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 에클레어 바이 가루하루: 에클레어의 진화, 페이스트리의 퇴화
이런 에클레어를 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과연 이러한 형식의 변화를 진화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핵심은 아무래도 장식의 기능과 역할이다. 이전의 에클레어는 (초콜렛) 글레이징을 페이스트리 위에 직접 바르는 방식으로 마무리했다. 이를 분리하면서 단순한 장식이 아닌 맛과 질감에 기여하는 요소로 다양화한다. 이를테면 왼쪽의 다크 초콜릿 에클레어에서는 분리된 초콜릿 판넬이 맛은 물론, 바삭함으로 질감의 대조를 꾀한다. 반면 왼쪽의 패션프루트와 라즈베리 에클레어에서는 패션프루트의 맛이 퐁당-젤리의 형식으로 부드러움을 더하면서 내부의 페이스트리 크림+라즈베리 젤리와 조화를 이룬다(다만 패션프루트의 켜에서 살짝 설탕 알갱이가 씹히는 느낌-grainy함-이 있었다는 것만은 밝혀둔다). 그래서 콘셉트 자체만 놓고 보자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맥락을 따져보아야 한다. 이 에클레어가 전체 또는 한국의 디저트나 페이스트리의 “씬”에서 어떤 입지를 차지할 수 있느냐는 것. 무엇보다 슈+크림 조합의 잠재적이고 태생적인 결함에 주목한다. 슈는 밀가루를 익반죽해서 계란과 버터를 넣고 치대어 만든다. 일견 풀을 쑤는 것과 비슷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글루텐이 전체의 구조를 지탱하는 원리다. 파리지안 뇨끼처럼 끓는 물에 삶아 마무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즉 오븐에 굽는다면 결과물은 바삭하면서 다공질인, 그래서 가벼운 페이스트리가 된다. 여기에 크림을, 그것도 미리 더한다는 건 수분으로 인해 페이스트리의 바삭함을 침해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때로 결과물은 바삭함을 완전히 읽고 최악의 경우는 질겨진다. 게다가 이 과정을 대부분의 경우 먹는 시점에 앞서 거친다. 본 바탕이 부드러운 케이크나, 똑같이 바삭한 요소에 크림을 더하지만 먹기 직전 크림의 켜를 더하거나 접촉면을 줄인 밀푀유 같은 디저트와 비교하면 작은 단점은 아니다(이태원의 파티스리 미쇼에서 고전적인 밀푀류를 팔았는데, 질겨 먹을 수 없었다) . 그리고 이러한 식의 “진화”는 에클레어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복잡한가?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다. 온갖 다양한 디저트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콘셉트의 에클레어도 현재보다 좀 더 의미 있을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 연말까지 영업하고 문을 닫는다는 홍대 마카롱의 경우를 보자. 프티 가토 등등의 라인업 사이에 이런 방식의 에클레어도 존재한다. 다른 것도 만들 줄 아는 가운데 이런 것도 한다는 말이다. 반면 ‘가루 하루’의 라인업은 에클레어와 마카롱이 전부다. 그 둘이 그만큼 의미 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하는 것인가, 아니면 판매용으로 잘 만들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인가? 이 둘의 차이에 따라 상품의 위상은 현저하게 달라진다. 에클레어가 아무리 복잡한 요소로 재무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요소를 헤치고 바라본다면 케이크보다는 못하다. 좀 더 극단적으로 비유를 써서 표현하자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지 않는다.’ 디저트는 본질이 인위적이므로 형식과 완성도, 그를 위한 기술 수준에 따라 줄 세우기도 가능하다. 에클레어가 과연 어느 좌표에 놓인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장식의 발전이 그 좌표에서 얼마만큼 앞이나 위로 에클레어를 당겨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맛. 그렇다, 맛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규정할 수 있겠다. ‘맛이 없다’라는 가치 판단에도 여러 위계가 존재한다. 간단히 말해 ‘나쁘다(bad)’ 부터 ‘평범하다(mediocre)’까지 전부 ‘맛이 없다’는 상태에 속한다. 가루 하루의 에클레어는 평범함에 속하는 맛없음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를 지적할 수 있지만 결국은 본질적인 문제다. 분명 일정 수준 기여는 하고 있다만, 장식이 궁극적으로 의미 있는 방식으로 맛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형식이 언제나 본질을 앞서는 현실의 거의 정중앙에 자리잡는 디저트다. 다른 많은 가게들이 그렇듯 걸어 놓은 제과학교 졸업장이, 그 자체로도 큰 의미 없지만 과대평가의 빌미를 제공한다. 애초에 이 디저트는 맛을 중심에 놓고 설계하지 않은 것이다.
형식을 지적했으니 그 사이에서 불거져 나오는 모순 또한 지적하겠다. 커피를 주문하면 종이컵에 담아준다. 물도 종이컵에 마찬가지. 그라인더 일체형의 머신은 캡슐커피보다 더 맛없는 커피를 추출하는데, 그걸 종이컵에 담아 한층 더 맛이 없게 만든다. 그리고 5,500원. 형식에 치우치는 디저트를 만드는 곳치고는 또 다른 형식에 지나치게 무심하다. 일회용 플라스틱 포크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장식이 없다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는 포크지만, 그마저도 에클레어가 내포하는 최소한의 고급스러움과는 결이 맞지 않는다. 공간이 부족해서 설거지를 못하는 상황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실외를 거쳐 진입해야 하는 별개의 공간이지만, 판매 공간보다 넓은작업 공간이 있다. 미니멀한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강박이 전체적인 만족도를 한층 더 떨어뜨린다. 이런 수준의 커피를 이런 형식에 담아 이런 가격에 팔 것이라면 차라리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
외국에서 유행하는 것을 시차를 두고 들여온다. 그 과정에서 일부만 선별하는데, 그 기준은 대부분 난이도다. 재현에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 팔기에 쉬운 것을 고른다는 말이다. 나는 궁금하다. 왜 하필 에클레어인가. 에클레어가 가게의 대표이자 거의 유일한 메뉴로 자리잡고 주목을 받는 현실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을 에클레어의 진화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설사 진화라고 해도 결국은 페이스트리 전체의 퇴화일 뿐이다. ‘이 정도면 먹힌다’라는 인식을 굳히는데 또 하나의 적극적 행동 주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직업인의 역량으로부터 가능한 기대의 수준이라는 것이 아예 형성되어 있지도 않다.
