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로] 용궁- 외롭고 쓸쓸한 수타면
수요일 오전에 어딘가에서 무엇을 한다. 끝나면 정오다. 5호선으로 몇 정거장이면 여의도, 다시 버스를 타고 약 10분이면 원효로 3가에 닿는다. 용산 전자 상가의 뒷쪽이다. KT 건물을 지나 건널목에 서면 약 50m 범위 안에 세 군데의 중국집 간판이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용궁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20석쯤 될, 넓지 않은 홀이 있다. 딸린 주방은 막으로 2/3쯤 가려져 움직임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왼쪽에 웍, 오른쪽에 수타면 작업대가 있다.
수타면을 딱히 더 믿지 않는다. 단지 손으로 뽑는다는 이유만으로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믿는다. ‘손으로 뽑는다’가 중요한 게 아니고 ‘손으로 잘 뽑는다’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기계로 뽑는 게 낫다. 파스타의 세계에는 손과 기계가 공존한다. 각자의 영역이 있다. 다른 면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손으로 뽑는 중식 면은 탄성을 불어 넣기 위한 첨가제가 과보상 되는 경우가 많다. 질기거나 심지어 두룸밀로 뽑은 것처럼 딱딱할 수도 있다.
용궁의 면은 훌륭하다. 부드럽지만 마냥 부드러워서 퍼질 정도는 아니다. 적당히 힘이 있어 한 그릇을 다 먹을 때까지 퍼지지는 않는다. ‘외유내강’까지 들먹인다면 과장이겠지만 좋다. 약간 과장이기는 마찬가지인데 계란 노른자만으로 반죽한 타야린의 느낌도 살짝 난다(과장이라고 그랬다). 짜장면 같은 기본 식사가 5,000원대인데, 1,500원을 더 내고 삼선을 추구하면 아주 제한된 맥락 안에서 사치를 맛볼 수 있다. 아주 뻑뻑하지 않은 짜장과 드세지 않은 면의 질감이 부드럽게 잘 어우러진다.
짜장면도 좋지만 울면은 한층 더 훌륭하다. 녹말이 멍울진 구석 하나 없이 밀도와 질감이 좋은 국물에 휩싸여 후루룩 넘어가는 면의 질감이 좋다. 메뉴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기스면이 있었다면 정말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장점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대부분 질감에 머문다. ‘제한된 맥락’을 이야기했는데, 그 제한의 폭이 너무 크다. 훌륭하게 면을 뽑고 열심히 볶지만 재료랄 게 거의 없다. 수타면을 5,000원에 먹기가 미안해서라도 추가하는 삼선 옵션엔 소라인지 대왕오징어인지 솔직히 헛갈리는, 살짝 쓴맛이 감도는 해산물이 주를 이룬다. ‘갓 볶음’의 미덕을 넘기고 나면 인상적인 맛의 여운이 그다지 남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쓰지 않고, 오히려 부재한다고 보는 게 맞는 조미료도 영향을 미친다. 한마디로 안타깝도록 정직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몇 번 더 가볼 계획을 세웠으나 일단 접었다. 맛이 없어서 실망했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다. 그것과 꽤 다른 차원의 감정이다. 비록 수타로 면을 뽑지만 가격을 비롯한 여건을 아울러 본다면 철저한 동네 장사다. 월-토, 오후 세 시까지 영업한다는 점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면은 한 번만 맛봐도 특징을 파악할 수 있으니, 굳이 나같은 “외지인”이 폭 좁은 영업시간을 들추고 자리를 차지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면은 그렇고 깐풍기와 볶음밥이 여전히 궁금하지만 당분간 가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 일단 기록을 남긴다.
이런 음식을 먹고 나오면 다른 어떤 감정보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낀다. ‘왜 이런 음식이 5,000원에 팔려야 하는가’ 같은 기본적인 가치의 문제부터 심지어 한식의 정체성처럼 뜬끔없다 여길 사안까지 뒤죽박죽 떠오른다. 짜장면은 한식인가 아닌가? 나는 한식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곳의 짜장면은, 비록 어쩔 수 없이 얄팍하지만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먹을 수 있는, 또한 “전통”이라고 믿는 각종 국밥 또는 탕반류보다 더 한식 같다는 믿음을 준다. 그러나 5,000원의 동네 장사 안에서만 머물고 더 나은 영역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다시 한 번, ‘안타깝도록 정직함’은 한국에서 미덕이 아니다. 음식 안팎으로 마찬가지다. 그래서 외롭고 또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