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음악’ 플레이리스트 (1) [~1990]
책을 쓰고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음악의 편입이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면 들으면서 읽을 때 감상이 극대화될 수 있다. 물론 ‘식탁에서 듣는 음악’은 독립적인 책을 처음부터 지향했지만 보충 자료의 유무에 따라 읽는 즐거움이 달라질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하나의 책으로 두 가지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니까.
여러 가능성이 있겠지만 역시 가장 쉽게 실행할 수 있는 건 유튜브를 통한 플레이리스트의 제공이다. 책에 장치가 없어 수동으로 연결을 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또 그게 요즘은 종이책을 둘러싼 재미라고 생각한다.
편의상 책의 이야기는 1987년 말~1988년 초에서 시작하지만 그 이전의 이야기가 없지는 않다. 음악 자체를 기억할 수 있는 시기까지 되짚어 올라가면 집에는 생계를 위한 ‘소리’가 있었다. 법학과를 졸업한 어머니가 전공과는 무관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자아내기 시작한 소리였다. 아직도 1980년쯤의 어느 밤, 부모님이 나가 전단을 붙이러 나갔던 기억이 있다. 빨갛고 파란 색도화지에 기억이 맞다면 매직 등으로 간단한 정보를 기입한, 시대에 걸맞도록 단순한 전단지였다. 길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집을 비운 시간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피아노 교습이 본격적인 사업으로 진화해 집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면서 나는 진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원천은 두 갈래였는데, 하나는 아버지가 네덜란드 유학 시절에 사들고 들어온 필립스 턴테이블이었다. 토요일 저녁이면 당시 인기를 끌었던 ‘Hooked On Classic’ 등을 틀어 놓았고, 나는 기억이 맞다면 흥겨움에 덩실덩실 춤을 추곤 했다.
또 다른 원천은 라디오였다. 라디오는 부모님이 맞벌이 나가고 없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동무 이상의 역할을 했다. 특히 방학이면 12시(최신 가요)-2시(팝)-4시(옛날 가요)를 6시간 동안 들으며 책을 읽거나 입이 심심하면 베란다에 내놓은 나무 궤짝의 쌀겨를 뒤져 사과를 꺼내 씻어 먹곤 했다.
이제는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어떤 경로를 통해 취향이 최초로 형성되었는지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대강 더듬어 보자면 MBC FM의 ‘2시의 데이트’를 통해 들었던 소위 ‘팝송’이 이제는 찾을 수도 없는, 취향 맨 밑바닥의 기초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그런데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쪽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던 초기의 랩 등도 좋아했던 것으로 보아, 한편으로는 AFKN의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음악을 알게 되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워서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는 ‘팝송’의 제목을 이해 및 기억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