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아그라 토숑과 재료의 태생적 윤리 문제
올해는 본의 아니게 푸아그라를 꽤 많이 먹었다. 찾아간 레스토랑의 절반 이상에서 먹었던 것 같다. ‘본의 아니게’라는 단서를 굳이 단 건, 푸아그라의 존재에 대해 딱히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몇 번 가볍게 언급한 바 있는 것처럼, 푸아그라 같은 재료는 내는 순간 게임이 시시하게 끝나 버린다. 재료가 그 자체로서 압도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선도가 대표하는 재료의 질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물성 때문이라도 보아야 한다. 딱히 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어쨌거나 압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메뉴에 올라 있으면 일부러 찾아 먹었다. 그런 재료를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도저히 실패할 수가 없는 재료’ 라는 푸아그라도 누군가는 실패할 수 있을 거라 보았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다. 요즘 서울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실패는 거의 100%에 가깝게 ‘장고 끝의 악수’라고 범주화할 수 있다. 내가 맛본 푸아그라의 실패도 그러했다.
한편, 질과는 다른 차원에서 압도적인 재료의 성질을 질에 관련된 것이라 혼동 또는 착각할 수도 충분히 있다. 말하자면 푸아그라라고 해서, 또 다른 재료보다 월등히 비싸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믿고 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개 오리지만 사실 거위간이 더 좋고, 또한 멍이 든 정도에 따라 등급이 A-B 등으로 갈린다. 푸아그라를 메뉴에 올리는 레스토랑이 이러한 점까지 고려를 할까? 아마도 한우 안심처럼, 메뉴에 올리는 결정 자체가 셰프의 선호도와는 상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고급 레스토랑이니까 그 정도는 먹어야 한다는 고객층의 압박을 수용한 결과일 거라는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푸아그라를 먹은 덕분에 재료에 대해 상기하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재료의 존재다.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직접 만져본 적이 없었다. 비싸서? 정확하게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냉동 거위간은 500g에 60,000원대다. 100g에 12,000원이니 사실 한우 스테이크보다 싸다. 게다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면 조리도 훨씬 간편할 수 있다. 뜨거운 팬에 겉만 적당히 지지면 된다. 게다가 감각적 만족도가 무척 높다. 달리 말하면, 금방 감각의 포화 상태에 이른다. 500g 한 덩어리라면 열 사람이 나눠 먹어도 충분할 것이다. 당연히 배는 부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걸 또 먹고 싶지 않아진다. 그 감각적 포만감이 꽤 오래 간다.
물론 나는 그 이상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푸아그라 토숑(Foie Gras Au Torchon)이다. ‘Torchon’은 행주 같은 천을 뜻한다. 따라서 ‘테린(terrrine)’이 파테를 넣는 도기 틀 자체를 의미하듯, 토숑도 행주에 말아서 만드는 파테다. 정확하게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다만 시간은 좀 걸린다. 조리법을 소개해보자. 몇 문장으로 간단히 소개할 수 있다. 일단 간을 쪼개 핏줄과 멍들어 붉은 부분을 최대한 들어 낸다. 다시 모아 넓게 펴서 앞뒷면으로 간을 한다. 설탕(0.5%), 소금(1.5%), 후추(0.25%), 질산염이 든 붉은 소금(0.25%, 이상 무게 대비), 꼬냑 2-3큰술의 다섯 가지를 쓴다. 그리고 말아 성글어 통풍이 잘 되는 천으로 싸서 냉장고에 매달아 둔다. 물렁한 지방이므로 그냥 두면 바닥에 닿은 부분이 납작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다. 최소 이틀 정도를 두었다가 섭씨 70도의 물에 2분 정도 삶은 뒤, 다시 찬물에 바로 식혀 물기를 걷어낸 뒤 다시 냉장고에 매단다. 적어도 하룻밤 정도 두었다가 썰어 먹는다(레시피는 푸드랩과 프렌치 런드리 요리책 참조).
푸아그라 또한 가공육(charcuterie)의 핵심인 ‘분해 후 재조립’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다. 덕분에 기본 상태의 간이 가지지 못한 밀도를 새롭게 품은 채 다시 태어나고, 이는 순수한 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물성과 맞물려 푸아그라의 쾌락적 측면을 한층 더 강화시킨다. 입에서 천천히 녹으며 퍼지는 차가운 지방의 결이 폭 넓으면서도 한편 굉장히 세심하다. 아마 일정 부분 질산염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쨌든 결이 넓고도 섬세하니 웬만한 걸 더해도 잘 통하지만, 대신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쾌락적인 측면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곁들이는 탄수화물도 역시 버터를 많이 넣어 만든 브리오슈가 고전적인 조합이고, 농축된 단맛의 과일 콩피 등등으로 각을 잡고 알갱이가 씹히는 바닷소금으로 짠맛까지 높은 지점에서 균형을 잡아 준다. 곁들이는 술도 드라이한 스파클링 등등 또한 잘 어울리지만, 적절히 압축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는 디저트 와인이 좋다. 사진에 보이는 건포도는 사실 원래 계획이 실패해서 대안으로 급하게 준비한 것. 뜨겁게 데운 럼에 불렸는데, 잼 한 숟가락 더해서 와인 등에 끓이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만들다 보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푸아그라라는 재료의 목에 걸린 가장 큰 사안인 윤리 문제다. 푸아그라를 먹어보지 않은 이에게도 너무나 유명하다. 한마디로 푸아그라는 지방간이다. 과식의 결과물이니 그 자체로도 문제라 여길 수 있지만, 과식을 조장하는 방식이 언제나 화제다. 목에 관을 집어 넣고 먹이를 쏟아 붓는다. ‘Gavage’라 불리는, 강제 삽관 사육이다. 기원전 2,500년 경 이집트에서 기원해 고대 로마에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유서 깊은 방식이다 보니 동물 학대의 대표인양 자리 잡았다. 덕분에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2012년, 법적으로 금지당했다. 그탓에 미국에서 두 군데 있는 푸아그라 농장 가운데 한 군데(나머지는 뉴욕 주 헛슨 골짜기)가 문을 닫았다. 논란 끝에 작년 1월 연방법원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으나, 2월 캘리포니아 주 법무장관이 항소했다.
