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스의 식빵과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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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홈페이지 주인장입니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로 트래픽을 리셋했습니다. 블로그-홈페이지 인생 13년에 이런 경우는 또 처음입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는데 어제 올린 글을 읽어보니 제 소개가 잘 안 되어 있는 것 같아 짤막하게 안내드립니다.

1. 저는 음식평론가로 이 홈페이지에 주로 글을 올리고 음식 관련 책을 쓰거나 옮깁니다. 최근 ‘한식의 품격‘이라는 본격 한식 비평서를 출간하였고 이탈리아 요리 대사전 ‘실버스푼‘을 번역했습니다.

2. 이 홈페이지에서 평가의 대상이 되는 음식은 전부 제 노동의 대가로 번 돈으로 직접 사먹은 것입니다. 이 홈페이지는 일종의 독립 매체이고 어떤 특정 업체나 단체의 후원도 받지 않습니다. 또한 특정 업소나 요리사의 이익을 위해 글을 쓰거나 평가를 먹은 대로 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맛이 있게 먹었다면 맛있었다고, 없게 먹었다면 맛없었다고 씁니다.

3. 이 홈페이지의 글쓰기 자체를 정당한 노동으로 환원시키기 위해 구독료 개념의 후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는 합니다. 처음 방문하셨는데 후원에 관심을 가지셨다면 다음의 글을 참고 바랍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어제의 글을 관심 있게 읽으신 분들께 옵스의 식빵을 권해봅니다. 뭔가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로 식탁에 두고 사진을 오랫동안 찍지 않아서 안타깝게도 곰팡이가 슬기는 했지만 그 사실과 평가는 무관함을 미리 밝힙니다. 변질은 제조업체의 책임이 아니며 그저 유통기한 이상의 장기 보관 때문임을 재삼 강조합니다.

그럼 대체 곰팡이가 슨 빵의 사진까지 올리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 고 궁금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옵스(Ops)는 부산의 빵집 또는 제과점으로 ‘학원전’ 같은 케이크(일종의 스폰지케이크? 아니면 프로스팅을 올리지 않은 컵케이크?)로, 군산의 이성당이나 대전의 성심당처럼 일종의 ‘목적지 빵집(Destination Bakery)’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서울에는 롯데백화점 1층 지하에 매장을 운영 중입니다.

바로 그 매장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섰다가 이 식빵을 사 온 이유는, 재료로 버터를 썼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개인의 독립 매장이 아닌 경우라면 제과제빵에 버터만을 쓰는 경우가 드뭅니다. 벌써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신 어제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버터에 물성을 안정시켜주는 다른 (식물성) 지방을 첨가한 ‘가공버터’를 주로 씁니다. 옵스 규모의 제과점에서 버터만을 쓴 식빵을 본 기억이 없으므로 궁금해서 사다 먹어 보았습니다.

맛은… 좋았다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식탁에 머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늘 말하지만 ‘맛없음’에도 여러 층위가 있는데요, 이 빵의 맛없음은 ‘맛이 존재하지 않음’의 상태였습니다. 한편 정직한 것 같지만 발효를 거친 빵이라고 생각할 만한 맛은 배어있지 않달까요. 종종 영어권의 매체에서 맛없는 빵을 놓고 ‘판지 씹는 맛이 난다’고 표현하는데 딱 그런 상태였습니다. 물론 브리오슈나 크루아상도 아닌, 이런 종류의 식빵에 들어가는 버터의 양이 일반적으로 그리 많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왜 구구절절이 늘어 놓는 이유는, 어제 올린 글을 통해 음식(또는 빵)의 맛과 사람, 그리고 재료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제가 운영하는 오디오클립 ‘미식대담’을 녹음하며 실무자와 그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음식의 맛과 사람 및 재료의 관계는 미묘합니다. 한국의 빵은 대체로 맛이 없는데요, 그 이유를 재료 탓이라 떠넘기면 사람은 너무나도 편해집니다.

