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세계화?
이런 주제로 글을 굳이 써야 하나? 마음 속에서 깊은 회의가 신물처럼 솟아 올라온다. 어차피 벽에 대고 말하는 셈이니 별 의욕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몇 십에서 몇 백에 이르는 글에 나눠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분산해서 논해왔을 것이다. 딱히 재미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런데 며칠 전 굉장히 이상한 글을 보았다. ‘한식이 세계화되지 않는 이유는 비평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처음에는 이름이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서 준우승인가 한 분과 헛갈려서 ‘오 그래도 그런 분께서 쓰신 글인데 새겨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잠깐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이태원에서 자기 이름 걸고 골목에 여러 식당 차린 분. 이쯤 되면 나는 관심을 끊어야 마땅하나 하필 그 ‘비평 문화 부재’의 예로 내가 등장하는 게 아닌가! (찾아보시라)
뭐 굳이 저렇게 풀어서 가려 써야 되나? 난 실명을 언급하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하여간, 글을 읽으며 일종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비평의 부재가 한식의 세계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지 않다. 아니, 일견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하필 그런 주장을 굳이 비평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이야기하다니? (다시 찾아보니 본인 주장의 요지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글 써 놓고 ‘제 전달력에 문제가 있었군요’라는 변명은 하지 말아야 한다)
늘 두 가지를 말해왔다. 1. 세상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영화에 왜 예고편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생각해보라. 2. 몇몇 리뷰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그나마 나쁜 리뷰라도 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때로 반응이 불보듯 뻔하면서도 밀어 붙인 것이다. 난 언제나, 특히 한국에서 나의 음식 비평을 ‘좌표에 올려 놓는 일’이라 규정해왔다. 모든 후보가 좌표에 오르면 안 오르는 것만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지금의 맛집 지옥인 한국 말이다.
그래서, 한식의 세계화를 대체 어쩌란 말인가? 육하원칙까지는 아니지만 몇 가지로 나눠 생각해보았다.
1. 왜
가장 중요하다. 대체 한식을 왜 세계화해야 하는가? 한국의 미래가 음식에 걸려 있어서 최대한 세계를 대상으로 팔아야 하는가? 설사 그렇다 해도 과연 원하는 만큼 팔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닌 것 같다. 아니면 순수하게 자국의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세계를 향해 우리의 문화를 알리고 싶은가?
왜 ‘왜’를 따지는가? 어떠한 경우라도 ‘식객’같은 만화에서 등장하는 추한 장면처럼 김치든 고추장이든 된장이든 불고기든 ‘우리 거야 좋아’라고 입에 무작정 들이미는 시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음식은 때로 한없이 민감한 사안일 수 있고 나의 것을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진출 대상 문화를 깎아내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한국) 것이므로 좋다’는 논리는 근거가 없고, 따라서 자국민이 아니라면 통하지 않는다. 우리만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안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10년 전 미국에서 직장생활할 때 보수 백인 남자 직원 하나가 대화 중에 TV 디너(완제품 냉동 식사.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다. TV를 보면서 먹으라는 용도로 고안되었다)를 놓고 ‘It’s American, it’s good!’이라며 쓸데 없이 추켜 세웠다.
하필 주변엔 미국인이더라도 전부 유색인종이라 다들 서로를 쳐다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 치켜 올렸다. ‘미친 거 아니냐?’와 같은 반응이었다.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채 냉동 되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완제품 음식이 미국에서 만들었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라 여길 이유가 없다. 현재 한식을 “세계화”시키려는 시도에 같은 멘탈리티가 빠짐 없이 배어 있다. ‘네 새끼 너한테나 이쁘지’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자.
2. 어떻게
방법론은 항상 두 가지로 생각한다. 일단 바탕 또는 기초가 필요하다. 개념적인 원리 또는 이해를 의미하고 또한 그걸 바탕으로 한 한식의 객관적 검증까지 아우른다. ‘네 새끼 너한테나 이쁘지’라고 했다. 한국 사람이 한식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요소가 외국에선 팔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과연 그냥 입에 쑤셔 넣는 우를 범해야 하는가? 그럴리가 없다. 맛과 조리의 원리를 이해해야 더 깊게 들여다 보고 필요하다면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맛과 조리의 원리가 한국적인 방식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식이 세계적인 표준으로 통하는 조리 과학 등을 통해 검증되지 않았다. 이를 통해 한식을 검증하려는 시도-내가 하고 있는-은 감정적인 가치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도마 위에 놓고 난도질 하는 제스쳐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표준을 통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았을때 “세계화”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편 방향에 대해서는 늘 두 갈래라고 말해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거나 (Top-Down),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Bottom-Up). 나는 전자에 대해 우려한다. 후자는 자발적으로 혼종을 만들어서라도 어떻게든 퍼지리라 예상하니까. 대체 한식 세계의 최정상에는 어떠한 형식의 음식이 존재하는가? 그 음식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단지 책 속의 음식이라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최근의 미쉐린 가이드 발간 및 선정 등을 보면서 생각했는데, 한국에는 ‘오트 퀴진’이라 할 만한 음식이 현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선호와 상관 없이 한쪽에서 중심이 잡혀 있지 않다는 인상이다.
