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포비(FourB)-베이글의 의도적 모사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트위터를 헤매다가 연남동의 몬트리올 베이글 가게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베이글 생각이 났다. 베이글은 어떤 빵인가. 난 바게트나 비스킷 등과 더불어 문법이나 의식의 일원으로 이해한다. 흔하고 재료도 단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잘 만든 걸 만나기가 어렵다. 하여간 ‘베이글을 사러 가야 되겠군’이라 생각하던 시점, 광화문 디타워에 들렀다가 마침내 이 베이글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늘 ‘이 위치에 베이글이라. 흠’과 같은 생각을 했었으므로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가게에 들어가서 베이글을 보고 또 집어들 때까지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베이글이라 하기엔 크고 또 가볍고 푹신해 보였다. 물론 잘 생겼다고 볼 수 없다. 음? 일단 후퇴. 3층에서 미국-멕시코 식을 건너 뛰고 바로 한국식이 된 부리토를 먹고 나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유사 미국 멕시코 음식을 14,000원(음료 포함)에 먹었다면 2,500원짜리 베이글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음식이 99% 예상에 들어맞더라도 1%의 예외를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나가는 길에 다시 들러 베이글 두 개를 5,300원에 사들고 나왔다. 맞다, 베이글 두 개에 5,300원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구워 크림치즈를 발라 먹어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베이글이라기에 가볍고 푹신한 건 맞다. 하지만 베이글 특유의 “쫄깃함™”은 분명 존재했고 먹을만 했다. 다만 갈라보니 속살 조직은 내가 베이글이라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달랐기에 흥미로왔다. 먹어 보기 전까지 이 빵이 베이글을 그저 닮기만 했고, 지난 주에 포스팅한 몬트리올 베이글처럼 숙련도의 부족이 원인이라 생각했다. 잘 못 만들어서 크고 가볍다는 말이다. 하지만 입에 넣어 보니 애초에 베이글의 모사가 의도이자 전략이며, 설계 및 실행이 숙련의 산물인듯 보였다. 치밀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만큼의 계산을 통해 이종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말이다.
나름 재미있었지만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의도적으로 베이글을 모사하기만 한 이 빵을 악화의 범주에서 제외시킬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주 단적으로 말해, 이런 크기-무게-생김새-질감의 연합체인 빵이 한국에서 ‘베이글’이라는 이름으로 팔릴 때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까? 아직도 고민중인데, ‘아니다’ 쪽으로 기운다. 기본 없는 응용이 넘쳐나며, 특히 그 기본이 위에서 언급했듯 단순한 기본이라기보다 문법이나 의식의 일원일 때는 그렇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오히려 숙련의 부족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음식보다 이런 게 더 해롭지 않나 생각도 든다.
그리고 가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광화문 한복판의 신축 고층 건물 1층 스토어 프론트에 매장이 있다면 대체 2,500원의 산출법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상대적인 화폐 가치도 있다. 절대적으로야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럭저럭 사는 40대 남성에게 2,500원은 분명히 큰 돈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돈을 무엇에 쓰는가? 부동산 가격이 덕지덕지 끼지 않았으면서 베이글이라는 음식의 기본 문법에 충실한 무엇인가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그런 베이글이 존재한다면 10,000원쯤 줘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직업적 동기만으로도 지갑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빵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굳이 수치화하자면 80-85의 숙련도가 의도적으로 A’ 도 아니고 A” 같은 제품을 만들어서 부동산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맥락에서 판다. 실제로 지갑을 여는 사람은 얻는 게 별로 없다. 그럼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이름만 몬트리올 베이글을 쓴건가요? 제가 아는 몬트리올 베이글은 깨가 잔뜩 붙어 있는게 특징인데… 생김새가 달라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 https://en.wikipedia.org/wiki/Montreal-style_bagel
이 베이글 놓고 몬트리올식이라 말하는 것 아닙니다.
제가 댓글을 달 때는 저 베이글 사진에 연남동 몬트리올 가게 내용이 붙어 있었는데 뭔가 오류가 있었나 보네요 🙂
오류 없습니다. 처음부터 저 글에 저 사진 붙어 있었습니다. 글을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