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폭룡적 디저트 블라인드 테이스팅

자초한 고생이었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나는 왜 사서 고생을 하려 들었는가? 이런 결과를 낳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 디저트가 이상해요. 다른 원고 제안에 응하며 담당인 ‘GQ’의 김 아무개 에디터에게 그저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뭐랄까, 요즘의 디저트들은 고지라의 숙적 오염 괴수 헤도라의 최종 버전 같다. 점액질의 무엇인가가 또 다른 점액질의 무엇인가와 꾸역꾸역 들러 붙어 자칭 새로운 디저트로 ‘진화’한다. 못 생기고 맛없다는 말은 이제 그냥 하나마나하고, 디저트판 전체가 거대한 발악의 연옥 같다. ‘FOMO’의 멍에를 자진해서 짊어지고 ‘나를 좀 봐줘, 난 좀 다르다고!’를 숨도 거의 쉬지 않고 목놓아 외치니 때로 그 울림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이다.

그래서 그런 디저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분석 글을 기회가 닿으면 쓰고 싶다는 의도로 이야기한 것인데 웬걸, 더 좋은 기회가 더 빨리, 더 폭룡적으로 다가왔다. 시중의 디저트를 최대한 많이 모아 볼 테니 한 자리에서 먹어보고 평가해 기사로 내는 기회였다. 처음엔 서른 몇 가지를 준비했다고 들었다.

아아, 재미있겠다. 사실은 걱정됐다. 일단 혈당이 문제였는데 그건 어떻게든 방어한다고 쳐도 또 나의 평가만 옆구리의 가시처럼 모두를 불편하게 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런 걸 신경 쓰느냐고? 엄청나게 쓴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예 안 쓴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리라. 아무리 먹은대로 평가한다고 쳐도 나의 평가만 현저히 차이가 난다거나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다. 으이구, 저 인간 또 저 지랄이지.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일정에 맞춰 테이스팅 장소에 이르니 맛을 보아야 할 디저트가 거의 60가지로 늘어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농담이 아니고 정말 그랬다. 과연 한 입씩이더라도 이것들을 다 먹고 나는 멀쩡할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할 사이에 하나라도 더 먹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마음을 굳게 먹고 먹기 시작했다.

정말 한두 입 씩만 먹고 빠르게 떠오르는 대로 인상을 정리하고 점수를 매겼는데도(나에겐 조정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정이 바로 다음에 있었다) 테이스팅을 마치니 거의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의 기억은 퍽 희미하다. 단 음식을 워낙 좋아하는 나지만 이런 규모로는 먹어보지 않았고 사실 나 혼자라면 지양할 상황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엄청났으니, 다 먹고 나자 술에 취한 것처럼 몽롱해져 그날 늦은 밤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전체적인 인상은… 한두 가지씩 먹으면서 느껴왔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 모아놓으니 그림이 한층 더 크고 선명하게 생겼는데 더 흉악하고 끔찍하게 보인다는 차이는 있을 테지만 기존의 시각과 의견을 수정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런 것들을 백화점에서 ‘큐레이션’을 해서 모아 놓고 있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먹고 있는 상황이군. 사람들이 이런 데에 돈과 시간을 몰입해 쓰고 있다니. 더도덜도 없이 끔찍했다. 하지만 나 혹은 누구라도 막을 일은 아니다. 각자 그렇게 선택을 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래야 행복하겠다는데, 그래도 행복하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잡지의 마감이 지나고 기사를 받아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아주 크게 내쉬었다. 테이스팅에 참가한 다른 두 분의 의견도 기본 또한 본질적으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내가 조금, 말하자면 평균 별 반 개 정도 박하게 준 것 같지만 어쨌든 백화점에 꾸역꾸역 모아 놓은 이 디저트들이 그들에게도 상당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었고 왠지 위안이 됐다.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링크를 따라가면 된다. 원래는 업소명도 전부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평가가 전반적으로 나빴기에 빼버렸다고 들었다. 나도 이 결정에 동의한다. 구분을 하는 게 크게 의미 없이 사이 좋게 나쁜데 굳이 업소명까지 공개해서 망신을 줄 필요가 뭐 있겠는가.

어쨌든 이렇게 폭룡적인 디저트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겪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편으로 매우 귀찮기에 요즘의 디저트가 왜 어떻게 문제인지 낱낱이 분석할 계획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없다. 이제는 그것이 나의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경향을 넘어 고착화된 현상이라면 그리고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면 구태여 말을 보태 무엇하겠느냐는 회의도 진하게 들기 때문이다. 지금 희망이 없다는 말을 돌려돌려 하는 거 아니냐고?

맞다. 언제는 희망이 있었느냐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먹기 위한 음식을 만들 생각을 하지도 않고 있다는 게 너무 빤히 보인다. 먹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겠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그렇게 생산자와 소비자의 죽이 불량하게 맞을 때 찾아오는 건 아포칼립스 밖에 없다. 사실은 이미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