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셰프-조리학교와 셰프의 완성
(사진은 본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몇 년 전 뉴욕 여행에서 먹었던 WD-50의 수비드 삼겹살)
2009년 초, 만 4년 가까이 다니던 건축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평소에 음식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정리해고를 발판삼아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요리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출신 셰프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바로 그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였다. 학교와 프로그램에 관한 세부사항을 여기에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문턱이, 셰프들을 소개할 때 출신 학교부터 밝힐만한 정도로 높지 않음은 밝힐 필요가 있다.
요즘 파인 다이닝 계의 유행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젊은 <유학파 오너 셰프>이다. 그들의 소개는 거의 반드시, ‘OO요리학교 출신’이라는 머리말로 시작된다. 이렇게 젊은 요리사들은 벌써 완성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레스토랑을 차리고 셰프가 되어 음식을 내놓는 것일까? 셰프와 학력에 관한 논란은 에스콰이어를 통해서도 몇 번 소개된 바 있으니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셰프의 완성’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요리학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학교 존재 그 자체의 무용론을 펼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부터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물론 요리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요리학교에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교육은 도제 시스템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아직도 그렇게 일을 배워 조리를 하는 사람도 많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좋은 요리학교가 있다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단기간에 집중적인 교육으로 요리의 기본을 익히려면, 사실 학교만큼 좋은 선택도 없기는 하다. 돈을 내고 교육을 받는 것이니만큼 도제 시스템의 강압적인 분위기도 없다. 물론 학교를 마치고 주방에 취직하면 그 과정을 거치기는 하겠지만, 하루 종일 지겹도록 설거지만 하거나 감자만 깎으면서 요리 세계에 입문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위생이나 재료의 이해, 또는 요즘 한층 더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조리과학과 같은 이론 또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우리와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운다는 덤도 기다리고 있다. 사실 돈을 내는데 그만큼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도 맞는 이치는 아니다.
어쨌든 문제는, 조리학교가 셰프를 자동적으로 완성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리학교는 끝이 아니라 시작, 그것도 아주 미약한 시작일 뿐이다. 대부분의 직종이 그렇기는 하지만, 기술(craft)의 비중이 높은 직종일수록 일을 하면서 몸으로 익히는 지식의 비중이 높다. 요리도 그렇고, 건축과 같은 직종 또한 마찬가지다. 여담이지만, 대학 건축과에 처음 입학했을 때 학생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돌던 농담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 다 소용없다. 회사에 가면 연필 깎는 것부터 다시 배운다”였다. 연필 깎기처럼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각각의 상황에 맞는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의미였다.
요리 또한 마찬가지다. 학교를 벗어나면 모든 주방의 상황이 다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 상황에 맞춰 조정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한 이론, 또는 기술을 아는 것과 그것을 실제 상황에서 반복 시행하면서 항상 균질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식당 주방 조리의 최대 관건은 언제나 완벽한 결과물을 주어진,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학교에서 기르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요리학교에서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흉내 내고, 그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 주방의 토요일 저녁은 그런 상황과는 전혀 다른 은하계에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험을 단순히 시간으로만 치환해서 계산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일단 시간적인 수치만 따져보더라도 2, 30대에 셰프의 세계가 완성되리라고 기대하는 건 지나치다. 천재가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깝다. 레스토랑 셰프의 경우 남자가 대부분이니, A씨라는 가상의 인물을 한 번 설정해보자. 그는 현재 청담동에서 ‘분자요리를 바탕으로 한 모던 이탈리안’이라는 컨셉트로 자신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다. 나이는 서른 다섯, 요즘 한창 주목을 받는 오너셰프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형님급이다.
