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스시 단상

일 때문에 최근 채식 스시를 먹어 보았다. 이외에도 채식 요리군을 집중적으로 먹어보았는데, 전체적인 감상을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이 채식 스시에 대해서만 잠깐 살펴보겠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 굳이 스시라는 형식을 따라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였다. 뒤집어 말하면 이 요리가 채식 준수 여부를 떠나, 스시를 먹고 싶은 이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 두말할 필요 없이 스시는 쉬운 음식이 아니다. 겉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맛이 숨어있으니, 생선의 숙성과 밥에 쓰이는 촛물, 그리고 둘 사이에 숨어 있는 와사비 덕분이다. 일단 채식을 선택한다면 이 가운데 맛의 열쇠를 가장 주도적으로 쥐고 있는 생선의 숙성으로 인한 감칠맛이 빠지게 된다. 과연 그것 없이 이 음식이 스시가 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채식 스시는 양념으로 화답한다. 이 스시를 낸 음식점의 만트라는 ‘사실 많은 음식이 양념맛’이다. 스시도 예외가 아니라서 우리가 반응하는 요인은 장어구이의 예처럼 양념이라는 논리를 고수한다. 그래서 장어 대신 가지를 같은 종류의 양념에 재워 네타로 쓰고, 파프리카를 조리해 참치 뱃살, 당근을 얇게 저며 연어 대신 썼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름의 방식대로 잘 조리된 채소들이 되려 육식 재료를 대신한다는 컨셉트에 정신적 장벽으로 다가온다고 느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 음식들이 스시의 형식도 따르지 않고 ’00(육식 재료) 없는 00스시’라는 이름도 붙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부터 쌓아온 선입견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으며, 따라서 더 맛있게 먹었을 것 같다. 채식 음식은 현 육식 위주의 세계에서 지속 가능한 존재감을 입증하는 것부터가 큰 과제이자 진입장벽인데, 되려 육식 음식을 모사한다는 컨셉트로 발을 뗐을때 이후의 행보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조리라는 고정된 과제 위에 개념이라는 또 다른 숙제를 얹고 시작하는 형국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일관성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식재료가 스시의 네타 모사를 목표로 삼아 비슷한 양념으로 맛을 내는 가운데, 오징어를 모사한 스시(가운데의 하얀 것)만은 저민 곤약 한 점을 얹고 끝이었다. 한두 발짝 양보해서 질감은 비슷하다고 믿어줄 수 있지만 곤약은 무미무취하므로 숙성시킨 오징어의 감칠맛은 전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충분히 맛을 들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냥 올린 걸 보면서 정말 스시를 이해하고 만드는 것인지 의구심을 품었다.

다시 한 번, 이 음식이 스시를 표방하지 않았더라면 사실 이런 의구심은 존재조차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든 개념을 차용해 음식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조리의 기술을 갖추고 있는지 일단 내부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궁극적으로는 나이브하고 단순한 모사라고 폄하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그리고 작금의 현실에서 채식 요리가 그러한 부담감을 안고 가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