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커피와 전통을 향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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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량진의 ‘사이공 리’에서 반 미와 베트남 커피를 마셨다. 가격이 설정하는 제약 등을 감안할 때 샌드위치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이화여대 앞의 63 Prov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베트남 커피는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진하게 내린 쓴 커피와 끈적하고 단 연유가 내는 폭발적인 맛은 굳이 엄청나게 좋은 커피에 의존해야만 하는 종류는 아니다.

2. 우연히 베트남 원두를 얻어 마실 기회가 있었다. 맛이 썩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모든 게 맛있을 수는 없으니 궁극적으로는 선택의 폭이 관건이다. 과연 가격만이 품질을 통제하는 요인일 수 있을까?

3. 전혀 접점이 없는 사안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서울 국제 문학 포럼이라는 행사에서 오늘 하루키가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미 제국주의 등등이 거론되었다고.

IMG_8778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에 이런 글을 썼는데 그 연장선 상에 있달까.

1. 한국에서, 특히 음식을 놓고 전통을 호출할 때 과연 그 반대편에는 어떤 개념이 존재하는가? 전통이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의 문화를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다고 가정한다면 베트남의 커피 같은 문화는 과연 반감을 덜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대통령이 마신 커피가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베트남 커피’였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의 문물은 전통을, 못 사는 나라의 문물은 인종주의 등을 앞세워 억누르는 경향이 존재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2. 물론 프랑스의 영향도 생각할 수 있고, 베트남은 커피 산지이기도 하니 분명히 객관적으로 존재할 국가 사이의 수준 차이-이런 표현을 쓰는 자체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만을 고려할 수는 없다고 반론할 수 있다.

3. 하지만 그건 또한 맥주로 반론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맥주보다 ‘국맥’은 여전히 맛이 없다.

4. 전통이라 규정하는 것들이 진짜 전통적인지도 검증을 해봐야 되겠지만, 그 골치 아픈 과정을 완전히 고려하지 않더라도 현대인의 삶을 고려할 때 전혀 대체할 수 없는 식문화를 과연 전통의 이름을 내세워 배척할 필요가 있을까. 달리 말해 커피가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이유는 맛과 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카페인으로 인한 각성 효과도 전혀 무시할 수 없다. 모두가 좋아하는 기능적인 측면도 강하다는 의미인데, 과연 전통차 가운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종류가 있을까?

5. 만약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쳐도 가격대 형성이 커피보다 비싸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구하기가 어렵다면?

6. 재료와 도구 가운데 무엇이 흔히 호명되는 전통의 개념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아무래도 전자인 경향이 강한데, 그럼 한국의 재료를 외국의 도구로 조리하면 소위 전통의 완결성(integrity)이 침해받지 않을까? 가장 흔히 들 수 있는 예로 스타우브나 르크루제 같은 주물 냄비에 지은 밥이 있다. 아니면 일본의 돌솥 냄비나 최근 등장한 발뮤다 밥솥도 있다.

한편 저 먼 옛날 코끼리표 밥솥이 보따리로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강력한 조치-너무 오래전에 읽은 글이라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를 취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말하자면 이런 시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닐텐데, 이를 밥의 완성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전통을 강화하고 싶은 제스쳐로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정반대로? 아직도 일본이라면 무조건 반감을 가지는 부류도 분명히 존재할텐데, 발뮤다 밥솥에 한국에서 재배한 고시히카리(?)로 지은 밥은 한국의 밥인가 아니면 일본의 밥인가?

7. 지난 글에서 진짜 필요한 건 한국 커피의 전통이라고 그랬는데,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아주 단순하게 맛만 놓고 생각해보자면 단맛이 들어가지 않은 아이스 라테가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아무래도 단맛 강한 배리에이션류가 디저트의 역할만을 놓고 본다면 주축이이겠고 실제로도 그렇게 소비가 되고 있다고 보지만, 끼니 음식에 전방위적으로 두드러지는 단맛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디저트엔 단맛이 없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오히려 식사로 쌓인 단맛+매운맛을 커피와 우유의 고소함이나 풍부함이 씻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식에는 전반적으로 지방이 부족하니 우유나 크림 등이 개입하는 편이 전체적인 경험을 좀 더 원만하게 다듬어 준다. 그렇게 복잡한 사안은 아니라고 믿는다.

8. 가장 기본적이지만 답이 없어 보이는 의문: 의식주 가운데 ‘의’와 ‘주’는 이미 서양화 되었고 ‘식’을 구현하는 기술조차 사실은 서양에서 기원한 것인데 이런 맥락에서 음식의 전통에 집착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4 Comments

  • luzluna says:

    혹시 설마.. 110v ->220v 로 갑자기 바뀐게 코끼리밥솥때문이었던걸까요?? 설마 덜덜덜

    • bluexmas says:

      그건 잘 모르겠고 세금이나 외국산 물건 수입과 관련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구봉서 says:

      아마도 농담이실것 같긴한데 진지 댓글을 달자면 220v가 110v 보다 생산 단가가 싸다고 합니다. 대신 품질은 낮구요.

  • 베트남 커피 추출방식인 핀(Phin)은 다른 나라에선 사양된 옛날식 수출방식이기도 하고.. 또 베트남 커피에 쓰이는 원두는 스타벅스 등에서 쓰이는 원두와는 좀 더 향을 특화시킨 형태인것도 사실이라 1:1 비교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맥주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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