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같은 빵, 빵 같은 떡

IMG_1778 2 서촌에서 다소 괴기한 가게를 발견했다. 일단 빵집인지 떡집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찹쌀 브라우니나 흑임자 ‘크러스트’의 치즈케이크, 각종 쌀가루 쿠키를 파는데, 또 매장 한 켠에서는 시루에 떡을 찌고 있었다(추운데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놓아서 물어보니 떡을 찌느라 실내에 김이 서려서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그런 가운데 내부는 흰 대리석의 현대적인 분위기였으며 상호는 프랑스어였다. 그런게 무슨 문제냐 맛만 있으면 되지… 라고 생각하기는 참 쉽지만 대체로 이렇게 기본적인 분위기가 엇박자인 곳의 음식이 맛있기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밀을 그대로 쌀로 치환하려는 시도는 실행에 옮기지 않은 상태에서 실패할 것임을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찹쌀 브라우니 같은 것들은 차마 엄두를 못 내고 치즈케이크와 검정깨 쌀 쿠키를 먹었는데 묘했다. 치즈케이크는 아주 멀쩡한 케이크 켜를 질척이는 흑미 ‘크러스트’가 망치고 있었고 (떼고 먹으면 아주 무난하다), 흑임자 쿠키는…맛있었다.

지난 번에 팥죽을 리뷰했던 금옥당에서 떡도 사왔다. 언급했듯 팥죽+시식으로 양갱에 대한 흥미는 식은 가운데, 하필 ‘구운’ ‘소보로’ 찰떡이라기에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집에 와서 뜯어보니… 아마 내용물이 보이는 포장이라면 사오지 않았을 것이다. 찰떡과 소보로가 질감의 측면에서 어울릴 거라 생각하기도 사실 어렵지만, 소보로 자체도 기름에 절고 눅눅했다. 게다가 인간적으로 포장에 비해 너무 못생겼다. 타르트의 크러스트를 떡으로 치환해 머핀팬 같은데 구운 인상인데, 단면을 보면 뭔가 속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시도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서양식(일본이 잘 하고 있는데 굳이 서양식?)”의 제과제빵류에서 밀가루를 쌀로 치환하는 시도는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백발백중 실패한다. 떡 케이크를 생각해보자. 밀가루 케이크가 가진 그 어떤 장점도 전혀 살리지 못한다. 생김새는 닮았지만 무겁고 켜가 다양한 맛을 보장하지도 못한다. 떡이 워낙 뒷전으로 밀려난 탓에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쯤 되면 사실 ‘혼종의 왕’ 자리를 노릴 만큼 괴랄하다.

IMG_1779 2한편 떡이 자꾸 빵을 닮으려는 불가능한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빵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떡을 닮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양 방향으로 불행하다. 애써 부풀린 반죽 자체를 살리지 못하는 건 물론, 이를 온갖 부재료의 껍데기로 전락시킨다. 먹지 않았고 앞으로도 먹을 일이 없어서 사진을 올리지 않겠지만, 밤 따위를 한가운데 욱여 넣은 식빵 같은 걸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1.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 재료를 이해해야 한다. 밀은 부풀릴 수 있다. 쌀은 없다. 따라서 두 재료의 무조건적인 치환은 실패한다.

2. 빵에 이것저것 제발 좀 그만 쑤셔 넣어야 한다. 그렇게 쑤셔 넣으려면 1을 감안할 때 밀보다 쌀이 더 효율적이다. 애써 부풀려 놓고 다시 열심히 짓누르고 뭉개는 격이다.

3. 이런 길로 쌀의 소비를 촉진시키려면 밀을 쓰는 제과제빵의 분야에서 부풀리기가 많이 개입하지 않는 종류를 골라 공략해야 한다. 정체불명의 빵/떡집의 쿠키가 먹을만 했던 이유는, 일반적인 빵류에 비해 부풀어야 할 필요가 적거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에서 쇼트케이크류 (일본식 말고 비스킷에 가까운 영국식)의 가능성을 따져보는 게 차라리 바람직하다.

4. 정녕 쌀로 빵을 만들어 먹어야만 속이 시원하겠다면 쌀가루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무글루텐 빵을 연구해야 한다. 물론 셀리악 같은 질환의 비율이 낮은 현실에서 굳이 무글루텐 빵을 굽고 먹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정말 너무나도 쌀로 빵을 해먹고 싶은 열망이 강하다면 길이 아주 없다는 말이다. 다만 많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5. 카스테라의 교훈을 새겨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떡케이크와 카스테라의 사이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4 Responses

  1. woki says:

    “…열망이 강하다면 길이 아주 없다는 말이다.” 이 부분은 ‘아주 없지는 않다는 말이다’라는 말씀이지요? 죄송하지만 살짝 뿜었습니다… 아마도 ‘그냥 그런건 좀 안 해줬으면 한다’는 글쓴이의 진심이 전해져 와서요…

  2. 종이사진 says:

    빵에 대한 떡의 열등감이랄까요.

    떡보다 빵의 판매량이 많을 거라는 것은 굳이 통계를 들고 오지 않아도 뻔하죠. 당장 떡집보다 빵집이 많고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봐도 빵의 종류가 훨씬 다양하고 양도 많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떡을 빵처럼 만들거나 빵을 떡의 주재료인 쌀로 만들어 떡이 빵보다 못할 것이 없는 것으로 주장하고픈 조바심이 드러나는 겁니다. 현실은 떡볶이조차 쌀떡보다 밀떡이 인기를 얻고 있죠.

  3. joo says:

    밀가루는 한국인에게 안좋고 쌀은 한국인에게 좋다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될 현상이라 봅니다

  1. 02/19/2018

    […] 딸기 케이크라 불러서는 안될 것 같다)’나 무화과나 밤 같은 재료로 떡이 되어버린 빵이나 똑같다. 그나마 잘 생긴 종류로 고르기는 했지만, 이런 수준도 안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