하지만 다른 음식이라면 모를까, 빵이 단지 재료 탓에 맛이 없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빵이 빵이 되는 핵심 과정, 즉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동시에 맛이 배이는 과정이 발효이기 때문입니다. 미생물인 효모를 다루므로 발효는 온도와 습도 등에 민감하고, 대량생산 환경이라면 여러 종류의 기계의 도움으로 최적화를 시키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 기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쓰기 싫으니 결론을 내립니다. 재료가 좋다고 음식이 자동적으로 맛있어지지 않습니다. 시작이 좋다고 마무리가 반드시 좋다고 볼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재료가 나쁘다는 건 시작이 좋지 않음과 비슷합니다. 맛있음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한국의 초대형 프랜차이즈에 기본적으로 믿음이 없지만 시제품을 내놓기 위한 매장에서조차 가공버터를 쓰는 업체에는 기본적으로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제품이면서 음식일 수 있는 음식이 있고 제품이지만 음식은 아닌 음식이 있습니다. 때로 의도적이지 않은 실패는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의도적인 실패는 문제입니다. 저는 이 모든 상황을 의도적인 실패라고 이해합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좋은 재료를 갖춰도 음식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애초에 그런 여건조차 갖출 생각이 없는데 무엇을 기대해야 합니까.

음식평론가로 8년 동안 글을 쓰면서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라는 이야기를 일억 번쯤 들었을 것입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이 맛있게 먹었다면 그걸 왜 굳이 저에게 알리려 듭니까. 저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8 Responses

  1. % says:

    솔직히 국내 공장형 과자점(빵과 구움과자 모두를 생산하는 곳) 모두 빵 또는 과자라 부를 수 있을까요? 흉내만 내는 모사품 아닐까요? 요즘 편의점에 슈가 많이 보입니다. 대형 마트에서도 냉동으로 다양하게 판매합니다. 저는 그걸 슈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슈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큰 기업의 제품 개발 부서의 직원도 본인이 만들고 있는 제품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역사가 있는지 안중에 없다는 겁니다. 대중이 무지하여 손쉽게 짜집기한 제품도 포장과 컨셉만으로 벌때 처럼 달려들어 사먹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절망을 대중이 바꿀 수 있을까요? 내 입엔 맛있는데 뭐가 문제인가?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렇다고 기업의 정직함을 기대해봐야 할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2. 박연화 says:

    10년 전만 해도 옵스의 빵은 아주 괜찮았었는데 언제부턴가 모든 빵에서 버터의 풍미가 사라졌습니다. 식빵, 타르트, 제누아즈, 모든 곳에서요. 그래서 저는 버터를 쓰기를 포기했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버터를 쓰고 있다니 그건 또 충격이네요

  3. 빌리빈 says: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이 맛있게 먹었다면 그걸 왜 굳이 저에게 알리려 듭니까. 저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입니다. 조금 일반화한다면 키보드(스마트폰) 뒤에 숨어 있는 현대인이 되새겨야 할 경구가 아닐까 싶네요.

    건필하시길 빕니다.

  4. 빌리빈 says: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이 맛있게 먹었다면 그걸 왜 굳이 저에게 알리려 듭니까. 저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문장이 마음에 드네요. 조금 일반화하면 키보드나 스마트폰 뒤에 숨어서 있는 시간이 많은 현대인들이 되새겨야 할 경구가 될 수도.

    건필하시길 빕니다.

  5. 제임스 says:

    이 사람이 어떤 생각과 경험, 그리고 능력을 가지고 음식 평론이란걸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적어도 비싼책 사는데 돈낭비를 할 확률을 낮출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 블로그의 글 외에도 그 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 최소한의 답변이나 코멘트는 해야 도움이 되는데 그것에는 관심없다고 아무말 안하면서 트위터에서는 여기 상황을 모르는 다른사람들과 조리돌림 합니다. 그렇게 정신승리를 하고 싶은것 같은데 많이 나쁜 행동입니다.

    • 본드 says:

      이분과 트위터에서 조리돌림놀이 하는분들 다 여기 있습니다. 그분들 여기 상황 무지 잘 압니다.

    • says:

      글쓰는 사람이 인터넷 창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커뮤니케이션 의지를 밝히는건 의무가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작가들은 오프라인 활동만으로 독자와 마주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뭐라고 욕을 하진 않죠.
      그리고 한식의 품격을 재미없게 읽으신거야 개인차이지만 조리돌림이니 뭐니 해도 뚜레주르 본점 글의 댓글은 참담할 정도로 수준이 낮지 않았나요?
      뭐 굳이 트위터에 전시까지 할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타고 와서 본 사람으로서는 정말 비참하던데요. 이런 댓글이 그 비참함을 배로 만든단 것만 아셨으면 합니다.

  6. 마포1 says:

    마지막 세 줄 읽고 후원하기로 결심.
    낼모레 월세 들어오면 인터넷 뱅킹 할라니께 기다려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