트윗에서 쓰신 ‘에클레어라는 것 자체가 디저트-페이스트리의 퇴화다’라고 하신 글을 이제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에클레어라는 형태 자체로는 모순을 딛고 ‘맛이 있음’과 ‘개성’ 혹은’맛의 방향’을 부여하기가 힘들다고 이해해도 될런지요. 맛에 개성을 부여하려면 기본적으로 음식의 종류 관련없이 어떤 요소가 개성이 아닌 ‘맛없음’을 절대적으로 획득하게 하는지 이해하고 극복하거나 피해가야 하는 것일까요? 훈련된 직업인 입장에서는 다르게 와닿을 수도 있겠으나 (와닿아야 할것입니다) 일단은 머리로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익숙한 분야로 상상해 보니까 비유적으로는 이해가 살짝 되지만요.
에클레어 자체가 디저트의 퇴화라는 말은 아니고요, 기존의 에클레어에 저런 식으로 보태는 가치가 따지고 보면 에클레어라는 음식의 격을 높이는데 별 의미 없다는 말입니다. 장식적인 요소를 붙여 6,000원대로 케이크에 가까운 가격을 붙였지만 그만큼 내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오독으로 인해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붙여주신 설명을 듣고 다시 선생님의 글을 보니까 제가 흘러넘긴 부분이 보이네요. 제가 부족해서 여전히 상당한 오독의 여지가 많지만 또 든 생각이…
저는 서로 다른 종류의 음식이라면, 서로다른 수평선 혹은 평면 위에 올려놓고 맛의 특징이라던가 좌표를 놔야하는 것인가? 생각했었는데 오늘 올려주신 글을 읽어보니 서로 다른 음식이라도, 같은 평면위에 올려놓고 컨셉의 한계라던가 수준의 위계를 따져봐도 되는거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디저트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물의 물리적 특성과 추구하는 맛의 특성이 겹치는 것이 많다면 가능하지 않겠나 처음 느꼈습니다.
제 수준에서는 선생님의 글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만 진짜 잘 보고 있습니다. 구독료(후원이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도 자주 보내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항상 빚진 기분입니다.
*제 오독으로 열받으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함을 금치못할 뿐입니다.
아닙니다. 죄송하시긴요.
“간단히 말해 ‘나쁘다(bad)’ 부터 ‘평범하다(mediocre)’까지 전부 ‘맛이 없다’는 상태에 속한다.” 이 문장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또 너무너무 좋군요T_T 맘속에 밑줄을 쫙. 요리평론가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읽다보니 에끌레어 ‘전문점’보다는 편집숍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문점’이지만 에클레어의 전문성 자체가 그냥 그런 것이겠지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첫번째로 슈와 크렘파티시에 조합의 본질적인 문제 즉 시간이 지나면서 품질이 저하되는 바삭함이 사라지고 질김이 남는 문제는 정말 해결하기 힘든 딜레마 인거 같습니다. 회전률과 손님이 빠른 소비를 해 주기 바라는 마음 정도 외에는 딱히 해결책이 없구요. 이 문제 때문에 일본에 있는 많은 슈크림집들이 손님이 주문하면 미리 데포지타에 채워둔 크림을 즉석에서 채워주는데, 이역시 손님이 다음날 먹는다 하면 아무런 차이가 없겠지요.
두번째로 우리나라 제과 업계의 가격체계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과도 장사인지라 가격이란 손님의 지불가능 의사를 고려 하여 책정하기 마련이고, 문제는 손님이 가격을 지불할때 그 과자의 본질 즉 노력이나 맛보다는 크기나 무의미한 장식에 지불의사를 부여 한다는게 문제인거 같습니다. 세심하고 복잡한 맛의 구성을 가진 쁘띠가또를 만들어 피스톨레로 정성 스럽게 마무리 하는것 보다. 단순히 큰 크기의 제노와즈를 사용한 무지개 케이크가 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다면, 이는 매우 힘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하신데로 에끌레아를 만들어도 6000원이고 무지개 케이크를 만들면 8000원인데 누가 굳이 힘들게 어려운 난이도의 제품을 만들까 싶습니다. 제과, 특히 프랑스 제과의 묘미는 복잡성이 주는 매력과 넓은 폭의 조합이 주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이는 매우 우울한 일인것 같습니다.
즉석에서 크림을 채워줬는데 산 사람이 나중에 먹으면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죠. 거기까지는 만드는 사람이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그저 밀푀유보다도 기술과 맛의 측면에서 떨어지는 슈-에클레어가 저런 식으로 엄청난 것인양 포장되어 팔리는 현실이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이 가게 또한 유행이 지나면 금방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것이 유행을 타는 자체가 웃깁니다.
에클레어 모양새가 다 거기서 거기긴 한데 이건 보자마자 파리의 모 가게가 떠오르네요 ‘ㅡ’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