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빙-비운의 복숭아 빙수
조금 전, 점심을 먹고 4,250원짜리 복숭아를 먹었다.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정말 더럽게 맛이 없었다. 늘 말하듯 인공감미료풍의 뭉근한 단맛이 과즙도 아닌 흥건한 수분에 둘러싸여 잠시잠깐 지나가고 말 뿐인 한국의 복숭아는 대체로 맛이 없지만, 올해는 그 정도를 넘어섰다. 그 단맛도 거의 없거니와 뒷맛은 쓰거나 떫다. 8월이 되면서 모든 과일맛이 급격이 나빠졌고 그 가운데 복숭아가 최악이었다. 혹시 내가 놓치는 게 있나 싶어 속는셈 치고 사왔는데, 역시 속았다.
‘고급 과일=강한 단맛’으로 통하는 현실이므로 싼 과일이라고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맛이 없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마트에서 아무 거나 집어 왔는데 애초에 별로인 뭉근한 단맛이 적게 나는 대신 신맛이 좀 더 강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설빙의 빙수에 올라 앉은 복숭아는 똑같거나 좀 더 나쁜 방식으로 맛이 없었다. 그렇다, 궁금해서 한 번 먹어보았다.
물론 먹지 않아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매해 쓸데없이 매체로부터 핀잔을 듣는 신라호텔 라운지의 애플 망고 빙수만이 예외일 뿐, 생과일을 얹는 빙수의 모든 시도는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애초에 조리를 한 것 같은 단맛/신맛과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지 않았다면(바로 신라호텔 라운지의 애플 망고), 과일이 얼음이나기타 고명과 맞는 결의 맛이나 질감을 가지기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일단 맛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완전히 제쳐 놓아도 된다. 한편 질감의 경우 갈아서 표면적이 넓어질 대로 넓어진, 즉 냉기를 짧은 시간 강하게 발산하는 얼음 위에 올린 과일은 더 딱딱해진다. 몇 년 전 먹었던 동대문 매리어트 호텔의 돔페리뇽 복숭아 빙수가 아주 좋은(혹은 나쁜?) 예였다. 별 맛이 없는 소위 ‘딱복’을 얼음에 올렸더니 거의 무와 흡사해졌다. 물론 얼음으로 마비될 수 있는 미각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모든 요인을 감안한다면 생과일을 빙수에 얹는 시도는 참으로 무용하다. 사실 같은 이유 탓에 디저트에 생과일을 얹는 시도는 기본적으로 무용에 무한수렴한다. 익히지 않은 과일보다 손쉽고 보기에 좋을 수 있지만 맛과 질감은 밀가루와 지방, 설탕으로 이루어진 나머지 요소와 결이 맞을 수가 없다.
설빙의 복숭아 빙수라고 예외일 수가 있겠는가. 복숭아와 얼음 사이에 복숭아 향이 나는 일종의 시럽이 깔려 있었는데, 사실 이것과 신맛의 크림치즈 덩어리만로 얼음은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 시럽이 애초에 별 희망이 없는 복숭아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린달까. 트위터 지인의 표현에 의하면 ‘애써 멀쩡한 음식에서 비껴 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듯한’ 설빙이므로 큰 기대도 없고 따라서 큰 비난도 에너지 낭비다. 나는 이 없을 수 밖에 없는 이 빙수의 맛 자체보다 이런 설정이 매장에 등장하게 된 의사결정 과정이 더 궁금했다.
만약 최대한 재료를 모아서 가공해 분배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라면 차라리 복숭아를 한데 모아 설탕물에 조리는 등의 가공을 시도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빙수는 아무 맛도 없는 ‘딱복’보다 중국산 깡통복숭아를 국물째 부어서 먹는 편이 훨씬 맛있을 것이다. 아니면 각 매장에서 익히는 방안도 있겠지만 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 수준을 지닌 노동력을 투입시켜야 한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혹시 매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아르바이트 노동력을 동원해서 그때그때 생복숭아를 껍질 벗기고 썰어 내는 방안이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은 아닐까. 물론, 이윤 추구는 기업의 존재 이유이고 최저시급을 준수하지 않는 등 불법행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야 복숭아를 어떻게 하든 업체의 자유겠지만 이러한 맛없음에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의 양 극단에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집결되어 있는지 생각하니 목이 메어 빙수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사족: 그러고 보니 작년 추석 연휴에 도쿄의 ‘무츠카리’에서 디저트로 나온, 레스토랑의 명물이라는 빙수가 생각났다. 간 얼음에 여러 가지 시럽 상태의 고명이 곁들여 나온다. 물론 생과일은 없다. 설빙이야 설빙이니까(그래도 콩가루 빙수에 비하면 이건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콩가루 빙수는 그야말로 ‘콩가루’ 아닌가) 생과일을 얹어 낸다고 쳐도, 정말 (팥)빙수가 한국의 전통 디저트이고 복숭아가 여름의 대표 제철 과일이라면 누군가는 시럽 등에 은근히 삶은 복숭아를 얹은 디저트 등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Thanks for the review.
But slightly regrettable to evaluate all bowls from the different shop or chain just with the limited try.
That would be massively regret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