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 음식과 한국 음식의 맛 설계
설 연휴엔 일을 해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큰 프로젝트 하나를 마감했으니 단 며칠이라도 일을 안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소파에 누웠다. 편의점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다 놓고 영화를 한 편 보았는데 딱히 안 그렇다 싶은 걸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고루 ‘한국의 맛’을 낸다. 일단 질감의 측면에서는 딱딱하다. 힘을 주어 씹어야 한다. ‘자가비’와 ‘눈을감자’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가. 사진의 저 ‘무뚝뚝 감자’는 좀 더 딱딱하다.
한편 맛의 측면에서는 짠맛이 끝까지 뚫고 들어가지 않고 겉에서 맴돌고, 정확하게 그 짠맛이 뚫고 들어갈 지점에서 단맛이나 매운맛이 개입한다. 그럼 높은 확률로 만족감이 떨어진다. 대체로 이런 과자류는 60g 정도의 한 봉지를 먹고 나면 양은 많지 않아도 감각의 포화상태가 일어나 더 먹고 싶지 않아져야 되는데, 싱겁거나 맵거나 달면 여운이 길지 않고 허전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런 맛의 설계가 의도적이라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다만 이유는 헤아릴 수가 없다. 왜 한국의 음식은 굳이 이런 식으로 맛을 설정하게 되었을까. 이를테면 최근 처음 먹어본 농심의 ‘콩나물 뚝배기’는 면의 쌀가루 함유량이 80%라는 포장의 수치를 읽고, ‘뜨거운 국물에서 부드럽게 풀어지는 면을 먹을 수 있겠군’이라 예상하며 샀는데 다 먹을 때까지 면은 질겼다. 혹 시간을 맞추지 않았거나 너무 빨리 먹었나 스스로를 의심해보았는데, 포장에 표기되어 있듯 감자전분이 소위 “쫄깃함(사실은 질김)”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한편 국물도 위에서 언급한 과자들과 마찬가지로 짠맛, 혹은 더 나아가 신맛이 뚫고 나오지 않고 그자리에 강한 매운맛이 개입한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의 고춧가루에서는 얻을 수 없다고 믿는 매운맛이다. 그래서 이런 수준의 매운맛이 생리학적으로 먹는 경험의 끝에서 만족을 주는 걸까?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매운맛이 주는 유사 쾌감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지만 과연 이 정도의 수준이어야 할지도 의심스럽고, 지극히 일상적인 설정에서조차 또한 중심 음식 말고 반찬이 독립적인 매운맛의 켜를 더한다.
이런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첫째, 이러한 설계가 정말 한국 음식의 ‘고유성’이라 할 수 있을까? 조리의 상태에 우열을 매길 수 있다면 딱딱함과 부드러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우월한가? 인간이 맛이 아닌 생존과 극복을 위한 조리를 시작했을때 어떤 상태에서 또 다른 상태로 변화를 추구했는가?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거나 복잡한 문제가 아닌데도 한국 음식의 맛이나 질감이 역행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덜 익히거나 너무 익히는 조리의 양 끝 상태에서 재료는 딱딱하게 남아 있거나 딱딱해진다. 그 두 상태를 추구하기는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조리의 중간지점 찾기보다 쉽다. 나는 쫄깃함(질김)과 매운맛-단맛의 조합이 한식의 고유성 또는 전통이라기보다 나쁜 습관이라 믿는다.
둘째, 그렇다면 이러한 나쁜 습관은 어디에서 왔을까? 고춧가루는 왜 계속 매워지다 못해 캡사이신 농축액이나 가루 등등에 매운맛을 의존해야만 할까? 설탕이 귀한 식재료 취급을 안 받게 된지가 몇 년이 지났다고 짠맛 위주여야 할 끼니용 음식에 두서 없이 개입하는 걸까? 이런 것을 추적해 밝히기는 한편 내 일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음식 자체보다 책을 놓고 맛이 아닌 책과 글 이야기를 하는 음식 저널리즘 관련 종사자들의 일이다. 자칭 ‘맛 컬럼니스트’들 말이다. 먹지 않고 글을 보고 음식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한 50년치의 레시피를 들여다 보면 어느 정도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내 생각엔 30년치만 보아도 충분할 것 같다. 한국의 현대 식문화라는 게 엄밀히 말해 100년 넘겼다고 보기 어려운데, 이런 맛의 변화는 추적이 불가능한가?
본문에서 언급된 자칭 ‘맛칼럼니스트’는 황교익씨를 염두에 둔 듯 보입니다. 책과 기사, 블로그 등을 통해 읽은 이용재씨과 황교익씨 글들을 모두 좋아하고 배워가는 것이 많은 제게는 황교익씨의 논지가 음식에 대해 얘기하는 ‘틀린’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황교익씨의 글들이 음식의 ‘맛’을 제외한 채로 음식을 평론한다는 언급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일례로, 활어회나 숯불구이 문화에 대한 글들은 그런 음식들의 ‘맛없음’을 비판의 주요한 근거로 삼습니다. )
그보다는, 이용재씨와 황교익씨는 음식에 대해 다른 초점을 가진 평론을 쓰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읽는 이용재씨의 글은 음식의 ‘맛’을 구축하는 재료, 메뉴에 대한 이해, 조리법 등을 강조하는데 반해, 황교익씨는 음식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 역사, 때로는 정치.. 등등의 요소들이 어떻게 맛에 개입되는지를 강조하는 것 같아요. 쓰고 보니 확실히 음식의 ‘맛’ 자체에 대한 얘기는 이용재님이 훨씬 디테일하고 풍부하게 전달해주시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
황교익씨는 문관가 보네요
매운맛에 단맛이 섞여있는게 얼마나 맛있는데 잘못된 습관이라 생각하시다니.. ㅜㅜ 좋은 습관의 기준이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