그는 원래 우리나라의 4년제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졸업, 1년 동안 회계법인에서 일도 했다. 하지만 ‘푸디(foodie)’ 또는 ’음식 오덕‘이라고 불릴 만큼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았고, 결국 다른 커리어를 위해 CIA의 문을 두드렸다.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군복무 또한 24개월로 마쳤으므로, CIA에 입학하는 시점에서 그의 나이는 대략 스물일곱 살이 된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가기 전까지, 1년 동안 아는 사람의 식당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돕는 아르바이트로 CIA입학의 필수 조건인 ’6개월 주방 경험‘을 채운다. 그래서 유학을 떠날 때 스물 여덟, 학사 학위를 이미 가지고 있으므로 21개월짜리 ’어소시에이트(associate)‘ 프로그램에서 공부한다. 결국 서른에 조리학교를 졸업한다. 그가 가진 요리 경험은 조리학교와 허드렛일 아르바이트가 전부다. 그러나 그는 5년 만에 셰프가 되어 자기 이름을 걸고 음식을 만든다. 과연 고작 그 기간동안 셰프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경험을 쌓는 것이 가능할까?
일단 가장 일반적인, 삶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A씨가 셰프의 길을 걷지 않고 회계법인에 남았는데,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서 나이 서른다섯쯤에 이사로 승진한다고 가정해보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인생의 경험 또한 지식의 수준과 궤를 같이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매체에서 젊은 사람들의 초고속 승진에 관한 훈훈한 미담을 더 많이, 자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 바깥쪽의 책임이 가중된다.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특히 그러하다. 이러한 능력은 단시간 내에 계발되지 않는다. 특히 셰프는 우두머리로서, 요리 그 자체보다 오히려 사람 다루는 기술을 갖추어야만 한다.
기술적인 측면은 짧은 기간 동안 더더욱 이루기 어렵다. 셰프의 완성이라는 것이, A씨처럼 우리나라 보통 남자의 궤적을 따르는 경우라면 5년과 같이 짧은 기간에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비단 양식에만 해당되는 상황도 아니다. 십 년도 더 전의 일인데, 남대문 근방 어딘가의 순두부집에 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있다. 주인의 젊은 아들이 일종의 후계자 수업을 받는데, 계속해서 순두부를 국자로 떠 뚝배기에 집어넣는 연습을 하는 장면이었다. 큰 국자로 부서지기 쉬운 순두부를 뜨는 일은 쉽지 않은데, 기대했던 것보다 순두부를 많이 부서뜨리자 주인의 질책이 뒤따랐다.
겉으로는 무형문화재며 장인 정신을 부르짖지만 사실은 그 모든 끈기며 기술의 결정체를 대우해주는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가 저런데, 일본은 어떨까? 또한 오래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장면인데, 라멘 집에서 가장 막내 견습생이 3년 동안인가 국자로 간장을 뜨는 것만을 보여주었다. 3년 동안 간장이라니, 웬만큼 끈기가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발도 들여놓기 싫은 삶의 현장이다.
비단 우리나라나, 아니면 일본에서만 이러한 종류의 도제 시스템을 거쳐 요리사를 양성하지 않는다. 서양 요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양 요리의 경우 하나의 음식, 또는 그 음식의 조합인 코스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선형적이다. 조리사 양성 또한 자연스레 이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한 서양 요리는 조리사 한 명이 요리를 이루는 요소 한 가지씩만을 만드는, 일종의 분업화가 철저하다. 이렇게 이루어진 요리를 손님상으로 내가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것이 바로 셰프의 역할이다. 심지어는 <라타투이>와 같은 만화영화에서도, 이러한 주방의 구성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접시 닦이-감자나 양파와 같은 야채 손질-고기와 생선 손질-불을 대치 않는 전채-야채 요리-소스-파스타-그릴-부주방장(sous chef)-주방장(chef)의 순이다(중간의 순서는 레스토랑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은, 고난이도의 기술 및 감각을 필요로 하는 조리를 맡는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일을 배우는 동안 사람 다루는 기술 또한 부가적으로 익히게 된다.
