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국물의 패러다임 전환

동네 마트에 갔다가 사진의 풀무원 육수가 진열되어 있는 걸 보고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다 이뤘구나.’ 물론 내가 아닌 한식이 이룬 성과이다. 가루형부터 시작한 육수의 밑재료가 엑기스형을 거쳐 이제 드디어 완제품형으로 소규모의 동네 마트에도 자리를 잡는다니, 나름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셈이다. ‘한식의 품격’을 쓸 때 이미 가루형 국물 밑재료에 대해 다룬 바 있으니 그 이전 몇 년을 포함해 적어도 7~8년 만에 이런 유형이 주류로 발돋움하는 셈이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특별한 예지력이 있거나 할 리는 절대 없고, 그저 서양의 흐름을 보았을 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닭, 소, 채소 등의 육수가 기성품으로 나와 있었으니 같은 형식이 한식에도 자리 잡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직접 조리를 하는 이라면 알 것이다, 이런 기성품 육수가 조리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까짓 육수 내는 데 얼마나 걸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모르는 소리, 들이는 시간보다 귀찮음이 조리를 아예 포기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모든 과정과 절차를 다 밟는 조리는 귀찮아서 도저히 손을 못 대겠고, 그렇다고 다 포기하고 라면이나 배달 음식을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이런 기성품 육수는 몇 발짝 앞에서 출발할 수 있으므로 육체는 물론 정신적 부담을 정말 대폭 줄여준다.

이렇게 말하니 만능 같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완제품 육수의 재료를 찬찬히 뜯어 보면 각 제조업체 고유의 조미료-연두 같은-로 맛을 낸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국물이 지나치게 달며, 음식의 맛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레퍼토리로 완전히 편입을 시키기 전에 충분한 사용 및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테면 기성품 냉동 만두로 만둣국을 끓인다면 어차피 같은 기성품의 울타리 안에 있으므로 이런 국물을 써도 맛의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나만의 맛을 내 된장찌개를 끓인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이고, 결과가 실망스러울 수도 있으니 참고하자. 대체로 사골 육수에 비해 채소와 해물 육수에 조미료를 첨가했을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