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용 칼 고르는 요령+저렴하고 좋은 칼 소개
언젠가 가볍게 썼던 것 같은데, 누군가 말씀해주시기도 했고, 나도 쓰고 있는 칼에 대한 글을 한 번 써 보고 싶어서 다시 정리해 올린다.
주방용 칼 고르기
하루 종일 아이들과 남편 잘 먹일 궁리만 하시는 어머니들이 아니더라도, 음식을 만들다 보면 조금 더 편하게 일을 하기 위해 도구 욕심이 생기게 마련인데, 역시 그 도구 욕심의 으뜸은 칼에 품게 된다. 손에 쥐기 편하고 가벼우며 잘 드는 칼은 재료 준비를 훨씬 쉽게 만들어 주니까. 그렇다면, 대체 어떤 칼을 골라야 하나? 아니면, 어떻게 칼을 골라야 하나? 지금은 마음에 드는 칼을 저렴하게 사서 쓰고 있지만, 한 때 칼에 돈 투자를 좀 해 볼까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봤었는데 그걸 종합해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할 수가 있다.
1. 웬만하면 셋트로 사지 마라: 사람들에게 ‘쌍둥이 칼’로 잘 알려진 독일제 행켈이나 워스트호프(발음이 맞나?)같은 칼을 셋트로 사서 칼을 담는 나무틀 째 부엌에 떡허니 놓으면 주인도 마음 뿌듯하고, 집에 누군가 놀러오더라도 뭔가 있어 보이는 건 사실… 그러나 이렇게 파는 칼이 하나씩 낱개로 칼을 사는 것보다 돈은 적게 들지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가격이 만만치 않으며 또 어떤 칼은 사실 잘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Tony Bourdain이나 또 다른 음식 평론가 Micheal Ruhlman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책이나 블로그에서, 일단 식칼-Chef’s Knife’ 라고 불리는-하나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과도’라고 부르는 Paring Knife 정도 하나만 갖추면 적어도 80-90%의 부엌 칼질을 소화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2. 유지관리가 쉬운 칼을 사라: 위에서 언급한 행켈이나 워스트호프 같은 칼은 고탄소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런 칼들은 사실 가정보다는 언제나 칼을 많이 쓰고 유지관리를 잘 할 수 있는 식당 주방 같은 곳에서 쓰기 더 적합하다. 특히나 유지관리 측면에서 이런 칼들은 전문적인 손길을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아무리 음식을 많이 해봐야 식당 주방과 같은 빈도로는 쓰지 않는 가정에서는 사실 그 가격까지 생각해서 볼 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요즘 나온, 합금의 일종인 바나디움을 쓴 칼들이 가볍고 손질하기도 좋아서 점차 고탄소강으로 만든 칼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일본의 상표인 Global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가격은, 행켈보다는 싸지만 역시 만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 칼은 독특한게 날과 손잡이가 거의 일체처럼 되어 있다(보통은 날의 끝부분이 가늘게 뻗어 나와 그 양쪽을 나무나 플라스틱이 싸서 손잡이가 이루어진다. 이 손잡이가 망가지지 않는 것은 칼의 기본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천 구백원짜리 중국제 도루코 식칼로 이런 면에서는 별 흠잡을 데가 없다).
3. 손에 맞는 칼을 사라: 같은 맥락에서, 행켈이나 워스트호프 같은 칼들은 사실 굉장히 무겁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무게가 적당히 나가는 칼을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나, 정말 칼이 식당 주방에서 거대한 서양인들이 하루에 감자 백 만개씩 깍뚝썰거나 고기 십 만근씩 자르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 손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가장 좋은 선택 방법은 역시 손에 쥐어본 다음에 살 수 있는 곳에서 차근차근 고르면서 사는 것이기는 하지만, 또 이게 생각보다는 쉽지 않다. 백화점 같은데에 가서 비싼 칼들을 산다면 모를까, 이마트 같은 곳의 칼들은 다 포장되어 있으니까(재래시장이나 도매상가 같은 곳의 상황은 나도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저렇게 무거운 상표의 칼들을 빼고는 그냥 적당히 사서 적응하는 편을 택한다. 그래봐야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칼질 할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니까.
보통 칼을 칼질하는 자세로 잡고, 두 어번 채써는 동작을 취해보면 칼이 무거운지 가벼운지 느낌이 오는데, 이때 생각해봐야 할 것은 균형. 보통 칼질이라는 게 도마에 칼을 대고 앞 뒤로 칼날의 곡선을 따라 움직여 주면서 자르는 식재료를 그 칼날 움직임의 수직으로 밀어 넣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균형이 안 맞으면 그 칼날의 움직임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손이 큰 사람이라면 칼날이 너무 좁을 경우 자신의 손가락 두 번째 마디 관절이 도마에 닿게 되는데, 이건 절대 피해야만 한다.
