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플랜트에서 에스프레소 안 마시고 온 사연

IMG_4422(사진의 에스프레소는 이 글과 상관이 없다)

먹은 것에 대해서 쓸 수 있다면, 안 먹은 것에 대해서도 쓸 수 있다. 원고 마감하느라 블로그에 글 안 쓰던 시기에, 동무밥상에서 말도 안되는 점심을 먹고 길 건너 레드 플랜트에 들렀다. 그동안 가끔 갔다. 아주 좋은 커피를 낸다고는 생각한 적 없지만, 근방엔 그만큼도 내는 곳이 없다. 게다가 개업 초기에 비하면 나아졌고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동선이 맞아 또 들러, 바깥 자리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두 잔 주문했다. 가 본 이라면 알겠지만 레드 플랜트의 공간은 넓지 않고, 때로 운영진과 지인으로 붐빌 때도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상황이 꽤 많아서 가급적이면 안에 앉지 않으려 한다. 또한 좋게 말하면 친근감 넘치는 그들의 접객-이라기 보다는 생활인으로서 품성-이 때로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분명히 좋은 의도에서 대하는 것임을 알지만 나의 여건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 말이다. 아니면 평소보다 그들이 더 즐겁거나. 그날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지만 딱 좋은 날씨였으므로 밖에 앉아 기다렸다.

그리고 에스프레소는 나오지 않았다. 에스프레소가 무엇인가. 빨리 나와서 이름 붙은 커피다. 하지만 나오지 않았고, 시계를 보니 20분이 지나 있었다. 에스프레소가 과연 20분 기다려 마실 음료인가. 안을 들여다보니 바리스타 두 명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 그래서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이유가 있느냐고. 그제서야 ‘세팅이 마음에 안 들어서 조정하느라 그랬다’는 대답을 들었다.

기계 세팅 같은 건 영업 시작 전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이 해명을 굳이 납득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커피 특히 에스프레소는 예민한 조작의 산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콩이나 내부 온습도의 상태 등에 맞춰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게 굳이 영업 시간 도중에 20분이나 걸릴 거라고 생각하기 또한 어렵다. 하지만 그 모두를 떠나 정말 문제는, 누군가에게는 맥락에 따라 한없이 길 수도 있던 20분이라는 시간 동안, 왜 나와서 말 한마디 설명 한 줄 할 생각을 못했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가게를 떠났다. 물론 에스프레소는 마시지 않았다.

좋은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기 위해서 20분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기다림의 종류의 속성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테면 손님이 너무 많아 정신 없는 상황이었다면 알려주지 못했더라도 개의치 않을 수 있다. 아예 들르기를 포기하고 갈 수도 있고, 심지어 다음을 기약하고 마시지 않은 채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가게는 적당히 한가했고, 에스프레소 두 잔에 20분 걸릴 거라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까다로운 인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도 상관 없다. 이 정도의 기본이 안 되는 서비스라면 커피 한 잔에 대수로운 것 이상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마저도 안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이건 정말 ‘1일 1포스팅’의 원칙에서도 글로 쓰기에 사소한 일이지만, 그런 것조차 과연 제대로 안 되는 현실에서 대체 뭘 기대해야 할까.

1 Response

  1. 번사이드 says:

    여기 주인장이 손님들과 거리감 조절을 잘 못하죠..
    홍대 근방에선 ‘브루브로스’의 미디엄 에스프레소가 괜찮은 편입니다. 공간만 넓고 카페 분위기가 잘 나지않는 점은 좀 아쉽구요. 망원동[딥블루레이크]는 약중볶음으로 산미와 과일맛이 지배하는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를 수시로 바꿔내는데, 생두 품질 자체는 좋습니다. 원산지에 따라 복불복은 있더군요. 여기도 공간과 시스템은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