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로버섯과 대통령의 만찬
최근의 청와대 만찬에서 세계 삼대 미식 재료인 송로버섯(트러플)과 철갑상어알(캐비아)가 등장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반응은 예상대로다. 폭염에 누진세 폭탄으로 ‘에어컨을 네 시간만 틀면 문제 없는데’라는 둔감한 답변이 두들겨 맞는 상황에서 고급 식재료를 쓴 메뉴가 굳이 올라야만 하겠느냐는 것. 원칙적으로 동의하기란 아주 쉬운 일이다. 여러 갈래로 못마땅할 수 있는데, 이것저것 깊이 따지지 않더라도 둔감한 판단이 누구라도 좌절시킬 수 있다. 뭐 하필 이런 시기에 굳이 그런 메뉴를 낸단 말인가.
하지만 그건 현재의 한국 상황으로 인한, 거의 조건반사적인 반응이다. 게다가 하루이틀 일도 아니잖는가. 이제 반응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귀찮다. 나는 고급 추구 자체보다 수단에 깊이 실망했다. 분명 시기는 문제일 수 있지만, 고급 자체를 추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물론 향유할 기회가 적거나 없는 이들-나 당연히 포함-에게 고급 재화란 증오의 대상일 수 있다. 하지만 고급이 제대로 존재 못한다면 그 아래로도 상황이 만족스러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 방향으로 정해져 흐르지 않을 수는 있지만 위에서 잡아주는 기준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런데 그 고급을 추구하는 수단이라는 게 기껏 트러플이나 캐비아라니, 지극히 실망스럽다. 그렇다, ‘기껏’이라고 했다. 싸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굳이 나서서 검색하지 않더라도 트러플이나 캐비아는 비싼 재료다. 푸아그라와 더불어 ‘세계 삼대 미식 재료’라는 명성을 누린다. 그렇기에 이런 재료는 너무나도 뻔한 고급화의 열쇠다. 그것들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음식에 단순히 첨가하는 방식 만으로도 몇 배의 가격으로 뛰어 오른다.
예를 들어 사진의 오믈렛이 $20대라면, 송로버섯을 아주 얇게 저며 얹는 비용이 $60다. 가치가 몇 배 상승하는 과정에서 주방과 요리는 별로 하는 일이 없다. 캐비아도 마찬가지다. 각종 음식에 고명으로 조금 얹어 폭발적인 짠맛을 보탠다. 문제가 되자 청와대 측에서 ‘음식에 곁들이는 정도로만 사용’했다 밝히는 건 음식의 차원에선 궁색한 변명은 아니다. 어차피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져 봐야 음식의 맛을 압도해버리니 의미도 사라진다.
그래서 트러플이나 캐비아를 나는 의미 있는 고급 재료라 보지 않는다. 너무나도 예측 가능하고 또한 철학도 없다. 말하자면 무취향 졸부의 뻔하고 쉬운 고급화 카드다. 다양한 경향이 존재하지만 이런 재료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셰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충분히 도전적이지 않고, 자신의 세계가 압도당할 수 있다는 경계심 때문이다. 만찬의 나머지 메뉴인 바닷가재나 샥스핀 등까지 한데 아울러 생각해 보면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
로비 때문에 의지를 제대로 펼치지 못했지만 미셸 오바마는 학교 급식을 중심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음식 환경 개선을 과업으로 삼았다. 한편 설탕 섭취 감소 등도 추진해, 정확히 원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전담 페이스트리 셰프가 백악관을 떠나는 일도 벌어졌다. 디저트의 설탕 양을 줄이거나 대체 당류 등을 쓰라는 의견에 이견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청와대에 계신 분의 음식 철학은 무엇일까. 취임 초기 불량식품을 4대악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고, 덕분에 엄밀히 따지고 보면 불량이라 보기 어려운, 쫀디기 같은 영세 식품 제조업이 타격을 받았다. 얼마 전엔 휴가의 시장 행차에서 고춧가루를 놓고 ‘귀한 물건’이라는 반응을 보여 빈축을 샀다(고춧가루가 비쌀 수는 있지만 귀하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소라과자를 모르신다. 그리고 졸부의 메뉴가 한꺼번에 식탁에 올랐다. 원래 그분의 취향은 ‘토속 음식을 소식’하는 것이라던데, 바람직하다 보지는 않지만 졸부 메뉴 올릴 비용으로 그런 음식의 재해석 및 재창조 같은 프로젝트를 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양장에 내용 없는 결과물의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 같은 것 말고. 물론 철학이 음식에만 없는 상황이겠느냐만.
국제 사회에서 지탄 받을까 두려워 중국에서도 만찬에 샥스핀 내지 못 하도록 한다면서요.
국제 감각도 없으신 우리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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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트러플도 고가의 프랑스 뻬리고 트러플(Tuber melanosporum) 시장을
저가의 중국산 트러플(Tuber indicum)이 교란시키고 있다고 하죠.
육안으로는 전문가도 구별을 못 하고 DNA 검사를 해 봐야만 알 수 있다니
웬만큼 인지도 있는 레스토랑이 아닐 경우에는 중국산 트러플을 낼 확률이 높을 듯합니다.
그러면서 “프랑스 뻬리고 트러플입니다.” 하겠지요.
저는…
청와대 요리사께서 중국산 트러플 내면서 프랑스 뻬리고 트러플 샀다고 ‘삥땅’쳐 주셨기를,
그래서 만찬 참석하셨던 높으신 분들 엿 먹여 주셨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ㅋㅋㅋㅋㅋㅋ
(기사를 보니 만찬이 아니라 오찬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