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무침의 한탄
먹은 경험 전체를 서술하는 것도, 한 가지 음식에 대해 논하는 것도 이제 좀 지겹다. 알고 있다. 직업인이 지겹다고 푸념해봐야 좋을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겹도록 지겨움을 들먹이는 건, 각 음식과 음식점이 드러내는 문제 또는 단점이 확실한 패턴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어디나 문제는 거의 똑같고, 개념과 원리를 생각할 계기 또는 동기의 부재가 원인이다. 그래서 때로 그냥 세세한 요소 하나를 가지고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파무침을 들여다 보았다. 사진은 로스옥에서 찍었다. 전체를 리뷰할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언급하자면 SG 다인힐이 그렇듯 ‘한식>양식’이었고 경험의 측면에서는 투뿔등심보다 낫다고 여겼다. 그러나 파무침의 패턴은 다를 게 없다. 원래 질기고 끈적거리는 파란 윗동(그래서 먹기보다 국물의 맛내기 재료로 쓰지만 그나마도 끈적거려 좋다고 볼 수 없는)을 섬유질의 결대로 갈랐으니 위가 1개인 인간이 먹기엔 질기다. 게다가 로스옥의 경우처럼 고추장 바탕 양념으로 무친다면 질척거림이 한결 더 강해진다. 고기에 파가 잘 어울리지만 선뜻 손이 가지는 않는다.
대체 파무침은 언제부터 고기의 곁들이 음식으로 자리잡은 걸까. 그냥 기억만 더듬어보자면 1980년대 중반, 월간 <가정조선>의 부록이었던 ‘생활 요령 사전(정확한 제목은 아니다)’에서 처음 보았다. 파를 참기름, 고춧가루 등으로 무치면 돼지고기와 잘 어울린다는 설명이었다. 당시에도 이미 나는 음식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였으므로 바로 어머니에게 건의해 식탁에 올렸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이유 두 가지에 덧붙여 궁극적으로 매운맛 위주의 생파를 먹어야 하므로, 책이 약속했던 것 만큼의 맛있음을 제공했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밥상에선 김치가 그 모든 자르고 끊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파무침이 식탁에 올라오거나 삼겹살의 ‘사은품’으로 정육점에서 곱게 세로로 가른 파를 얻어 올때마다 생각한다. 첫째, 한국의 대파는 정확히 어떤 용도로 써야 할까. 최근 <실버 스푼>을 옮기며 가장 많은 고민을 안긴 재료가 서양 대파(leek)였다. 한국 대파에 비하면 좀 만화에 나오는 채소처럼 생겼다는 점 말고도, 진액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 다르다. 그러나 요리책에 나오는 모든 서양 대파 레시피에 한 단에 몇 천원인 수입 재료 쓰기를 권해야만 할까? 아니면 결과물이 좀 다를 수 있지만 쉽게 그리고 싸게 구할 수 있는 국산 대파를 써도 괜찮을까? 나는 결국 후자쪽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여전히 한국 대파의 정확한 쓰임새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리고 그건 두 번째, 한국의 조리 환경이 알리움 계열 채소의 맛을 끌어내는데 보탬을 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날것으로 소비되며, 설사 익히더라도 양자택일 격인 아삭함과 잠재적인 단맛에 대한 고려 및 선택이 없다. 덜 익히면 단맛은 덜하더라도 아삭하고, 많이 익히면 질감은 죽지만 단맛이 확 살아난다.
하지만 대파는 물론 양파나 심지어 마늘까지도, 정확한 맛의 지향점을 부여받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숨이 죽어 주로 국물 위에 떠다닌다. 캐러멜화한 양파가 일본식 카레에 편입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에서는 김치찌개나 삼겹살 같은데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저물었지만 등갈비에 치즈가 끼어든다면, 단맛을 끌어낸 양파나 마늘 등등이 다른 고기에도 끼어들 수 있지 않을까? 설탕 대신 은은한 단맛을 끌어낸다며 불고기 양념 등에 양파를 갈아 더하지만 재료의 이해면에서는 채 절반의 지점도 오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