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 라테’와 응답하라 악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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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오리엔탈 라테’를 먹었다. 사실은 지난 번에 그 글을 쓰고 다음 날인가 먹으러 갔다. 그런데 하필 찾아간 곳이 홀리스였다. 오리엔탈 라테를 달라고 하니 ‘읭?!’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다시 검색해보고 나서야 판매주체가 탐앤탐스라는 걸 알았다. 홀리스와 탐앤탐스… 비슷하지만 사실 후자가 요즘은 좀 더 낡은 느낌이 난다. 하여간, 이후 기회를 영 찾지 못하다가(왜 이리 눈에 안 띄는가), 약 1주일 전에 드디어 먹을 수 있었다.

사실은 예상조차 굳이 할 이유가 없는 맛이다. 커피에 연유를 탔다. 탐앤탐스 같은 데서 내는 커피를 감안하면 사실 각종 커피 믹스의 업그레이드 버젼 같은 맛이 난다. 쓴 커피에 달고 진한 연유를 섞는다. 둘의 조화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웬만하면 먹을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매장에서 파는 모든 음료 가운데 가장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연유가 커피의 허물을 웬만하면 잘 덮어준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이 또한 베트남이든 어디든 벤치마킹한 ‘오리엔트’ 어디쯤의 커피에 충실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커피에는 맛의 ‘그라데이션’이 존재한다. 특유의 ‘드리퍼’에서 내려오는 커피가 바닥에 깔아 놓은 연유와 컵을 채운 얼음과 섞인다. 만약 얼음이 어느 정도 녹을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있다면 커피의 쓴맛과 향이 에워싸는, 여운이 꽤 긴 단맛을 즐길 수 있다. 더 질이 나쁜 커피를 쓸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이 음료의 무시할 수 없는 정체성을 확립한다. 하지만 ‘오리엔탈 라테’는 연유가 완전히 섞인 상태로 나온다. 좋게 말하면 균일한 맛이지만 어쨌든 정체성은 지워졌다.

게다가 5,100원이다. 물론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이보다 더 쌀 수도 비쌀 수도 있지만 어쨌든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각할 수 밖에 없어진다. 예를 들어 사이공 리의 커피는 3,000원이다. 이 모든 정체성이 지워지고 그 껍데기의 껍데기인 ‘오리엔탈’만 남은 음료가 프랜차이즈에서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가격에 팔리는 현상을 과연 아무 것도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크든 작든 정체성은 지워지고 가격은 오른다. 이것은 한국에 들어오는 거의 모든 외국 음식이 겪는 통과의례 아닌가? 멀리 가기 싫다면 ‘에머이’ 같은 프랜차이즈가 확산시키는 쌀국수를 맛보면 된다. 아무 것도 없다.

어차피 큰 일은 아니지만 굳이 가서 먹어 보았던 건, ‘쓸데 없이 트집을 잡는 게 아니냐’는 뉘앙스의 덧글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일이 동기를 의심 받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슨 악의로 000(상호)를 저 따위로 리뷰하는가?’와 같은 발언 말이다. 자신과 다른 평가를 내놓는다는 이유로 악의 운운하는 이들은 실제로 자신이 어딘가에 악의를 품고 평가를 왜곡해서 올린 적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진짜 악의를 품으면 막말로 비싼 밥 먹고 그렇게 글을 길게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씨# 존@ 맛없네’라고 트위터에 한 마디 뱉으면 되지 않을까? 내가 미쳤다고 글을 구구절절이 쓰는 수고를, 그것도 내 돈 내고 음식 먹은 다음에 굳이 하겠는가. 그리고 ‘비평의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과격하게 쓸 수 없다’는 말을 일억 뻔쯤 한 것 같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을 어떻게 저렇게 비판할 수 있느냐고? 식탁에서 말도 안되게 익힌 오리 가슴살을 뱉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던 괴로움이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이야기는 웬만하면 언급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외의 것들로도 비평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런 것들까지 들먹이면 대상 레스토랑이 아니라 내 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오리엔탈 커피로 돌아오자. 프랜차이즈의 커피 배리에이션 음료를 놓고 쓸데 없이 트집을 잡아야 할 만큼 한가하거나 글거리가 없지 않다. 나는 저 작명과 음료의 형식 사이에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정체성 지우기가 나쁜 습관처럼 존재할 것이라고 보았고, 확인하고 싶었으며 예상은 불행하게도 맞아 떨어졌다. 이런 음료를 팔기 위해 굳이 ‘오리엔탈’ 따위의 딱지까지 쓸 이유가 있을까? 그게 내가 품은 근본적인 회의였다.

이견을 제시하는 온갖 덧글에서 그나마 한 가지 동의할 수 있었던 주장은, ‘생산 및 판매 주체가 그저 별 생각 없었던 것은 아닐까?’였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생각이 없었다면 그 자체도 문제라고 본다. 거의 모든 음식에 생각이 없고, 그게 현재 우리가 겪는 지옥이니까.

