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이탈리-고의로 외면하는 듯한 디테일

img_6230분당에 볼일 보러 갔다가 애매한 시간에 이탈리에서 점심도 저녁도 아닌 끼니를 먹었다. 모둠 전채와 라구 파르파델레, 티라미수를 시켰는데 파스타가 먼저, 전채가 나중에 나왔다. 여러 모로 난처했다. 파스타를 먹다 말고 전채를 먹자니 생면이 금방 달라 붙거나 불고, 그렇다고 파스타를 다 먹고 전채를 먹자니 맛이 압도당한다. 라구의 바탕일 수입 통조림 토마토의 맛이 훨씬 더 또렷하면서도 강하기 때문이다(사진에 없지만 모둠 전채는 빵에 국산 방울 토마토 샐러드, 얇게 저민 가공육 두 종류였다).

이에 대해 항의하니 주방의 각기 다른 부분에서 만들어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정도를 관리 못할 시스템이라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도 전혀 신경쓰지 않을 정도라니 믿기도 어려웠다. 레스토랑의 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파스타 한 그릇에 20,000원대라면 싸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가공육 등 미리 또는 주방에서 아예 만들지 않는 요소 위주인 전채가, 생면이라고 해도 삶아야 하는 파스타보다 오래 걸린다는 점 또한 헤아리기 힘들었다.

만약 음식 자체가 만족스러웠다면 불만을 덜 품었을 수도 있다. 맛이 없었느냐고? 정확하게 그렇지는 않다. 불쾌하지 않게 먹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각 음식마다 보여주는 약점의 패턴이 일관적이어서 결과적으로 불만족스러웠다. 셋 가운데 둘에서 음식의 핵심 디테일을 고의로 외면하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모둠 전채는 어차피 국내에서 만들지도 않는 요소가 주를 이루므로 크게 할 말이 없어야 되는데, 하필 샐러드로 나온 방울토마토에서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아 아쉬웠다. 토마토는 희망이 없는 재료이므로 딱히 주방의 책임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 맛이 없다는 것 자체는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편 라구의 경우 갈지 않고 약 1cm 정육면체로 깍둑썰기한 쇠고기를 쓴다는 발상은 좋았지만, 분해가 덜 되어 힘을 주어 씹어야만 했다. 불에 닿은 흔적이 겉면에 딱히 없는 것으로 보아 끓고 있는 소스에 그냥 고기를 넣어 익힌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같은 재료와 레시피를 쓰더라도 지진 고기와 소스에 그냥 넣어 끓인 고기는 맛에 공헌하는 정도가 다르다.

img_6231마지막으로 티라미수를 보고서 라구의 패턴이 의도적이라는 심증을 굳혔다. 일단 전혀 켜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크림을 일단 채운 다음 과자(아마레티?)를 더했음이 분명한데, 심지어 그 과자는 전혀 커피(+리큐르)에 적시지 않았다. 따라서 크림의 맛만 날 뿐더러, 과자의 질감도 전혀 어우러지지 않았다. 단단한 정도를 보건대 크림으로만 단지를 채워 두었다가 낼 때 부스러뜨려 더한 것 같기도 했다. 켜조차도 없으니 맛이 너무나도 단조로웠다.

음식 나오는 순서에 대해서 항의하자 매니저라는 사람이 나와서 사과하고, 극구 필요 없다고 했음에도 에스프레소 값 만큼을 제외하고 계산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런 디테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다른 공간에서 만들기 때문에 전채와 파스타의 순서를 지킬 수 없도록 정해 놓은 상황이라면 고의로 외면하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토마토 등이 국산이 아닐 수 밖에 없는데다가 기본적으로도 맛의 지향점이 한국식 양식은 아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불쾌하거나 맛이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채-파스타-디저트의 조합에 50,000원 정도가 드는 음식이라면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지만 이런 디테일을 고의로 외면하면 안된다. 음식의 핵심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4 Responses

  1. del says:

    오픈했을시점에 찾았는데 제일행은 저 포함 두명이었고 제 뒤에서 기다리는 분들은 네분 이었습니다. 4인석 자리가 났다며 저보다 뒤에 있는 네분을 안내해도 되겠냐고 매니저가 묻더군요. 식사의 시작전부터 불쾌함을 안겨주던 곳이었는데… 마침 글이 올라며 몇자 적었습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 bluexmas says:

      그건 너무한데요. 듣는 저도 굉장히 불쾌합니다.

  2. 구독자 says:

    잠실 롯데월드몰 에비뉴엘 6층에 입점한
    이태리 밀라노 식품점 peck 레스토랑도
    맛이 없습니다.

    먹어보면 이곳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고급진 인테리어에 어울리지 않게 왜 싸게 팔고 있는지 이해가 됩니다.

    신세계에서 운영하는 댄앤델루카도 장사가 잘 안되는 모양이더군요.

    • bluexmas says:

      딘 앤 델루카도 사실 먹을 게 별로 없죠. 물건 줄어드는 걸 보면 한국에선 뭐가 팔리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