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시국선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계란을 깐다. 먹기 위해서다. 아침 첫 일로는 참으로 유쾌하지 않다. 구멍 뚫린 국자에 올려 놓으면 흰자가 주르륵 떨어진다. 원래 이건 수란 등을 만들 때 흰자 가장자리의, 익으면 나풀거리는 것들을 미리 없애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요즘 계란은 흰자의 거의 전체가 그냥 후루룩 떨어져 버린다. 노른자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창백하고 딱히 점성도 없다. 이런 계란을 풀어 놓으면 그냥 물 같다. 거기에 단 두 회사에서 나오는 생크림을 좀 섞는다. 그나마 연말이면 물량이 달릴 수도 있다. 국산 아닌 버터를 녹여 팬을 달궈 오믈렛을 만들어, 몇 안 되는 저온 살균 우유와 먹는다.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지는 꽤 오래 됐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 먹을 뿐이다.
한국의 식재료 상황은 나쁘다. 나는 이 블로그를 식재료의 나쁨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으로 용도 변경한 뒤, 적어도 일흔 살 까지는 일주일에 서너 편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때까지 살아 남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정리가 안 될 정도로 엉망진창이고 뒤죽박죽이다.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되나. 일단 다양성이 크게 떨어진다. 거의 모든 것이 한두 종류일 뿐이다. 우유는 홀스타인 종이고 감자는 수미와 남작, 그리고 제주도의 무엇 등 서너 가지가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더 무르고 덜 무를 뿐이다. 유콘 골드처럼 아예 더 단단한 (소위 ‘waxy’한) 감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과는 어떤가.장을 보면 그냥 한숨이 나온다.
가지는 한 종류, 오이는 두 종류, 호박도 두세 종류가 전부다. 너무 없다 보니 그런 게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 조차 인식을 못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한편으로 철저하게 길들여져온 것이다. 저렇게 다양하지 못한 재료를 양념에 버무리는 문법을 만들었고, 그것이 고유하거나 전통적이라고 믿고 산다. 그런 상황에서 토마토가 적어도 네다섯 가지 존재하며 그 맛이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해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토마토가 네다섯 가지 존재할 때가 있기는 있다. 다 맛이 같아서 문제다. 다른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색깔 다른 파프리카가 나왔다고 해서 사보면, 그저 색깔만 다를 뿐이다. 애초에 채소가 기본적으로 맛이 없다 보니, 변화를 준다고 해서 의미있지 않은 것이다. 두부 같은 식재료를 보라. 제조업체가 좀 있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똑같은 물건을 내놓는다.
그렇다, 두 번째 문제는 맛이다. 없다. 다양하지 않아도 맛이 좋으면 될텐데 사실 그렇기 어렵고 전혀 그렇지 않다. 채소는 닝닝하며 *자연스런* 단맛이 부족하고, 과일은 *자연스럽지 않은* 단맛이 넘쳐는 한편 신맛 등은 전혀 없다. 그러니 날로 먹어도 맛이 없어 쌈장이나 찍어 먹게 되고, 양파 같은 식재료는 오래 캐러멜화 시켜도 진한 단맛이 배어 나오지 않는다.
세 번째는, 조리 방법의 한계를 미리 설정하는 가공 방식이다. 특히 육류가 가장 심하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고기는 팩에 싸인 무엇인가’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반육식주의자 등이 공격하는데, 한국의 고기는 그보다 심해서 대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나 있다. 최대한 얇게 자르거나 저며서 구워 먹기 위한 용도다. 부위나 맛은 상관 없고 잘게 자를 수 있으면 된다. 그런 현실에서 등보다 목에 가까운 목심(chuck)이 자꾸 ‘윗등심’ 같은 이름을 슬쩍 빌어다 쓴다. 칼로 잘린다고 구웠을 때 맛있지 않지만 이런 경향이 갈 수록 심해진다.
