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Payard에서 콩 구워먹듯 케이크 먹은 이야기
지난 수요일, 목란에서 그저 그런 저녁을 먹고 백화점이 여덟시 반까지 열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신세계로 급하게 갔다. 페이야드(‘파야르’ 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어라면… 뭐가 맞나?) 케이크를 먹어보고 싶어서였는데, 도착하니 여덟시 십분 전이었고 여덟시에 문을 닫으니 포장하러 오셨나고, 매니저로 보이는 분이 묻더라. 순간 싸갈까도 생각했지만 이왕 택시까지 타고 간 것, 그냥 잽싸게 먹어보자고 케이크 하나와 마카롱 두 개를 시켰다. 사실 양이 많아서 오래 먹는 게 아니라 비싸고 단 거니까 시간을 들여 즐기면서 천천히 먹고 싶은 것 아닐까… 빨리 먹어도 맛은 비슷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T_T
워낙 쫓기는 상황이라서 찬찬히 고를 수도 없었으니 그냥 눈에 바로 들어오는 이 ‘베르가못’ 이라는 케이크를 시켰는데, 얼그레이 초콜렛 무스(얼 그레이는 물어봐서 알았다. 생각보다는 아주 뚜렷하게 느낄 수 없었으므로… 아무래도 초콜렛의 향이 세면 차의 향을 느끼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의 사이에 딸기 또는 산딸기 퓨레가 들어 있었고, 그 주위를 스폰지가 싸고 있었다. 한 입 넣었을때 설탕미터가 10(목란에서 먹었던 탕수육 소스의 단맛이 아직 입에 좀 남아 있었다)에서 90까지 쭈욱 올라가는 느낌이었는데 뒷맛이 깨끗해서 쓸데없는 잔향이 없어 오랫동안 부담을 주지는 않는 단맛이었다(그러나 많이 단 편이다). 무스의 식감도 좋았고, 그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스폰지의 식감에도 불만이 없었다. 다만, 이렇게 부드러움으로 가득찬 케이크에 아무 생각없이 올린 듯한 초콜릿 장식은 두껍고 딱딱해서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주 얇게 펴 발라 굳힌 초콜릿이라면 와작와작 씹을 필요도 없고 더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딸기와 피스타치오 마카롱도 같이 먹었는데, 더도 덜도 아닌 마카롱맛이었다-_-;;; 엄청난 느낌이 오는 것도 아니지만, 또 못한 구석도 별로 없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원래는 이렇게 콩구워먹듯 케이크 하나를 먹는 것이 끝이었는데, 여기에 밝힐 수 없는 이유로 키 라임 파이를 하나 집에 가져오게 되었다. 키 라임 key lime은 플로리다의 키 웨스트 key west에서 따온 이름의, 보통의 라임보다도 더 작고 신맛이 강하며 껍질이 얇은 라임인데 그 동네에 가면 머랭을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아서 구운, 커다란 키 라임 파이를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키 웨스트에서도 키 라임은 거의 없어져서(태풍 때문이라던가…), 거기에서 재료로 쓰는 라임은 브라질 같은 곳에서 들여오는 곳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키 라임이 굉장히 시니까 단맛이며 머랭의 부드러움으로 균형을 잘 맞춰줘야 하는데 예쁘게 만드느라 그런지 머랭을 너무 조금만 얹어서 일단 그 부분에서 맛은 물론 식감의 균형이 좀 안 맞는 느낌이었다.
키 웨스트에서 먹었던 진짜 키 라임 파이의 사진을 찾았다. 이렇게 머랭을 수북하게 쌓아 구운 키 라임 파이는 레몬 커드, 또는 커스터드는 부드럽고 머랭은 입에 넣으면 약간 진득하게 녹는 느낌이 한데 어우러지고, 거기에 버터의 고소하면서도 풍부한 맛이 두드러지면서도 약간은 바삭바삭하고 또 약간은 조각조각 부스러지는 파이 껍데기가 전체를 감싸는 맛으로 먹는데, 머랭은 그래도 괜찮다고 쳐도 실온에서 먹지 않았을 때에는 껍데기가 너무 단단한 건 좀 실망스러웠다(실온에 좀 두었다가 먹으면 괜찮았다). 거기에다가 조금 더 고급스럽게 만들고 싶었는지 껍데기와 커드 사이에 피스타치오라고 생각되는 견과류를 한겹 깔았는데, 고소한 맛이 그럭저럭 어울리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없어서 입에 넣으면 모든 재료가 사르르 녹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역시나 꼭대기에 얹은 큰 레몬조각과 초콜릿은 보기에는 좋아도 맛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장식이어서 아쉬웠다. 레몬즙을 파이에 짜서 먹을 것도 아니고(혹시 진짜 키 라임 조각을 얹은 건 아닐까 싶어 맛을 보았는데 솔직히 레몬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키 라임은 익으면 노란색으로 변한다고는 하지만, 거의 모두 파랬을때 딴 것일텐데 만약 장식으로 얹은 건 레몬이라면 파이의 라임즙은 병에 담긴 걸 들여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가격이 비싼-두 가지 모두 7,700원. 가격이 저런 것은 아무래도 부가세를 미리 붙인 것?-음식이 다 돈 값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재료를 가지고 장난친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맛에도 큰 불만이 없었다. 단, 단품 케이크에 저 정도 가격이면 정말 만만치 않은 편인데 조금 더 궁극의 세공 같은 걸 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평범한 느낌이었으니까. 다음 번에 가면 위에 얹은 장식이 진짜 키 라임인지 레몬인지 물어봐야 되겠다.