3. 무엇을
2의 변주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떤 음식을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단순히 한국적인 고유함을 따지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과연 진출 대상 문화권이나 나라를 대상으로 현지의 사정까지 고려한 변주 가능성까지 고려할 수 있을까? 단순히 식당이 들어서는 수준이 아니라, 개인이 집에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생각으로 시도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일단 서양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난 고기 요리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 단조롭고 재료의 특성을 이해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4. 운
쓰다 보니 쓰기 싫어졌다. 원래 쓰기에 참으로 재미없는 주제다. 적절히 마무리하자. 세계화에는 운도 따른다고 믿는다. 1세계는 언제나 소비할 2~3세계 문화를 찾는다. 유행처럼 돌고 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뉴욕의 ‘단지’ 같은 음식점이 미슐랭 별을 받을 때가 난 시기였다고 보았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나? 그런 식당의 성공을 발판 삼아 분석해서 세계 진출이 가능한 공식(formula) 등을 뽑았나?
5. 한식의 세계화 vs. 세계 음식의 한식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면 세계에 한식이 굳이 필요한 건지 알 수가 없어진다. 그보다 한국에 세계 음식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식의 세계화는 결국 별 재미 없는 주제다. 난 좀 더 많은 음식이 한국에 쏟아져 들어오고, 그걸 탱자로 만들지 않으면서 원리를 이해하는 식으로 배워 지평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서 한식을 다시 돌아보고 세계화를 고민한다. 지금은 분명 배우지도 않고, 모르면서 우기는 듯한 느낌이 너무 많이 난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데 목소리만 높인다.
깊이 공감합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목소리만 크다는 점.
그렇습니다…
시원한 글 고맙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전 별로 시원하지는 않습니다~_~
필자의 의견에 동감합니다…한식세계화는 이명박대통령의 도식적인 주도로 한류, 한복, 한옥, 한식이라는 4K정책의 ‘미숙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개념을 잡아주고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조리’의 기본도 없는 사람들이었고…정부예산으로 이끌다 보니…한식재단이 만들어지고, 한국관광공사 등이 나서서 예산쓰기에 바쁘고..1회성 행사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때 정부가 나서서 정말 한식의 개념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 주기를 바랬습니다…한국사람들이 막연히 한식은 기름기없이 담백하고, 채소를 많이 사용한다고 설명하는 거 말고…정말 조리사, 학자들이 모여서 ‘한식이란 무엇일까?’하는 컨셉을 정립해 주면..이것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는 한식의 표준화가 가능하고, 더 나아가 이 표준을 기초로 한 다양화, 국외에 한류 확산에 어울려서 표준화된 한식을 바탕으로 현지에 적합한 한식메뉴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는데…결국 배는 산으로 가고 말더라고요…
뉴욕 한복판에서…또는 재외공관에서 각국의 대사와 부인들을 초청해서 비빔밥 만들어 시식하고…그들은 기계적으로 ‘한식! 맛있어요…’라고 하고…
지금도 저는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한식의 기본적인 컨셉을 정립해서 세계로 우리문화를 알리는 기회는 계속해야 합니다…두서없이 썼네요..
공감합니다. 특히 세계 음식이 한국에 더 들어와야 한다는 점이. 그런데 이태원의 그 분과 다른 분이신 듯 합니다. 성함이 다르네요.
필자는 이태원에 식당을 많이 만든 장진우씨가 아니라 비슷한 이름의 장준우라는 분이네요.
세계화라는 것은 화자가 아니라 청자 온전히 문화로써 환경적으로 받아들일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많은 변형 음식을 갖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재료나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와 우리나라를 비교했을때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나라에도 분명 무수한 역사와 전통깊은 조리법들이 존재하고는 있습니다. 몇몇 식재료또한 그렇다고 생각하구요..이러한것들이 변형되어 전달될지언정 아예 불모지였던 곳에서 환경적 문화적으로 친숙하게 다가가는 방법들은 과연 옳지않은걸까요? 항상 글 잘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