최근 온라인 양고기 판매 업체인 돌핀 양갈비에서 어깻살을 1kg 샀다. 갈아 버거를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이곳의 통 어깨살은 지방도 저절하게 붙어 패티로 아주 좋다. 그런데 한참 안 먹었다가 주문을 해보니 사진처럼 고기가 불고기 또는 샤브샤브 거리로 얇게 저며져 온 게 아닌가. 과연 이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동물과 부위에 상관 없이 소위 “한국식”으로 먹기 위한 획일화는 아닐까? 물론 돌핀양갈비는 좋은 업체라, 전화를 걸어서 통살을 원한다면 아마 그렇게 보내줄 것이다. 나는 다만 이렇게 바뀐 논리가 궁금하다.
네 번째, 비싸다. 나같이 별 신경 쓰지 않는 이도 안다. 어떤 식재료는 유통비 때문에 훨씬 더 비싸지는 나머지 소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천편일률적으로 팔리는 고기가 그렇다. 과연 한우의 맛이 호주나 미국 소보다 나은지도 의문이지만, 가격 차이가 두 배 이상도 나니 사실 적절한 확인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인 이유 때문에 한우 선택을 바라는 것도 이제 잘 안 먹힌다. 같은 소에서 나온 우유 같은 건 어떤가. 난 지금 마트에서 전지분유 1kg 짜리를 15,000원에 사왔다. 안 팔리는 우유 처분 용으로 만든 분유 아닌가? 우유에 대해서야 예전에도 썼으니 동어반복은 하지 않겠다. 어차피 먹을 동기가 없어지는데 비싸고 맛은 없다.
끝없이 쓸 수 있다. 식재료 관리 등도 나쁘다. 고급 마트에서 이만 원도 넘는 제주도 토종닭을 샀더니 가슴쪽 껍질이 심하게 찢어져 있다. 전라도쪽 도매 시장에서 무화과를 주문하면 좀 싸지만 절반은 뭉개져서 하루 이틀 내에 먹어 치울 각오를 해야 한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데 쌀은 언제나 백미에다가 대용량을 한꺼번에 도정해서 두고 먹는다. 삼면이 바다라는데 굳이 큰 마트에 가지 않으면 생선을 먹을 길이 없고, 있더라도 신선하지 않다. 동네 시장은 아예 언급을 하지 않겠다. 이런 와중에서 된장 고추장 참기름 설탕이 그 천편일률적인 식재료를 뒤덮고 있다. 이쯤 되면 식재료 시국선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한식은 건강식 뭐 이런 얘기만 나오고 있다. 한국의 전체 상황을 감안하면 식탁이 멀쩡할 수가 없는 데도 여전히 그러고 있다. ‘야 #발 도저히 힘들어서 못 먹고 못 살겠다’는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상황 아닌가.
생산자도 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죠.
전 업자들이 작은 생선(미성어) 좀 다루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주 초 백화점에 13,000원짜리 큰 전갱이가 물 좋아보여서 주말에 사러가보니, 2,500원짜리 전갱이만 팔더군요. 전체 크기가 손 한뼘도 안됩니다. 당연히 살은 거의 없구요. 방어는 4,000원에 팔던데 손 한뼘 약간 넘더군요;; 도대체 이런걸 먹을만하다 생각하는건지… 일본여행 갔다가 조국에 돌아와보니 생선이 너무 작습니다.
저는 다 떠나서 뭐든지 (음식을 떠나서도) “다양”하지가 않다는 게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선택지를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고.
소비자맞춤이라는 게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되는데 왜 유독 여기서는 획일화 쪽으로 가는 지 의문입니다. 소비자 자체가 다양성이 없는 건지, 아니면 비율로는 다양하지만 절대적 숫자가 부족한 건지.
어느 쪽이든 당장 나아지기는 힘들겠지요.
그래도 최근에는 소규모 농장들이 조금씩이나마 생기고 있어서 조금은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격하게 공감합니다. 특히 과일은 점점 신맛이 없어지는 맛으로 개량되고 있다는 것도요. 저는 올해부터 무화과 먹기가 싫어지더군요. 일년 새에 무화과 특유의 맛은 빼고 단맛만 나는 무화과–그래서 전혀 무화과 맛이 안나는–종이 시장을 90% 이상 점유해버린 듯했습니다.
유럽 사는데 진짜 공감합니다. 나름 물가 비싸다는 나라에 비싼 동네 사는데도 식재료 값은 훨씬 싸고 재료도 꽤 다양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