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모던 이스트-야심과 욕심과 연습
‘모던 이스트(Modern East)’라는 상호를 처음 들었을 때,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모더니스트 퀴진’ 말이다. 게다가 전체-주요리가-디저트의 고정 코스의 가격이 33,000원에 와인을 짝지으면 추가로 17,000원. 말하자면 50,000원짜리 파인 다이닝이다. 모더니스트 퀴진과 비슷한 상호를 내걸고 그 가격에 파인 다이닝을 내놓는다면 결국 대놓고 연습을 하겠다는 제스처다. 과연 어느 만큼의 연습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품질과 수준에 대한 기대는 없었지만, 연습에 대한 기대는 메뉴를 받고 바로 사그라든다. 두 가지 코스를 준비하는 야심은 좋다. 그런데 한 가지는 음식보다 콘셉트를 내세운다. 6월에 갔었는데 당시 콘셉트는 드라큘라였다. 토마토나 비트의 빨간색을 빈 가스파쵸 등이 나온다. 다른 하나는 일종의 제철(seasonal course)로 특별히 콘셉트를 내세우지 않는 음식을 낸다. 전채와 주요리가 그렇고, 디저트는 한 가지만 나온다.
이 가격이라면 연습은 좋다. 하지만 대상이 콘셉트일 필요 있을까. 정당화하기엔 전반적인 요리의 수준이 받쳐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나 같은 비전문가가 집에서 모더니스트 퀴진 같은 책을 보고 흉내낸 요리의 맛이 난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내가 집에서 만든 음식과 너무 비슷한 맛이 나서 깜짝 놀랐다. 체화되지 않은 레시피의 맛이다.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단백질의 질감이나 소스의 맛, 심지어 플레이팅까지 그렇다. 과연 이런 수준에서 연습을 굳이 두 갈래로 나눠 할 필요 있을까? 무엇으로 어떻게 주목을 받고 싶은지 굉장히 투명하게 드러났다.
한편 와인 짝짓기는 발상 자체를 높이 사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면 장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 잔 5,000원에 낼 수 있는 와인의 품질이 레스토랑의 의지와 무관하게 썩 좋지 않을 가능성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손님이 짝짓기를 선택한다고 보기도 어려우니 회전은 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래 버틸 수 있는 와인들이 아닐 테니 맛이 빨리 떨어지기 쉽다. 여건을 감안해 그러려니 넘겼지만 실제로 세 종류의 와인은 대체로 희미했다. 이 가격에 마실 수 있는 와인이 안 그러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저녁이었는데, 오가며 이런 레스토랑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고객층이 이런 레스토랑을 찾을 수 있을까. 일단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맛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층이라면 딱히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가격을 장점으로 노리기에 음식에 딱히 장점이 없다. 너무 못해서 먹을 수 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확실히 즐겁지 않다. 그럼 슬프게도 파스타 일색인 소개팅 장소에 일종의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또 정확하게 싸다고 보기 어렵다. 짝짓기를 포기하면 융통성이 좀 생기지만 결국 두 사람의 식사 비용이 10만원인데, 그 돈을 내고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 또는 여건은 아니다. 이래저래 나에겐 이 레스토랑이 너무 엉거주춤해 보인다.
요약하자면 그렇다. 야심과 욕심이 너무 많다. 그래서 심지어 연습마저도 정확하게 방향을 못, 아니 안 잡는다. 높은 의욕이 언제나 장점일 수 없다. 나의 능력은 물론 여건도 따져 총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뒤 내리는 선택과 집중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음식이든 코스든 최대한 단순하게 잡아 그 자체를 연마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면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렇지 않다. 드라큘라니 하는 컨셉트가 상호와 더불어 매체를 의식한 노출 전략이다. 음식이 아니다. 이를 싼 가격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