이렇게 대강 9~10 단계의, 주방 내에서 이루어지는 셰프 양성 과정을 A씨의 경우처럼 5년에 나눠서 이수한다는 가정을 해 보자. 각각의 단계에서 채 1년을 보내기도 어렵겠지만, 원한다고 해도 자신의 주방에서는 승격을 거부할 셰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머물러서는 필요한 만큼 배울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젊은 셰프들이 거쳤다며 소개 문구에 집어넣는 연수, 즉 ‘스타쥬(stage)’ 또한 몇 년짜리의 장기 프로그램이 아니다. 기껏해야 몇 개월짜리에 지나지 않는다. 잘 나가는 레스토랑의 경우 이름을 내주는 조건으로 공짜로 일을 시킬 수 있어 좋고, 요리사의 경우에는 그 레스토랑의 이름을 한 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 모든 경우를 조목조목 따져 본다면, A씨가 조리학교 이후 단 5년의 경력만으로 셰프노릇을 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지만,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할 때 겪을 수 있는 언어 문제(language barrier)는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셰프는 궁극적으로 기술직이라기보다 관리직이기 때문이다. 다른 업종에서도 유학을 거쳐 현지취업한 사람들이 승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직능보다 관리직으로서 요구되는 능력에서 언어 문제로 과소평가 당하기 때문이다.
요리학교를 통해 감자볶음 잘 만드는 법을 배우고 또한 한두 번 실습도 할 수는 있지만, 그것과 레스토랑에서 매일 100인분의 감자볶음을 주문과 즉시 늘 같은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또한 그렇게 요리학교에서 감자볶음 만드는 법을 배운다고 해서 감자 껍질을 빨리 벗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는, 다른 많은 직업들과 마찬가지로 조리 또한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은 그저 시발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가 되려면 반드시 일정량의 시간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학교 졸업 자체가 셰프의 능력을 인정하는 잣대처럼 매체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물론 외국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나이 서른에도 셰프가 되어 자신의 레스토랑을 꾸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경력을 들여다보면 빠르게는 중학교, 아니면 아무리 늦어도 고등학교 때부터 동네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거나 감자를 깎는다. 그 가운데 일부는 요리학교의 교육으로 지식을 습득하지만, 아직도 철저하게 도제 시스템을 통해 배우는 조리사들도 많다. 대학? 선택이지 필수는 아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거치기 때문에 서른 살 정도면 13~15년의 경력을 쌓게 되고, 지식은 물론 경험의 측면에서도 셰프로서 충분히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오너셰프는 레스토랑 경영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 무엇보다 셰프가 주인이 되어, 투자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미식세계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젊은 오너셰프들 또한 국내 파인 다이닝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측면과 요리학교, 특히 유학을 한데 묶어 셰프 완성의 기본 또는 필수조건이라고 여기는 현실은 잘못된 것이다. 새롭거나 실험적인 것과 설익은 것은 다르다. 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 기대도 채워주지 못하는 설익은 셰프들의 음식을 접할 때면 당혹스러웠다. 조리의 기본이야 그렇다고 쳐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라면 당연히 기대해야 할 컨셉트나 코스의 구성과 같은 것들에서 경험부족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 나의 돈이 설익은 그들의 연습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그런 식으로 셰프의 상품성을 가늠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도제 시스템을 거쳐 주방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느낄 상대적인 박탈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셰프의 완성은 여러 길을 거쳐 가능하다. 유학만이 능사가 아니다. 졸업장이 그 맛에 더 보탬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설익은 셰프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에스콰이어> 2011년 3월호
# by bluexmas | 2011/03/23 10:26 | Taste | 트랙백 | 덧글(13)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학벌” 이라는게 여러가지 분야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군요.
이건 커피도 비슷해서…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느니, 커핑수업 받아 큐 그레이더(커피맛 감별사) 획득했다느니, 바리스타 대회 몇등이니… 이런 거 걸어놓은 커피집 중 맛있는 곳을 못봤습니다;;
그게 출처가 여기였군요..^^;;
^^; 열심히 해야 하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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