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문화의 포장 수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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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친구네 집에 가는 길에 그 며칠 전에 맛있게 먹었던 초록마을의 노지 귤을 한 상자 샀다. 비닐 봉지를 100원에 샀는데 상자를 세로로만 넣을 수 있는 2차원적인 직사각형이었다. 그렇다면 상자를 가로로 넣을 수 있는 비닐 봉지도 있단 말인가? 물론 있다. 한국에서는 본 기억이 없지만. 일본에서 딸기 등을 사면 그대로 들고 갈 수 있는 넙적한 봉지에 담아 준다. 어쨌든 귤 상자를 세로로 담아 가져갔고 결과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다. 비닐 포장도 문제지만 애초에 상자 내부에도 내용물을 완충해주는 요소가 전혀 없었다. 그저 내용물이 밀도로 몸바쳐 약간의 완충 작용을 할 뿐인, 전형적인 포장 방식이었다. 몇몇 귤이 그렇게 작살났다.

사례 2.

IMG_5862동네를 산책하다가 공공기관의 자판기에서 우연히 사과와 사과즙 자판기를 발견했다.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해서 한 봉 구매했는데 괴악한 디자인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마실 수 있는 도구가 전혀 딸려 있지 않았다. 카프리썬 같은 음료에서 볼 수 있듯 파우치식 음료 포장에는 빨대가 딸려 와야 편하게 마실 수 있다. 절취선이 있더라도 포장을 뜯다가 음료가 튀거나 파우치를 떨어트릴 수 있고, 설사 무사히 뜯었더라도 캔처럼 음료의 흐름이나 양을 일정하게 조절해주는 기능이 없으므로 입에 쏟아 붓다시피 마실 수 밖에 없다.

사례 3.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과자 등의 과대 포장.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사례 4.

순댓국 같은 국물 음식을 포장해서 먹으면 잘 열리지 않는, 자잘한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몇 개씩 딸려 온다. 쌈장 같은 끈적한 양념을 담으니 재활용을 위해 씻는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된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그나마 용기는 양반이고 비닐에 국물을 담아 주거나, 아직도 1980년대처럼 냄비를 들고 가서 받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2018년도 다 저물어 가는 이 마당에. 보온 같은 건 애초에 기대도 안 한다. 적절히 식지 않은 음식을 담아서 내부에 물방울이 잔뜩 맺혀 음식이 망가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물론 그런 행운은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더 많은 사례를 늘어 놓을 수 있겠지만 입이 아파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한국 음식 문화의 포장 수준은 대체로 짜증을 유발한다. 미적인 측면을 아예 차치하더라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가장 기본적일 제품의 적절한 완충 및 보호나 원활한 개봉 및 취식 등등 말이다.

이를테면 팔도 비빔면 소스처럼 끈적이는 양념을 담은 비닐 포장은 마치 개선된 것 같은 절취선이 딸려 있지만 잘 찢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끝부분이 남아 양념을 짜내면서 묻어 번거로와진다. 짜파게티의 기름 또한 힘을 일정 수준 이상 주어야 뜯기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기름이 온통 튀어버리는 불상사를 겪는다. 요즘 조금 상황이 나아졌지만 용기면의 겉 비닐 포장 또한 홍합된 부위를 잡아 당기느니 칼이나 가위 등으로 찔러 벗겨 내는 편이 훨씬 편하다.

제품의 생산 및 출고 뒤에 판매점 등에서 이루어지는 부수적인 포장도 비효율적이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증정품 등을 붙이는 테이프를 생각해보자. 깨끗하게 떨어지는 접착 테이프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도 끈적한 흔적이 남는 테이프를 칭칭 감아 둔다. 우유 같은 제품에 이런 테이프를 쓰면 팩 같은 종이 포장은 표면이 뜯길 수도 있다.

우유 자체의 포장도 흥미롭다. 올 3월 매일우유가 내놓은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팩은 굉장히 새로운 문물인 것 같지만 적어도 이 자료에 의하면 1991년에 개발되어 1992년에 대중화되었다고 한다(나는 1988년에 처음 본 기억이 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홍보처럼 이러한 포장 방식이 딱히 더 우유의 보관에 효율적인지는 자료를 좀 더 찾아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써 온, 100년이 넘은 ‘게이블 탑 카톤’보다 처음 개봉에 편한 것만은 사실이다.

한편 파스퇴르 우유는 원래 플라스틱 뚜껑에 테두리를 둘러 밀봉이 한 겹이었지만 어느 시점에서 테두리가 없어지고 병의 주둥이에 딱지가 붙었다. 소포장에는 빨대를 꽂아 먹을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두기는 했지만, 포장 자체에 빨대가 붙어 있지는 않으니 판매점에서 챙겨주거나 의식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는다면 활용을 못할 수도 있다.

몇몇 생각나는 예만 들었는데 핵심은 그렇다. 굉장히 자질구레한 음식물의 포장에서도 기능적인 디테일이 떨어지고 소비자에게 수고를 외주시켜 노동력과 짜증을 전가하고 있으며, 남의 나라에서 룸살롱에 가서 자신의 사업에서 물러난 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는 “공유 주방” 사업에 시도한다고 할 정도로 배달 음식의 성장세가 좋다는 나라에서 포장의 기본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장을 본 다음에 벌어지는 식재료의 포장 뜯기-정리-재활용에 들어가는 노력을 대체 소비자가 얼마나 뒤집어 쓰고 있는지 생산자는 고민을 좀 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도 결국 가사노동이고, 그렇다면 수고의 주체가 너무 뻔하지 않은가. 만약 위의 사과즙이 포장처럼 아이에게 먹이기 위한 용도로 판매된다면, 엄마가 먹이기 위해 몇 단계의 노력을 거쳐야만 하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요즘 세상에 어떤 종류든 귀찮음을 무릅쓰고 먹어야만 하는 음식은 그렇게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