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폴 옴므 브이넥 스웨터
10년이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간 지금보다 몇십 킬로그램 적게 나가던, 말하자면 성인 최저 몸무게를 찍었던 시절에 빈폴 옴므에서 산 스웨터 두 벌을 버렸다. 사진의 날짜를 보니 작년 8월 1일, 따라서 그 뒤 며칠 내로 헌옷 수거함에 넣었을 것이다. 캐시미어는 아니었다고 기억하고 있으니 메리노일 가능성이 높은데 브이넥에 몸통 한 가운데에 들어간 디테일을 좋아했다. 어떤 계기로 보라색을 샀고, 너무 잘 맞고 잘 어울려서 같은 디자인의 검정색까지 샀다. 어릴 때부터 검정색 옷은 거의 입지 않는데 산 걸 보면 정말 좋아하기는 좋아했던 모양이다. 주말마다 쇼핑몰을 뒤지고 다녔던 시절 99달러엔가 집어온 시티즌 오브 휴매너티의 블랙진(아직도 가지고 있다…), 제이크루의 스웨이트 데저트 부츠와 함께 잘 입고 다녔다.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늘어 놓아도 사족이 될 수 밖에 없다. 엄청나게 뺀 살은 몇 년의 세월을 거쳐 원래의 지점까지 돌아왔고 결국 나는 이 니트를 입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언젠가 다시 입을 수 있는 날이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되는 마음으로 드라이클리닝까지 해 곱게 모셔 두었다가(접어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자국이 보일 것이다) 작년에 드디어 떠나 보내고야 말았다. 한편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사실은 이제 잘 받아들이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혐오하지 않는 훈련도 이제 어느 정도 되었다. 다만 그와 별 상관 없이 십 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고 나니 맞고 안 맞고의 여부와는 별개로 옷의 생명력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종류의 짐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올 가을인가 맞을 만한 지인을 모셔서 많은 옷을 나눔하고 또 버렸지만 그래도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 버릴 마음의 준비는 되었는데 요즘은 귀찮아서 행동에 못 옮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