트 같은 것들이 그 자체의 완성도와 무관화게 좋은 디저트라 생각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식사의 맥락에서 떼어놓으면 좋을 수 있지만, 각각 제시하는 식사의 끝에서 먹는 것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같은 이유에서 이런 것 또한 한식 디저트라 볼 수 없다. 개념적 결합이 아닌,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솔직히 답이 잘 안 나오는 구석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고민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선택인 디저트의 특수성 때문이다. 끼니를 계속 먹어야 하므로 한식의 savory food 영역은 아주 느슨하게라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 디저트는 완전 선택이 가능하니 그럴 수도 없다. 그 결과 본 궤도에 올랐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서양식의 디저트가 더 익숙하다. 또한 패턴을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흔하지 않으니, 개개의 샘플은 각각의 특수성을 살피는데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특수성도 희소가치를 보면 특수할 수 있지만 맛을 직시하면 보편적이다. 현대요리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고민을 무색하게 만드는 초월적 개체의 존재의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건 너무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양 방향으로 한 가지씩의 예를 생각해보자. 기본적으로 한식인 디저트에 양식의 재료를 적용시킬 수 있는 경우라면 약과가 생각난다. 밀도에 변화를 주기는 어렵지만, 시럽에 담가 충분히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이때 레몬 등의 시트러스 즙을 섞어 신맛을 적극적으로 불어 넣으면 단맛과 균형이 잘 맞는다. 이미 일본에서 너무 잘 써먹고 있지만 유자가 있다. 또한 반죽에 스파이스 등을 더해 향을 불어 넣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튀긴 음식에 지용성의 스파이스라면 제 향을 내기에 좋은 여건이기 때문이다. 한편 양식 디저트에 한식의 재료를 적용시킨다면 100% 한식이라 보기 어렵지만(서양에도 있으므로) 모과나, 아니면 오미자 같은 재료를 생각할 수 있다. 향을 우려 내거나 즙을 쓴다면 젤리부터 아이스크림 등, 웬만한 서양식 디저트에는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다. 한편 쑥 같은 한국식 향신채를 굳이 쓰겠다면 삶아 으깨어 섞는 것보다는, 차라리 동결건조 등을 통해 가루를 내어 쓰는 편이 가루인 각종 기본 재료에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수분 제거로 인한 향의 강화 등으로 정체성이 한층 더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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