뭐 엄청난 진리가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정리라고 해 봐야 저 세 가지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사실 비싸지 않은 칼이라도 쓰고 잘 씻어주고, 가끔 날의 방향을 잘 잡아준 다음, 일 년에 한 두어번 정도 칼 갈아주는 곳에 가서 갈면 오래오래 쓸 수 있다고 한다. 집에서 칼날 방향을 바꿔주는 건 언젠가 한 번 따로 올리기로 하고… 칼 갈아주는 건, 동네 이마트 정육점에 가 보니 매주 월-목요일 오후 네 시까진가 칼을 가져오면 갈아준다고 한다. 정육점이니 칼도 제대로 갈아줄 듯. 늘 늦게 가서 한 번도 맡겨본 적은 없는데, 곧 실행에 옮길 계획.
그럼, 칼 고르는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저렴하고 좋은 칼 소개-Victorinox R H Forchner
사실 나도 행켈은 아니지만, 위에서 언급한 Global과 같은 상표의 칼을 하나쯤 사고 싶었는데, 저렴하다고 해도 20 센티미터 식칼이 100불이니 그렇게 단번에 지르지 못한 채 오랫동안 망설이고만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음식 만드는 걸 아무리 좋아해도 칼질을 하루에 몇 시간씩 하는 건 아니니까, 우선지출순위에서 칼은 늘 뒤로 밀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던 와중에 아무 생각없이 아마존을 뒤지다가 저 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일단 이 칼은 중국산이 아닌 그 스위스 육군 칼을 만드는 상표 빅토리녹스가 직접 스위스에서 만드는 것으로 미국에서는 음식 및 레시피 오덕 집단인 America’s Test Kitchen의 주방칼 비교시험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그런 칼이었다. 실제로 이들의 요리프로그램을 보면, 모두 이 칼을 쓴다.
그런 얘기를 주워듣고, 또 원래도 30불이니 말도 안 되게 싼 칼을 반 값인 15불에 판다고 해서 20센치미터짜리 식칼을 낼름 사게 되었는데 정말 이 칼은 소문대로 뛰어난 칼이었다. 일단 뭐 잘 드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고탄소강이기는 하지만 가벼운데다가 fibrox라는 향균 인증된 플라스틱으로 만든 손잡이는 전통적인 칼들의 나무나 플라스틱 손잡이보다 훨씬 더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져 손에 쥐기 편하고 또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가격은… 내가 샀을 때 15불이었고 할인을 하지 않아도 30불. 아마존의 고객평가를 뒤져보면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만점을 준 가운데, 믿을만하게도 몇 수십년을 식당 주방에서 음식을 하던 사람도 온갖 비싼 칼을 쓰다가 이 칼을 써 보고서는 낼름 바꾼 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는 얘기도 종종 있었다. 그러므로 집에서 하루에 한 두시간 칼질하는 사람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선택… 이라고 쓸 생각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못 구하는 칼 괜히 좋다고 얘기했다가 욕 먹는거 아냐?’ 라고 생각했는데, 동네 이마트에 이 칼이 떡허니 있는 걸 발견했다. 가격은 식도와 과도-그러나 날이 깔쭉깔쭉해서 일반 과도의 용도로는 쓰기 뭐할 것 같은-로 된 한 셋트가 이만 구천원.
핸드폰으로 대강 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쌍둥이인지 모르는 옆의 쌍둥이가 오만 구천원인 것으로 미뤄 보아, 이 칼의 가격이 비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중국제 아닌 스위스제. 인터라켄에 가서 스위스 눈 덮인 산 꼭대기에 올라가 신라면 드실 여유가 안 되는 분이라도 이 칼로 스위스의 장인정신이나 정취를 맛볼 수 있으실듯. 나는 직업인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 칼에 삼만원 못 되는 돈 쓰는 정도는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다. 물론 이 칼 제조 혹은 수입업자로 부터 돈 같은 것 받은 적은 절대 없다.
