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 직후 적절한 휴식이 음식에 미치는 영향
어제는 저녁을 먹으러 젊음의 거리 홍대에 나갔는데, 후보 음식점이 모두 망하거나 문을 닫았더라. 그래서 길거리를 울며 헤매다 눈에 들어온 태국 음식점으로 타협했다. 텃만쿵(새우 크로켓)을 시켰는데 튀기자마자 접시에 담아 바로 냈는지 튀김옷이 바삭하지 않고 속은 물크러질 기세. 입에 물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건 덤이었다. 음식을 만들자마자 먹으면 가장 맛있다고 여기는 믿음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칵테일처럼 아예 불을 쓰지 않는 음식이라면 모를까(이 경우라면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맛이 변하므로 빨리 마시는 게 낫다), 굽고 튀기고 지지는 음식이라면 불에서 내려온 다음 식탁에 올라올 때까지 분 단위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핵심은 온도와 수분의 재편. 튀김의 예를 들자면, 막 기름에서 빠져 나온 순간에는 재료나 튀김옷에서 증발하던 수분과 기름이 표면에 얇은 막을 이룬다. 한마디로 표면에서는 아직도 조리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탕수육을 생각해보자. 이런 상태에서 바로 소스를 끼얹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튀김이 한층 더 눅눅해질 것이다. 튀기자마자 상자에 눌러 담아서 배달하는 치킨도 마찬가지. 한편 재료의 내부에서도 수분의 상태 변화가 일어난다. 스테이크가 가장 흔한 예. 구운 뒤 바로 썰면 “육즙”이 그대로 흥건하게 쏟아져 나온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온도 변화로 인한 수분의 분포를 원인이라 여겼다. 표면에 열을 가하므로 그쪽으로 수분이 몰리는 것이니, 식히면 재분배된다는 것. 하지만 요즘은 그보다 열로 인한 수분의 점도 변화를 더 설득력 있게 받아 들인다. 브루클린 버거 조인트의 패티에서 흘러 나오는 뜨거운 수분도 휴식과 재분배에 신경쓰지 않은 결과다.
군만두를 생각해보자. 거의 모든 경우 튀기자마자 접시에 담아 내오고 그걸 또 바로 입에 가져간다. 그럴때 쏟아져 나오는 수분을 “육즙”이라 좋아하는데, 군만두의 가격과 그를 감안한 재료를 생각해보면 수분이더라도 고기에서 나온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른 재료에서 배어 나온 수분이 조미료를 머금은 것이라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어쨌든, 마치 잘 만들거나 익힌 군만두의 상징처럼 여기는 이 육즙은 식탁에서 약 3-4분 정도만 둬도 줄줄 쏟아져 내리지 않을 것이다. 대신 만두 속 전체가 촉촉할 것. 없던 수분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테니, 그렇게 몰려서 나오는 육즙은 결국 전체로 골고루 펴져 나가야 할 것의 손실분이다.
발효와 숙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식이건만, 정작 적절한 휴식의 미덕을 살리는 음식을 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일단 고기는 잘게 썰어 불에 댔다가 바로 입에 가져가니 불합격. 육즙 같은 걸 따질 겨를이 없다. 찌개 같은 것도 식탁머리에서 끓여, 소리를 안 내고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울 때 바로 입으로 가져간다. 10월 부산 출장길에 KTX에서 본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막 데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콩나물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퍼붓는 참상도 목도했다. 마늘을 익히는 것이 콩나물 무침의 목적이었을까? 열을 잘 다스리는 게 요리의 핵심일텐데 그만큼 실패하고 있는 것. 갓 구운 빵의 신화는 어떤가? 이 또한 클리셰겠지만,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일군다. 그 차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블마선생님 스테이크의 육즙를 설명하실 때 수분의 농도라고 하셨는데 농도보다는 점도에 의한것이라고 봐야 하지않을까요? 수분이나 기름따위가 흐름에있어 온도의 영향을 받는다고 볼때 점도의 차이가 있을거란 1차원적 생각이 들었어요. 죄송합니다. 음식과 요리를 모르는 공돌이리…꾸벅
점도가 맞습니다. 고쳤습니다. 잠이 덜 깨서… 꾸벅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