정황을 감안하면, 푸아그라를 동물 학대의 결과물이라 보기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두둔하는 입장을 표명하기 위한 긴 글이 종종 존재하는데, 읽어 보면 오히려 더 머리가 복잡해진다. 핵심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강제 삽관이다.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이런 문제가 그렇듯 따져 보자면 끝도 없지만, 일단 가장 큰 두 가지 측면만 따져보자. 첫째는 쾌락이다. 쾌락을 위한 수단과 방법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 것인가. 특히 한국의 맥락에서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쾌락적인 음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방식이 다양하지 않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소주를 마시고 취하는 것도 음식이 주는 쾌락이다. 한마디로, 순수하게 건강이 목적이 아닌 음식은 모조리 쾌락의 범주에 집에 넣을 수 있다. 과연 이를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가격 대 성능비’의 논리로, 포만감 위주의 쾌락이 득세하는 현실이라 한국에서는 아직도 다양한 쾌락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푸아그라가 주는 쾌락은 정확하게 호환 가능한 것이라 볼 수 없다. 닳고 닳았지만 ‘세계 3대 미식 재료’로 통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둘째, 그와 얽혀 인위적인 노력에 대한 범위 설정의 문제가 있다. 푸아그라는 야생 동물의 산물이 아니다(댄 바버의 <Third Plate>에서는 자연 발생하는 푸아그라와 거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식재료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의 대부분은 동물의 ‘웰빙’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개량 또는 개조의 산물이다. 마블링을 발달시키는 비육 등이 극명한 예겠지만, 그런 지엽적 예를 따지기 이전에 현존하는 식재료 자체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시간을 두고 개량한 결과다. 정확하게 어느 시점에서 이 개조의 손길을 부정할 것인가? 비육이나 푸아그라는 안되지만 크고 잘 생긴 사과는 괜찮은가? 현재 한국에서 압도적인 ‘꿀박이 사과’는 결국 식물 비육의 결과가 아닌가? 그 기준은 정확하게 생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체면치레를 위한 것인가? 내재적인 모순을 없애는 사고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늘 말하지만 밑도 끝도 없는 제철/유기농/국산 및 지역 재료, 동물 복지 등등의 공허하지만 전후 맥락도 모른채 프로파간다처럼 내뱉는 일종의 “순혈주의”는 곤란하다. 생명인 식재료를 만들어 내는 복잡하고도 유서 깊은 과정에서 그토록 한 방향으로 쏠린 가치를 반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당신의 이상을 만족시켜주는 식재료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설사 존재하더라도, 쉽게 뱉는 프로파간다로는 치를 수 없는 가격표를 달고 나올 가능성 또한 아주 높다.
작년에 들른 레스토랑의 절반 이상에서 푸아그라를 먹었다고 했다. 때로 즐겁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난 이 단계를 거쳐 가야만 한다고 본다. 맹목적으로 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먹다가 질려도 좋다. 또한 그런 과정에서 셰프도 방문자도 재료의 의미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최근 위헌 판정을 받고 푸아그라 사용이 자유로와졌지만 다시 쓰지 않는 셰프들도 많다고 들었다. 비록 강제로 처한 여건이지만 이를 통해 다른 재료의 가능성을 찾았다는 것이다. 과정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한국의 레스토랑도 이런 과정을 거쳐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애초에 푸아그라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단계 말이다. 사용을 강제하는 졸부 취향의 여건만 극복할 수 있다면, 지금도 많은 셰프들이 푸아그라 같은 재료를 쓰지 않을 거라 본다. 나에게 최소한 그만큼의 믿음은 있다. 그런 여건도 일단 푸아그라가 뭔지 알아야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메뉴에서 접하는 것이 딱히 반갑지 않더라도 총체적으로 못 마땅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설사 못마땅하더라도 넘길 수 있다.
혹시 푸아그라가 맡는 역할을 대신할만한 재료가 있을까요..? 정말 추천/조언 필요해서 질문드려봅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생각할 부분이 많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