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국밥과 미식대담, 빕 구르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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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한 대로 ‘광화문 국밥’의 음식을 살펴보자. 몇 개월에 걸쳐 전 메뉴를 먹으며 나는 이곳의 음식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눴다. 성공과 실패, 그리고 그 가운데의 ‘무엇이라고 불러도 상관 없는 상태’다. 그리고 성패의 여부는 무엇보다 의도와 구현,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의 균형 사이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각각 나눠서 살펴보자.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2편에서 마무리를 절대로 지을 수 없을 것임을 미리 밝힌다.

일단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메뉴는 국밥과 냉면이다. 대표 메뉴이기도 하지만 그와 별도로 흥미롭다고 여겼다. 이 두 가지가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양식 자체로만 평가 받을 위험이 큰 두 대표 음식과 본의든 아니든 같은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돼지국밥과 평양냉면 말이다. 사실은 그 안에서도 적당한 수준의 변주가 존재하지만, 이 두 음식은 때로 정확히 존재하는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큰 그림과 무조건, 무차별, 무의식적으로 비교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한마디로  ‘내가 좋아하는 평양냉면 혹은 돼지국밥’ 말이다.

과연 어떤 언어나 유형으로 각자 ‘내가 좋아하는 00’를 분석 및 규정 가능한 걸까. 알 바 아니지만 어쨌든 이곳의 두 대표 메뉴는 딱히 그런 요소나 요소가 이루는 틀 안에 들어간다고 보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그 요소 또는 틀이 따지고 보면 음식 자체는 물론 한식의 단점이며, 두 메뉴 안에서 개선 및 보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부터 짚고 넘어갈까. 차갑고 따뜻한, 양쪽 끝의 영역에 자리잡고 있는 음식이지만 일단 온도를 살펴보는 게 가장 적절하겠다. 맛을 떠나 음식 자체를 물리적으로 먹거나 먹을 수 없게 만드는,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이지만 한식에서는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실패하는 요소다. 특히 온도가 높게 설정된 음식에서 뼈아픈 실패다. 언제나 참고하라고 수치와 범위를 들먹이지만 사실 그럴 필요조차 없다. 받자마자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릇을 손에 쥐고 입에 가져가 국물을 들이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99.9%의 한국 국물 음식은 이게 불가능하다. 그나마 밥의 시종처럼 딸려 나오는 국이라면 가능하지만, 주요리로 기능하는 종류는 100%다. 광화문 국밥의 돼지국밥은 일단 온도면에서 아주 드문 예외다. 국물을 받아들고 먹으면 아주 살짝 뜨겁다 싶지만 곧 식으면서 목구멍을 넘어가고, 밥을 말면 적절하게 온도가 내려간다. 이런 수준의 온도대를 유지해야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대량 조리 및 접객의 맥락에서 구현 방법을 찾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는 각각의 음식과 용기를 별도의 시스템이라 인식하고, 이들이 한데 어우러졌을 때의 온도 변화에 맞춰 초기 상태를 설정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별개의 열원인 국물이 그릇에, 이 둘이 다시 밥과 접촉한다.  이 과정에서 온도의 증가와 감소 가운데 어느 쪽을 원하는지, 또한 변화의 폭은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 선을 그어준다. 한편 시스템의 접촉 과정에서 온도의 등락폭이 크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접촉 이전의 온도는 비슷한 수준으로 미리 설정 및 조정되어 있어야 한다.

써놓고 나니 복잡한데 별 것 아니다. 커피를 낼 때 미리 잔을 데우는 것과 사실은 똑같은 상황이니, 결국 온도 조정의 발상과 구현은 모두 한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국물은 펄펄 끓지 않으며 대접은 온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밥은 주기적으로 지어 일정 시간만 보온으로 보관한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구현 방법보다는 중요성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냉면은 온도 그 자체보다 온도를 중심에 놓고 벌어지는 전체의 감각(질감 포함)에 주목한다. 물론 설정한 온도의 구현 원리는 반대지점으로 간다 뿐이지 국밥과 차이가 없다. 목표 온도를 설정하고 국물과 면 사이의 온도가 크게 차이나지 않도록 미리 맞춘 상태에서 접촉시킨다. 냉면이라면 국물만 차가워서는 안되고, 삶은 면도 차가운 물에 헹궈야 둘을 합쳤을 때 온도의 균형이 맞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이 정도만으로 냉면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차가움 또는 서늘함이나 이를 바탕으로 일궈내는 긴장감/수축의 정확한 구현 및 유지가 가능할까? 추석 연휴에 먹고 글을 쓴 장충동 평양면옥의 냉면처럼 두드러질 정도로 긴장감이 떨어지는 냉면을 만난다. 국물과 면을 한데 아울렀을 때의 온도를 주 원인이라 여기기 쉽지만, 그보다 소금간을 중심으로 삼는 면의 반죽 및 조리 상태가 궁극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과연 반죽에 소금간을 하는가? 메밀면은 쫄깃해지면 안되지만 반죽에 소금을 더하더라도 없는 글루텐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소금간을 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다면 면을 삶을 때는 간을 할까?  단지 효율적인 생산만을 추구한다면 이 또한 웬만한 냉면집 주방에서 적용하리라 짐작하기가 어렵다. 면을 삶는 물은 주기적으로 일정량을 끓여 온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갈수록 물이 짜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한식의 맥락에서는 웬만해서 도입될 수 없는 과정 또는 수단일텐데, 광화문 국밥의 면은 염도계로 염도를 맞춘 물에 면을 삶는다. 덕분에 면의 메밀 배합비 등등과 어쩌면 무관하게, 하나의 음식으로 냉면은 좀 더 산뜻한 긴장감을 품는다. 엄청난 발상인 걸까? 글쎄, 파스타는 ‘물 X리터에 소금 Y그램’이라는 레시피를 바탕으로 삶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되려 허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