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한국 과일, 공산품, 맛의 설계
덧글 별로 안 달리는 이 블로그에 흥미로운 의견이 들어와서 생각했다. 한국의 붕괴된 과일맛을 한탄하는 지난 글에 ‘과일 산업 시장(특히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건 사실 식성이 아니라 효율성이다. 우리가 먹는 과일은 맥도날드의 햄버거와 다를 바 없다’라는 의견이 달렸다.
정말 그런가? 일단 과일이 말하자면 공산품화가 되었고, 그 원동력이 효율성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비단 과일 뿐만이 아니라 모든 식품이 그렇다. 내가 굳이 예를 들기마저 구차하고 귀찮을 정도다. 공장형 축산은 동네북이고 과일이나 채소만 해도 맛보다는 수확에서 운송에 이르는 유통의 효율을 위해 품종이 개량되고 수확 시기도 앞당겨진다. 백만 가지 예 가운데 토마토가 단박에 생각난다. 파란 걸 따서 요즘은 아예 그대로 판다.
그뿐인가. 공산품 같은 대량생산으로 인한 노동 문제도 만만치 않다. 멍든 구석 하나 없이 플라스틱 상자에서 예쁜 자태를 뽐내는 딸기는 대체 누가 손으로 일일이 따는가? 캘리포니아에서는 히스패닉 계열 불법 노동자들이라고 알고 있다. 유기농을 일궈내는 것도 대개 그들이다.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심지어 영등포 청과물 시장만 시간 맞춰 지나가더라도 아프리카계 노동자가 배추 하적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식품의 공산화는 피하거나 막을 수 없는 흐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나는 사실 회의한다. 첫째, 한국의 식품, 특히 농산물이 정말 체계적으로 공산품화 되었는가? 단지 규모만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 나는 결과물을 통해 흐름을 예측하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과정을 굳이 들여다보기 보다, 맛을 보고 거꾸로 되짚어 올라가는데 익숙하다는 말이다.
규모나 체계와 딱히 일치한다고 볼 수 없게 한국의 과일에선 영세한 맛이 난다. 맛의 설계자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가 정확한 비전과 방법론을 실현시켜 낸 결과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과일맛을 일단 희석시킨 뒤 지저분한 단맛만 적어도 두세 배 강조시킨 듯한 맛이 천편일률적으로 난다. 그리고 여기에 종을 아우르는 패턴이 극명하게 존재하고, 점차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큰 문제로 본다.
그리고 둘째, 조금 다른 방향인데 맥도날드를 나쁜 공산품의 예로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시각에 굉장히 익숙하다. 심지어 맥도날드도 늘 신경을 쓴다. 한국 맥도날드에서도 그들이 쓰는 같은 재료로 블로그에게 요리를 위탁해 쟁반에 까는 종이에 찍어 홍보했다. ‘핑크 슬라임’ 같은 것들의 소문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고 맥도날드가 세계에서 가장 악한 식품 기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설계하는 맛은 공산품으로서 꽤 균형 잡혀 있고 훌륭한 축에 속하며, 한국의 ‘토종’ 식품 기업 가운데 그만큼의 방법론이나 체계를 가진 곳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셋째, 그래서 공산품 또는 대량생산의 산물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과일이나 채소의 맛은 다른가?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않고 결국은 가장 큰 문제다. 백화점의 한쪽 구석에 고이 모셔둔 품목 등을 사서 맛보면 금방 드러난다. 첫 번째 회의에서 언급한 ‘영세한 맛’이 증폭되어 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맛은 비슷한데 크거나 좀 더 잘 생겼을 뿐이다.
예약해서 먹은 과일 등을 재작년 이후로 찾지 않는데 같은 이유다. 의도를 높이 사고 더 신선할 수는 있으나 맛의 표정은 일반적으로 살 수 있는 공산품 수준의 물건과 거의 전혀 다르지 않다. 아마 생산자 가운데는 알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다른 길을 걷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결과물에 차이가 없더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모두가 똑같은 맛에 길들여져 있는 상황이라 바꿀 수 없다면 정말 답이 없으니까.
많아야 1주일에 한 번 정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데, 그때마다 생각한다. 이것은 엄청나게 맛있거나 훌륭한 음식이 아니다. 특히 패티는 언제나 뻑뻑하고, 이를 소스로 꽤 티나게 보충한다. 하지만 먹어보면 설계 의도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기본은 바브 스터키가 말하는 ‘맛과 감각의 별’의 수준일 것이다. 기본 다섯 가지 맛(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과 다섯 가지 감각(미각,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의 두 가지다. 싼 음식일 수록 좋은 재료를 쓸 수 없으므로 어쩌면 단점을 가리기 위해 설계와 실행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한 일인데, 과연 누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엄마가 일곱살 때까지 붙어서 시켜야 하는 맛교육’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니다. 감정이 아닌, 이성에 호소해야 하는, 이론의 이해가 필요한 교육이고 어른의 과제다. 얼기설기 스케치나 추상화 그리는 법 말고, 선이 반듯하고 딱 맞아 떨어지며 색채가 분명 및 선명한 다이어그램 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과일이 진정한 공산품이라면 회화까지도 필요가 없다.
영세성이나 표준화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농산물은 맥도날드보다는 김밥천국에 가깝죠.
그렇…습니다.
농축산업자가 도시사람에 준할 정도로 잘살고 교육 수준도 높아야 좋은 식재료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남아같이 인간이 노력하지 않아도 열대기후 덕에 일단 동식물종 자체가 풍부한 지역은 예외로 하고요. 경상북도의 시골출신인 지인이 “한국의 농어촌은 동남아나 남미에 비할 때 소득이나 교육 수준이 별 차이가 없다”라고 말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실질적 자립력이 없이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한국 농축산업계를 생각하면 식재료 자체의 조건이 열악한 것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글을 되짚어보고 따라하는 행태로 보았을땐 맥도날드보다 롯데리아가 좀 더 맞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