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문

1987년 6월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민주 항쟁이 한참이었던 어느 날 하교길, 버스를 탔는데 수원 구시가지에서 인파로 버스가 완전히 멈춰섰다. 당시의 버스 운전기사들은 과격 운전에 욕도 서슴치 않는 거친 이들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멈춰 선 버스의 기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시대와 상황의 엄중함과 심각함을 이해한 몸짓이었노라고 아직도 이해하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밤 11시, 나는 생애 두 번째 계엄을 경험했다. 45년만의 이번 느닷없는 계엄령 선포로 나는 깊은 모욕감을 느꼈다. 살기 어렵고 힘든 삶이며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 대다수는 밖에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갔을 때 안도감을 느낀다. 우리가 때로 의식하지 않거나 의식할 필요가 없는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막이 작용하기 있기 때문이다.

설사 일시적으로 나 개인의 안위가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막이 작용하고 있다면 우리는 최대한 빨리 이전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다. 그것은 사회 더 나아가 국가가 각 성원에게 제공해야 하는 안전장치이다.

이번 계엄령 선포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렸다. 우리는 이제 적어도 당분간, 사회 성원으로서 각자 맡은 과업을 다하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더라도 예전과 같은 안도감을 느낄 수 없어졌다. 이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회적 보호막과 일상의 안녕을, 그것도 자신을 보위하는 군의 힘을 빌어 침탈하려 들었다는 이유만 하나만으로 현재의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을 상실했다. 이것은 ‘정치적 자살‘이다.

이러한 현실에 깊은 모욕감과 참담함을 느껴, 이 일천한 음식 평론가는 전업 필자 15년 커리어 동안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한다. 바로 이 시국선언문을 쓰는 것이다. 내 직업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다시는 일개 음식평론가 따위가 주제 넘게 시국선언문을 쓰지 않기를 바라며, 다음의 세 항목을 강력 촉구한다.

1. 대통령은 즉각 자진 사퇴하라.

2.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은 다음 임시국회에서 탄핵 표결에 응하라.

3.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 가담자들을 조속히 체포 및 수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