각설하고, 위에서 말한 칼을 한참 쓰다가 들어오는 김에 다시 칼 욕심이 생겨서 뭔가 하나 사 볼까- 라고 또 아마존을 뒤지던 차, 이 칼의 셋트가 무려 행켈 식칼 하나 정도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빵칼이나 뼈 바르는 칼 등등도 이제는 필요하던 차, 눈 딱 감고 지르고, 거기에 일본에서 유래된 식칼의 변형인 산도쿠(한자로는 어떻게 쓰는거냐?)를 하나 더 30불에 사서 곁들였다. 사진과 함께 칼들을 간단하게 설명하면(오른쪽부터 왼쪽으로),
1. 10″ Slicer: 이 긴 칼은 식재료를 위에서 아래로 눌러서 자르는게 아닌, 앞 뒤로 밀어서 자른다. 과일이나 야채 같은 단단한 재료가 아닌, 빵반죽같이 물렁물렁한 재료, 또는 같은 물렁물렁한 재료지만 부서뜨리지 않고 얇게 썰어야만 하는 훈제 연어 따위에 쓴다. 아주 자주 쓰게 되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으면 쓸모는 있다.
2 8″ 빵칼: 그야말로 빵칼, 1의 슬라이서와 비슷하지만 차이라면 이 칼은 겉은 딱딱하나 속은 부드러워서 그 누르는 힘이 표면을 지나고 난 다음에는 약해져야만 하는 경우에 쓴다. 빵도 그렇고, 예전에 동영상을 올린 적이 있는데, 토마토를 썰 때 제격이다.
3. 8″ 식칼: 칼들의 대장? 가장 많이 쓴다.
4. 6″ 산도쿠: 사실 요즘은 이 칼을 식칼보다 더 많이 쓴다. 일단 가볍고, 길이도 적당해서 보통의 썰기에도 쓸 수 있지만, 조금 더 유연함을 필요로 하는, 뭐 예를 들면 뼈에서 고기를 발라내는 것과 같은 경우에도 쓸 수 있다. 날의 홈은 재료가 달라붙지 말라고 파 놓은 것이라고.
5. 뼈 바르는 칼: 네모난 중국 식칼로 토막을 쳐도 좋지만, 이 칼이면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통닭을 사다가 자유자재로 뼈를 발라내서 쓸 수 있다.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칼은 아니다. 없어도 그만, 특히 토막쳐서 파는 닭을 사는 걸로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축산물 시장에서 뼈로 부터 고기를 발라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종류의 칼을 쓴다. 뼈 사이로 칼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칼날이 굉장히 얇고 잘 휘어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6. 과도, 혹은 paring knife: 손잡이가 너무 길고 두툼해서 쓰기 좀 불편한게 이 칼 셋트의 유일한 문제점.
7. 부엌가위: 무려 프랑스산이던데, 날은 잘 들지만 움직임이 좀 뻑뻑하다. 기름칠이라도 해야할 듯. 그렇게 편하지는 않다. 특히 손잡이가.
8. 칼쇠: 엄밀히 말하면, 이 쇠막대기는 칼날을 갈아주지 않는다. 칼을 쓰다 보면 사람의 손버릇이랄지, 칼날 움직이는 방향 때문에 뾰족한 칼날 끝이 아주 미세하게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는데, 그걸 바로 잡아주는데 쓰인다. 그러므로 실제로 칼을 가는 건 숫돌을 써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넣어 보관할 수 있는 나무토막. 비싼 행켈처럼 나무가 고급은 아니고, 싸구려 말레이지아 산이라 모아서 담아두어도 그렇게 뽀대는 나지 않는다. 뭐 안 나도 개의치 않지만…
그럼, 이것으로 칼에 대한 얘기는 당분간 안 해도 될 것 같고, 다음에 또 글로 쓸만한 주방용품이 또 있을까?
# by bluexmas | 2009/07/24 11:27 | Taste | 트랙백 | 덧글(24)
이마트 칼갈이 서비스는… 저도 워낙 칼에 민감한데다가 어머니가 쓰시는 행켈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눈에 띄더라구요.
칼도 잘 안 들고 귀찮음에 가위로 식자재를 험난무식하게 다뤄주고 있는데 저런 도구 구비해두면 써는 재미가 있겠어요
또 다른 주방용품이라고 하시니 생각나는건데 홈쇼핑 보고 믹서기 구입하면 다 시원찮게 갈려요 덕분에 믹서기만 5개가-.-;
뭔가 괜찮은 제품 없을까요..역시 비싼 걸 사야 했나요 음;
어, 하지만 저 칼꽂이는 무섭습니다. 모 공포영화에서(데스티네이션일겁니다) 본 뒤로 저건 무서워서 집에 못 둡니다.;;;; 그 영상을 본 뒤로 트라우마가 생겼나봅니다.
이미지가 안 나와서 안타까우신 분들은 기존 블로그로
http://killjoys.egloos.com/4195649
수정했는데 지금은 보이는지 모르겠네요. 덧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