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피자
사등분한 피자인데 왜 세 쪽 뿐인가. 사연은 다음과 같다. 며칠 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케아에 갔다. 매달 한 번씩 가서 행주나 수세미를 집어 오곤 했지만 유난히 설레었다. 피시앤칩스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북유럽은 흰살 생선의 본토 아닌가. 이케아에서 북유럽의 감성을 잔뜩 흡수한 뒤 그 감흥이 가시기 전에 먹는 피시앤칩스라면 완벽한 평일의 점심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으로 쇼룸을 한 바퀴 훑은 뒤 카페테리아로 향했는데, 눈을 씻고 또 씻어도 피시앤칩스는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이었을까. 혹시 이번에 처음 본 카르보나라 스파게티 사진의 반짝거림에 눈이 먼 것은 아닐까? 예상 외의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고 머뭇거리는 동안 사람들이 대기열에 들어차기 시작했으니 나는 간신히 그들을 헤치고 빠져 나왔다. 만만한게 돈까스라지만 오늘만은 도저히 안되겠다.
그리하여 북유럽 감성의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들고 계산대에서 나의 차례를 기다리는 순간, 저 멀리 보이는 비스트로의 각종 음식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핫도그 800원, 무려 이탈리에서 들여온 유기농 피자가 3,000원. 뭐라도 먹기는 먹어야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으므로 핫도그와 피자를 사서 전자는 그 자리에서 먹고 후자는 가지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핫도그를 먹고 카트를 끌고 나가려는데 피자 상자에 꽂힌 쿠폰이 눈에 들어왔다. 냉동피자 세 판이 천 원 할인해서 5,900원. 맛이 있다면 가끔 간식으로 유용할 거라는 생각에 카트를 멈추고 그 자리에서 한 쪽을 맛보았다. 그리고 상자를 닫고 그대로 카트를 몰아 이케아를 나섰다. 익힌 것마저 샀음을 후회하면서, 혹은 익힌 것만 샀음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흔히 맛없는 피자, 특히 도우를 골판지에 비유한다. 워낙 흔한 표현이라 지금까지 정말 흔하게 써 왔건만 나에게 그 말을 들은 모든 피자들에게 미안했다. 그만큼 이케아의 피자는 완벽한 골판지의 질감을 자랑했다. 이케아에는 남는 게 골판지일 테니까 결국 피자도 골판지로 만드는 법을 개발해낸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족 1: 진짜 무서운 피자였지만 그래도 이케아의 음식 특히 맨 비스트로 옆의 매장에서 파는 것들은 대체로 먹을만하다고 생각한다. 라즈베리 크림 쿠키 샌드랄지, ‘인간 사료’라 불리는 크뇌커브뢰드랄지… 루어팍 버터도 소매가치고는 싼 편(4,900원)이다.
*사족 2: 굳이 마음을 좀 누그러트리자면 한국에서는 대체로 피자를 덜 굽는데다가 진열장에서 말랐을 것이므로 맛있기가 어려울 거라 생각하는데… 정작 쿠폰은 버리지 않았으니 다음엔 냉동 제품을 사다가 집에서 구워 봐야 겠다. 제대로 구웠을 때 질감이 괜찮다면 피자의 백지이므로 많은 고명을 올릴 수 있다. 파만 올려도 괜찮을 것 같고, 이케아에서 파는 훈제연어랄지, 혹은 피자의 가장 훌륭한 고명인 파인애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