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컬리와 새벽배송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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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석에 처박혀 일만 하는 요즘, 나에게 가장 열심히 연락을 하는 존재는 마켓 컬리이다. 길게는 5일, 짧게는 2일만에 문자를 보낸다. 무료배송 이벤트도 있지만, 대체로 문자의 내용은 특정 상품의 할인이다. 최근 온 문자에서 언급된 상품을 몇 가지만 가져와 보자면 속초식 명태 회냉면, 매운 돼지갈비찜, 차돌 듬뿍 묵은지 볶음밥 2인분, 치킨 텐더, 한돈 불고기 등이다. 이런 상품이 과연 마켓 컬리가 본보기로 삼는다며 언급했던 ‘홀푸즈’ 같은 정체성을 잡아줄까? 아닐 것이다. 애초에 컬리가 이런 물건을 파는 쇼핑몰이었다면 개인정보를 노출하기 싫어서 회원가입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켓 컬리에서만 파는 상품을 원고에서 다룰 일이 있어 뒤늦게 회원 가입을 하고는 아주 드문드문 써 왔다. 애초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썩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새벽배송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직업인이든 생활인이든 식재료는 웬만하면 보고 직접 산다는 원칙도 있었지만 그런 시각의 배송 자체가 안전 등의 문제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한편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새벽이라는 틈새가 현재도 열악하디 열악한 택배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과연 그 틈새가 메워지고 채워지다 못해 터져 버리지는  않을까?

게다가 이렇게 회의를 품은 배송수단을 굳이 써가면서 살만한 상품이 별로 없었다. 새벽배송처럼 회의를 느끼는 수단을 내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으려면 요건은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바로 ‘마켓 컬리에서만 구할 수 있는 (품질 좋은) 신선식품’이다. 내가 컬리를 드문드문 쓰는 동안 그런 상품이 과연 존재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웬만한 신선식품류는 내가 들여다 보는 시점에서 대개 품절이어서 품질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다. 포장처럼 한국 식문화에서 차별 없이 떨어지는 측면은 비단 컬리 만의 문제도 아니니 넘어가자.

이런 이유로 정말 드문드문 구매하다가, 전지현이 등장하는 CF가 공개된 시점에서 나는 컬리의 사용을 중단했다(이후 한 번인가 더 썼을 것이다). 무엇보다 티끌 만큼이라도 음식을 전면에 내세운 라이프 스타일의 제안은 이제 드러내놓고 포기한다는 메시지로 이해했다. 전지현이라는 연예인 자체의 존재만으로도 확실했지만 광고의 내용 또한 열심히 맞장구를 쳐서 음식과 식재료가 아닌 배송이나 유통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이제 컬리는 평범한 물건을 인내심이 없어진 사람들에게 빠른 배송으로 넘기는 평범한 쇼핑몰 이상이라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과연 누가 상관이나 할까? 음식 이야기에 음식이 교묘하게 빠지듯 컬리를 향한 매체의 시선에는 대체로 가장 중요할 음식 자체에 대한 시각이 늘 결여됐었다. 새벽배송과 물류, 데이터 분석, 심지어는 블락체인까지 음식과 식재료를 다루는 방식에 초점을 맞출 뿐, 정작 상품이 그렇게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대체 누가 들여다 본 적이 있었을까?

차라리 잘 된 일일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는 반조리 식품이 더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게다가 식재료의 다양성도, 품질도 긍정적이라 보기 어려운 여건에서 과연 컬리가 얼마 만큼 차별적인 신선 식품을 확보할 수 있는지, 그래서 잘해 봐야 수도권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새벽배송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따라서 마음에 안 들면 무시하고 안 쓰면 그만이지만 새벽배송에 대해서는 한 번쯤 깊이 고민하고 넘어가야 한다. 과연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예상하기 어려운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제 컬리만의 전유물도 틈새도 아닌데 과연 괜찮은 걸까? 애초에 긍정적일 수 없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발상이었는데 밀어 붙인 것은 아닐까? 과연 음식산업의 스타트업에게 바람직한 미래라는 게 있을까? 비단 음식 관련 산업이 아니더라도 소위 스타트업이 노리는 틈새라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컬리는 이런 일련의 의문에 답을 제공할 의무가 일정 수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