그와 더불어 이런 작명이며 ‘한국화’된 음식의 형식을 맛볼 때마다 내가 궁극적으로 품는 의구심이 있다. 대체 한국과 한국인은 스스로를 어디쯤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후진 국가라거나, 한국인에게 정말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착각을 품거나, PC가 지나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차별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이 아무 생각  없음의 결과일 가능성은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그 생각 없음이 한국을, 특히 음식을 끌고 온 지점이 어디인지는 좀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영국에서는 오리엔탈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뭐가 문제냐’ 내지는 ‘대기업이 어떻게든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하는데 설마 그렇게 생각 없이 작명했겠느냐’라는 의견에 전부 동의하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라면 거의 명시적으로 계급이 남아있는 사회라고 생각하며, 그 여파 속에서 오리엔탈이 심지어 ‘오리엔탈’ 가운데서도 쓰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IMG_0164 그리고 대기업이라… 일단 탐앤탐스는 대기업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직원이 500명인 중견기업이다. 게다가 한국의 대기업이 ‘소비자에게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한다’고? 가습기 살균제부터 생리대 사건 등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음식만 해도 파리 바게트와 뚜레주르, 배스킨라빈스가 전부인 세상이다. 치킨이 정말 맛있어서 먹을까? 이제 남은 게 치킨 밖에 없어서 먹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소비자에게 자유로운 선택이 주어지는가? 아니다. 그저 있는 것 가운데서 차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기업체가 소비자의 눈치를 보느라 설마 그렇게 했겠느냐는 말은 공허하다. 한국은 섬에 가깝게 고립되어 있어 이제 많은 분야에서 제약을 받는다. 대체 언제부터 다양한 국가의 차를 몰 수 있었는가?

이제 댓글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이견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지 왜 트위터에서 ‘조리돌림’을 하느냐’라는 항의를 가끔 들었다. 동의하기가 어렵다. 첫째, 나는 당사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덧글이 많이 달리지 않지만 주체가 정체성을 밝히는 양태는 비교적 다양하다. 메일주소나 SNS 계정을 밝히는 이도 있는 반면, 완전 무기명인 이들도 있다. 난 후자의 정체성을 본인들이 댓글을 쓰면서 설정하는 만큼 신뢰할 수 없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는 어쩔 수 없이라도 이름 석자와 얼굴까지 드러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인데,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이들을 대체 어떻게 똑같이 대하라는 말인가. 이미 내가 여기에 글을 올리는 순간 불균형은 전제되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그러한 덧글에 대해 트위터에서 언급하는 경우를 ‘조리돌림’이라 규정하는 의견에도 동의 못한다. 덧글만으로 대상이 특정 가능한가? 내가 IP 추적이라도 했나? 물론 어딘지도 모를 시공간에서 나의 트위터 계정을 보고 얼굴이 붉어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스로 나서지 않는한,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 알 수가 없다. 덧글이 사람을 특정할 수 없는 맥락인데 나에게 그마저 존중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

인신공격성 악플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겠다. 이 홈페이지로 옮겨 오고 나서 얼마 뒤, 모든 덧글은 내가 승인을 해야 드러난다. 하지만 승인을 안 한 적은 없다. 있었다면 아마 승인 시스템으로 바꾸게 만들었던 원인이 유일했을 것이다. 개인 홈페이지고 덧글이 엄청나게 달리는 것도 아니지만 그마저 내가 직접 주무른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기 때문이다. 결국 그 말도 안되는 온갖 인신공격성 덧글조차, 사실은 내가 ‘승인’ 버튼을 눌러서 노출된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배설하듯 덧글 쓰는 분들 생각 좀 해보시기 바란다.

소위 ‘트위터 조리돌림’에 대해서 한 번 더 이야기하겠다. ‘당신 트위터에서 그러고 있더라’며 덧글 다는 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1. 이분들은 트위터를 하고 나를 팔로우하는 것인가? 2. 나를 팔로우하지는 않지만 트위터 사용자인데 내가 뭘하나 굳이 찾아서 본다는 말인가? 3. 트위터 사용자도 아니지만 내가 뭘하나 굳이 찾아서 본다는 말인가? 셋 가운데 무엇이라도 좀 웃긴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그렇게 관심을 품을 만큼의 원동력이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설마 증오라면, 관심을 끊지 일거수 일투족을 굳이 보려 들겠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런 항의조차 내가 승인하지 않으면 노출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 모든 덧글마저 노출시켰던 이유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 대한 정말 최소한의 배려였다는 사실을 알아 줬으면 좋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2 Responses

  1. CK says:

    결국 다양성 인정의 문제인것 같아요.
    이런 저런 시각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걸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다는것.

  2. 쿡스가든 says:

    1. 오리엔탈 라테
    1.1. 정체성 : 외래 음식의 한국화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난제입니다.
    1.2. 가격 : 가성비 접근에서 비싸다는 것인데 비싼 임대료 탓인지 아니면 프랜차이즈의 과도한 이윤 추가가 문제인지? 어쩌면 5,100원을 비싸다고 생각하는 나의 경제적 어려움 탓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2. 블로그의 과격한 댓글(악플)
    2.1. 심리 1 : 다양성에 인색한 한국 사회의 보편적 정서에서 나온다는 CK님의 댓글에 동감입니다. 이런 것이 개선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죠. 저부터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비판을 받으면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소인배이니 어쩌겠습니까?
    2.2. 심리 2 : 내가 만들거나 판매하는 혹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관한 누군가의 나쁜 평은 나에 관한 모독이니 참을 수 없다. 다만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부담되니 익명성에 숨어서 하겠다. 추정컨대 악플러의 심리가 이런 것은 아닐까요?

    3. 기타
    3.1. 주인장의 책 188~208쪽의 스테이크 편을 읽고 마트에서 사 온 목살을 대상으로 실전에 적용해보았습니다. 그 전에는 대충 구워 먹었는데 오늘은 나름 격조 있는 조리를 했고 그럭저럭 맛도 좋습니다. 다음에는 주인장의 조언에 따라 두꺼운(2~2.5cm) 고기를 구하고 두꺼운 무쇠 팬이나 스테인리스 팬, 온도계를 사야겠습니다.
    3.2. 평생 먹기만 하던 40대 중반의 한국남자에게 음식에 관한 호기심과 조리의 즐거움이라는 복음을 전해준 주인장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