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초록바구니
“살이 엄청나게 찌셨네요.”
“네? 오랜만에 밥 먹으러 왔는데 그런 말씀 하셔야 되는 건가요?”
“어, 제가 뭐 잘못했나요?”
사연은 이렇다.
1.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식사한 뒤(3-4년 전?), 셰프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개인적인 관계냐면, 아니었다. 몇 번 갔고 특히 개념의 차원에서 음식이 좋다고 생각했으며 식사 자리에서 몇 번 이야기했을 뿐이다. 마지막 식사도 음식 안에서 진로 고민 중인 아는 이와 함께한 것이었다. 그래서 전화의 용건은? 직원-요리사-가 유학을 가는데 추천서인지 관계 서류 번역 부탁이었다. 네? 보수를 받더라도 할 일은 아니었지만 행간으로는 주겠다는 의지가 읽히지 않았다. 나는 이런 부탁을 주고 받을 만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 않느냐고 대응했고 기분 언짢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통화는 끝났다.
2. 그리고 나는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올 초 레스토랑 리뷰 계획을 짤 때 초록바구니도 포함시켰다. 신문처럼 주 1회도 아닌 월 1회에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나의 리뷰는, 예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일종의 아카이빙 성격도 포함한다 . 그래서 한 번은 리뷰로 남겨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편집진에서는 반대했다. 그래서 다시 찾은 자리였다. 일단 확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저런 말을 들어야만 할까. 당황스러웠다. 안면이 있다고 해도 외모에 대한 언급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쨌거나 괜찮다. 음식만 맛있으면 된다. 개인적인 감정은 언제나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셰프에게 개인적인 호불호를 품지도 않을 뿐더러,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음식만 맛있으면 찬사를 건네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관심이 없기에 싫어할 일도 없지만, 만약 싫어하는 셰프가 맛있는 음식을 낸다면 엄청나게 흥미롭지 않을까. 나 자신의 개인적인 갈등을 제 삼자처럼 바라보는 재미를 느낄 기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록바구니의 음식은… 실망스러웠다. 무엇보다 지쳤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곳저곳 한식의 문법을 일부 차용한 젊은 셰프의 레스토랑이 등장하고 큰 주목도 받고 있지만, 크게 물의(?!)를 일으킨 리뷰 등에서 의견을 밝혔듯 나는 그들의 개념적 접근이 아직까지는 견고하지 못하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 가장 좋을 때 초록 바구니의 음식에서는 한식의 개인 및 현대화(사실 그게 그거지만)의 예로 삼을 수 있는, 견고한 논리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이곳은 한 번도 젊은 셰프가 운영하는 이런저런 레스토랑 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사진 가운데 절반 가량은 접시를 비우기가 힘들 정도였다. 온도와 맛이 굉장히 이해하기 힘든 좌표에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나아가고 싶은 지점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걸 억누르려는, 한마디로 체념이 배어있다는 인상이었다. 이해와 공감은 할 수 있더라도 파인 다이닝에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과 맛이랄까. ‘시대’라 일컫기엔 과장일 수 있지만 가능성이나 잠재력 이상, 즉 일종의 완성을 이룩한 개체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채 전성기를 넘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사람들 남 외모 지적질은 정말 세계 선수급인 듯요.
심지어 자기 식당에 밥 먹으러 온 손님한테라니…
그런데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니,
저렇게 센스가 부족해서 음식은 어떻게 한답니까.
제가 생각하는 다른 퀴진과 대별되는 한식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국물이나 넉넉한 소스에서 오는 푸근함과 따뜻함인데요,
요즘 한식 파인 다이닝에서 내는 것들 보면 서양 아류 같아 너무나 식상하고 감흥이 안 납니다.
더이상 흔할 수가 없는 서양식 플레이팅이네요.
(딸기 들어간 디저트는 심지어 미완성으로 보이고…)
한식 조리사들이 왜 그리 우리 음식 문법에 자신감이 없는지…
나오는 게예전이랑은 정말 많이 바뀌었네요..
음 근데 여기 이촌동 아니었던가요?
질이나 참신함이 예전에 비해 떨어져 보이는듯도 하네요.
외모언급은 안주인이 성격이 좀 낙천적으로 보이던데 안부 인사 겸 별 생각 없이 건넨 인사가 아니었을지 ^^
아무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말을 별 생각 없이 하면 안되죠. 악의가 있냐 없냐도 별로 중요하지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