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동] 평양옥-디테일의 파라독스
부분은 각각 훌륭했다. 평양냉면의 양대 주요소인 면과 국물 말이다. 여운을 억지로 자르려는 뭉근한 단맛 없는, 짠맛 위주의 국물은 ‘솔직하다’는 형용사도 어울릴 것 같았다. 뒷맛도 여태껏 먹었던 어떤 평양냉면의 국물보다 깔끔했다. 또한 보란듯 제분기를 내놓고 뽑아 내는 면은 고소하고 신선했다.
그런데 이 둘과 나머지 부요소가 어우러진 전체는 아쉬웠다. 왜 그럴까. 일단 국물에 간의 100%를 의존하는 맛의 설계가 가장 컸다. 표현은 그렇게 했지만 면과 국물이 ‘어우러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각의 물성을 감안한다면 섞이지 않는 두 요소를 입에서 섞어 맛을 완성시키는 셈인데, 한쪽으로 간의 추가 너무 기울어져 있다. 한마디로 면이나 삶는 물에 간이 안 되어 있어 빚어지는 결함이라는 말인데, 그렇다 보니 먹고 있으면 ‘슴슴하다고 착시를 느끼겠군’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나마 앞에서 언급했듯 면의 표정이 워낙 또렷하고 생생해 덜 아쉽다고 할까.
나머지 부요소도 형식적으로 식탁에 올라 면과 국물 사이에서 맛의 중재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못한다. 특히 열무김치가 아쉬웠다. 설사 ‘슴슴’하더라도 익어서 발효의 두께라도 지녔다면 전체의 맛이 한 차원은 높아질 수 있을 텐데, 담근지 얼마 안 됐는지 열무의 씁쓸함만 두드러져 오히려 냉면의 미묘함을 방해했다. 온도라도 냉면이라는 시스템 전체의 맥락을 고려해서 잡았다면 나았을 텐데 고려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나마 채썬 배가 단맛과 아삭거림으로 자기 몫을 해 주는 게 위안이었다.
마지막으로 삶은 계란이 확실하게 아쉬움의 방점을 찍어 주었다. 그나마 노른자에 녹태가 끼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살 수 있을까? 이런 냉면이라면 정말 삶은 계란은 어떤 면에서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했다. 기본을 갖추는 건 일정 수준 답습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상존하는 음식의 경험치만으로도 그럭저럭 먹을 수 있는 냉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음식이 진정 맛있어지려면 세부사항에 대해 고민해야 되는데, 오히려 이런 요소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게 더 어렵다. 무엇보다 높은 확률로 그 답습 자체를 타파하려 들거나, 아니면 최소한 회의라도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파라독스와 맞닥뜨려야 한다는 말이다.
*만두는 전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