# by bluexmas | 2010/01/08 13:29 | Taste | 트랙백 | 덧글(43)
그래도 위에 무스케이크는 참 맛있어보이네요 ㅎㅎ
비공개 덧글입니다.
그리 강하게 신 맛일 것 같진 않구..
그나저나 한입거리 크기인 듯 한데 가격 정말 강력하네요-_-;
서비스는 굉장히 좋지만 그렇다고 마실것을 시키자니 아깝고 이것을 싸가자니 미묘한 아쉬운 곳이에요 ㅠ
하지만 또 생각만 그렇지 후다닥 먹어치우고 스스로 놀랄 때도 있으니까 같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것같아요T^T
GF1 사진 좋게 잘 나오네요:D
카메라가 돈값하는 것 같아요 🙂
비공개 덧글입니다.
항상 궁금했는데 사진 감사해용..맛도 궁금은 하지만 ㅠㅠ
헤밍웨이가 즐겨 먹었다던 느낌의 키라임 파이라면 이태원의 타르틴을 추천합니다. 여기도 근데 비싸다는 단점이-_-^
저 머랭이 엄청 많은 키 라임 파이 진짜 맛있어 보이네요;
반가운 마음에 댓글 남겨요.
페이야드가 처음에 들어왔을때 ‘섹스앤더시티’에 나왔던!이라고 홍보가 되서 이거 완전 된장녀 컨셉이군!이 첫인상이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갔을때 맛보기전부터 선입견에 평가부터 해버리는 오를 범해버렸었답니다.ㅋ 그러고 한 2년을 안가다가 최근에 다시 가게 됬는데 정통 프랑스제과를 하는 곳이라서 아주 맘에 쏙 들어버렸습니다. 요즘에 카페들이 왠지 제과에 정통한 곳은 많이 보이질 않고 베이킹을 어느정도 하시다가 휙 카페를 열어버리는 곳들이 많이 봐서인지.
이렇게 공들인 제과를 하는 곳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과를 공부해서 케익을 보면 참…손 많이 갔구나 정성이 많이 들어갔구나 하는 케익을 알아볼수 있는 내공정도는 아주 쬐끔은 쌓여있는데요. 페이야드는 매우 매우 손이 가면서, 고급 재료를 쓰면서, 단순하지만은 않은 케익들이더라고요.
그래도 뭐 그냥 제과 공부 안하신 일반 손님들이 먹었을때 와 맛있다.!가 나와야하는게 중요하긴 하죠.ㅋㅋㅋㅋㅋ
암튼 요기서 저도 이것 저것 먹어봤는데요 다음번엔 애플 타틴 한번 먹어보세요.
사과가 너무 달콤하고 쌉사름하면서도 아삭하게 캬라멜리제되어 있어서 넘 맛있었어요.^^
제 페이야드 글도 링크해두고 갑니당.
http://blog.naver.com/ena277/90078098255
이글루스에서 외부 블로그로 트랙백이 되면 좋겠네요!
신세계 본점쪽에 가니까 빠야드님의 책도 3권 있더라고요. 팔지는 않고…
참고로. 뉴욕에 있는 페이야드는 이제 문을 닫는데요.ㅠ 이제 다른컨셉으로 다시 오픈을 한다고 하네요. 주워들은 바로는…초콜렛샵이라 했던것 같은데.
그리고 저 레몬 타르트는 왠지 머랭이 한가득 올라가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너무 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의미에서 bluexmas님은 진정 디저트를 즐기실만한 혀를 가지셨군요.ㅎ 단맛의 공격에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혀가 아니실런지…
결론은..페이야드 케익 들어가는 내공과 재료비에 비하면 비싸진 않은것 같은데
커피값이 눈물나게 비싸요.ㅠ
1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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