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질식사한 제과제빵의 레퍼런스
슬슬 질식사의 문턱에 접어들고 있는 도너츠를 살펴보고 나니 이미 맛의 세계를 하직한 제과제빵의 레퍼런스들이 생각났다.
1.마카롱: 마카롱의 핵심은 껍데기일까 소일까? 한국에서는 후자라 믿었으니 지옥의 뚱카롱이 탄생했다. 마카롱의 원조라는 피에르 에르메와 라뒤레마저도 몰아내는 한국형 뚱카롱의 파워!
2. 레이어드 케이크: 크리스티나 토시의 디저트는 충분히 독창적이지만 미국의 질펀한 맥락 속에서만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정교함을 대신 푸짐함을 선택한 케이크가 한국으로 건너오니 둘 다 버리고 화려함을 선택했으나 기술이 부족하니 조잡함으로 전락했다. 요즘은 아예 솟아 오르거나 내린 윗면을 깎아 평평하게 만들지 않는 게 표준 문법처럼 통하고 있는 작태를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전체를 가린 생크림케이크를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생크림케이크는 내부에 대한 신비감이라도 조성하려 애쓴다.
3. 마들렌: 조금 있으면 짜장면을 얹은 마들렌이 나올 것이다. 칠첩반상 마들렌도 기대한다. 제발 좀 그만 채우고 얹었으면.
4. 베이글: 쫄깃한 거 그렇게 좋아하는 우리가 베이글이 쫄깃하면 화를 내고, 그래서 그냥 빵을 만들었다. 베이글 아닌 빵. 폭신폭신.
5. 식빵: 태초에 설구운 떡이 동네™빵집을 중심으로 자리를 확실히 잡아 유지해왔던 독주체제가 소위 아티장™의 수세미에게 점차 잠식당하고 있다. 떡도 싫고 수세미도 싫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수세미떡도 있으니까!
6. 스콘/비스킷: 영국의 콘월 혹은 데본이든, 미국의 딥사우스든 좋으니 어디든 가서 한국에서 팔리는 스콘 혹은 비스킷을 들이밀어보라. 분노를 산 나머지 귀국을 못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양을 잡지 않은 스콘 혹은 비스킷은 아마추어의 음식으로, 평가를 할 의미조차 없다… 라고 생각을 했더니 요즘은 아예 쇼트케이크를 수직으로 뭉쳐서 스콘의 모양을 잡은 정체불명의 밀가루 덩어리가 팔리고 있다. 이쯤되면 답을 피해가는 창의력을 높이 사야 하는 걸까?
7. (앙)버터: 버터가 그런 식재료인가? 그냥 두텁게 썰어서 아무데나 턱, 얹어 놓으면 장땡인가? 앙버터라는 빵이 나왔을때 그 성의 없음에 기겁했지만, 요즘 같은 이름으로 나오는 빵(혹은 떡?)을 보고 있노라면 울면서 부탁하고 싶어진다. 제발 다시 돌아와달라고,그래도 그대가 있었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고.
8. 티라미수: 집에서 정말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형식을 단지 이탈리아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오리지널’로 밀면서 같은 크림에 스폰지케이크를 쓴 일본식 티라미수는 멸종했다. 대체 일본식 티라미수가 무엇을 잘못했나? 따지고 보면 되려 더 정제된 형식의 케이크 아닐까? 백분 양보해서 이탈리아의 정통성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일본식을 몰아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늘 그렇듯 이글을 읽고 누군가는 짜증을 낼 것이다. 그래서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냐? 음식에서 맞고 틀리는 게 있기나 한 거냐?! 또한 늘 지적해왔듯 이런 현상을 모아 놓으면 패턴이 보인다. 위 레퍼런스의 질식사는 전부 1. 쉽게 만들고 싶어하고 어려운 과정은 거치지 않으려 든다, 2. 그래도 사진발은 잘 받기를 바란다 라는 문제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 지적한 생략된 형식은 너나할 것 없이 음식의 정체성, 더 나아가면 결국은 맛과 질감에 영향을 미친다. 달리 말해 빠지면 맛이 없어지는 과정과 그 집합인 문법인데 그냥 임의로 빼놓고는 괜찮다거나, 음식에서 그런 게 큰 문제가 되느냐고 적반하장식으로 성을 내고 있는 격이다. 그 과정을 다 겪고 문법을 다 체득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게 너무나도 명백하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