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과 고추, 고춧가루의 비효율성과 개선안
그렇다, 고춧가루는 왜 그리 많이 써야 하는가(뜬금없다 싶은 분들은 이 글 참조). 매운맛의 습관적 선호에 대해서는 바닥까지 파고 내려갈 가치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글이 너무 길어질 것이다. 일단 주 원천인 고춧가루를 짚고 넘어가자. 나의 가장 큰 회의는 적용 요령이다. 한식은 고춧가루를 제대로 쓰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경우 맛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음식에 고춧가루를 그냥 뿌린다. 웬만큼 곱지 않으면 아예 섞이지 않는다. 맛이 어우러진다고 보기가 어렵다. 고춧가루를 얹어 내는 몇몇 평양냉면집의 국물이 좋은 예다.
한편 고춧가루를 가장 많이 쓰는 김치의 경우도 비효율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삼투압의 원리로 채소에서 뽑아낸 수분이나 젓갈 등을 더해 페이스트 형태를 만드는데, 말린 고춧가루에 수분을 다시 더하니 부피가 늘어나거나 채소에 버무리기 좀 더 좋은 상태가 되기는 해도 캡사이신이 지용성임을 감안하면 맛을 제대로 뽑아낸 상태에서 쓴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맛 외에 색을 위해 쓰는 가능성도 아예 논외로 할 수는 없다. 내가 10년째 참고하는 책만 해도 ‘색 잘 내며 고춧가루 불리는 법’에 대해 설명한다. 물론 음식은 눈으로도 먹으니 색을 위해 쓰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치부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것도 맛과 저울질을 정교하게 해야 의미가 있다. 고춧가루를 많이 쓰면 쓴맛도 강해진다. 게다가 국산 고춧가루는 비싸다. 색을 위해 쓰는 게 낭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김치의 색깔과 식당의 중국산 고춧가루 사용에 인과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매운맛 효율이 더 좋은 수용성 캡사이신 조미료도 개발한다는데, 고춧가루의 대안이 될 수는 없는 걸까.
생 고추도 비효율로부터 자유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대체 고추를 어떻게 먹는가? 답은 딱 두 가지다. 생으로 먹거나 그대로 썰어 국물 음식 등에 넣는다. 매운맛을 차치하고서라도, 질긴 껍질 때문에 편하게 먹을 수가 없다. 아삭한 맛에 먹는다고? 식당에서 쓰는 고추는 이제 대부분 아삭함의 울타리를 한참 벗어났다. 딱딱하고 질기다. 생으로 먹기도 어렵지만, 이런 건 찌개 등에 넣고 푹 끓여도 껍질만 남아 입천장을 날카롭게 찌른다. 요즘 가치고추 등 나름 새로운 품종이라는 것들이 등장하는데, 모양과 색이 다르지만 질감은 거기에서 거기다. 질기다.
그래서 궁금하다. 왜 껍질 벗길 생각을 못할까. 불에 지져야만 하니까? 직화구이를 어느 동네 고깃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냥 그 가능성을 여태껏 몰랐다고 말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까맣게 터져 올라 올때까지 직화에 그을려서 밀폐용기나 비닐 등등에 담아 두면 올라오는 김으로 인해 껍질이 거의 저절로 벗겨진다. 집에서는 석쇠에 끼우거나, 아예 화구에 그대로 올린다(가정용 환기 장치가 이 정도는 소화할 수 있다). 반으로 갈라 씨를 발라 내면 매운맛의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쓸 수 있다.
빨간 고추는 그대로 송송 썰어 국물 음식이나 무침 등에 액센트를 주는데 쓴다. 부드러워졌으므로 질감의 측면에서 훨씬 더 자연스레 섞인다. 한편 맵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샐러드 또는 무침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어떤 양념이든 할 수는 있지만 고추이므로 고추장 양념은 됐고, 올리브기름에 레몬즙 정도면 손도 많이 안 가고 먹을만 하다(“한식™”이 아니라 문제인가?). 때로 껍질을 벗겨낸 과육의 두께 때문에 그을리는 것만으로는 질감이 어중간할 때도 있다. 아삭하지도 부드럽지도 않는 것. 이럴 때는 볶거나 찌면 된다. 껍질이 없으면 조리의 효율이 훨씬 좋아진다.
확실히 고춧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그만큼 단점도 발생하게 되죠. 링크해주신 기사를 읽었는데, 일반적인 캡사이신 소스의 매운 맛을 가미하기는 쉽지만 고추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부분을 잡아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아보이네요. 나중에 보게되면 한 번 시도해봐야겠어요.
그리고 말씀하셨듯이 고추가 질겨서 개인적으로는 썰기도 힘들더라고요. 특히 찌개 등 국물에 들어간 고추는 먹을 때 불쾌감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거기다 흐물흐물해지기도 하고. 저렇게 구워서 껍질을 제거하면 그런 질감이 개선될 것 같네요. 일반 고추는 부피가 작아 직화하기 힘들 것 같았는데, 사진에 있는 건 참 예뻐요. 저희 집엔 핫플레이트밖에 없어서 해보기는 힘들 것 같지만요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네 질겨서 진짜 안 썰리죠. 반 갈라서 뒤집어 썰면 그래도 좀 낫습니다.
혹시 오븐토스터기 있으시면 고추 반 갈라서 브로일 하시는 방법도… 보통 벨페퍼 구울때 쓰는 방법입니다만 고추에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네 맞습니다. 그 방법도 있는데 제가 언급 안 했어요. 오히려 확률이 적다고 생각해서요.
본문은 식당 기준으로 쓰셨을테니 한식집에 브로일러 있을 확률은 정말 별 따기겠네요.
옵하님께선 핫플레이트밖에 없으시다니 오븐도 없으실수도… 그러시다면 그냥 석쇠가 가장 쉬울것 같고요.
사실 자체 발화 가능한 토치와 부탄가스 조합이 가장 편합니다만 unitasker라 웬만하면 안 사는 게 낫습니다.
뭐 옛날 반가집에서는 깍두기를 만들 때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고춧가루 불린 물에 썬 무를 넣어서 물만 들이기고 가루는 쏙 빼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만…
뭐 그래도 요즘 학생들 가는 식당에서 많이 하는, ‘매운맛’낸답시고 고추의 매운맛이 아니라 그냥 혓바닥만 불타 만드는 정체모를 핫소스를 넣는 짓거리보다는 고춧가루가 낫지않나 싶습니다ㅠ(개취)
고추가루의 매운맛은 깊은 매운맛입니다ᆞ
입안에서의 매운맛인 캡사이신의 매운맛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듯 합니다ᆞ
제가 먹어본 매운맛의 구분
고추가루ᆞ마늘 : 깊은맛이나며 우리가 찾는 진정매운이이죠ᆞ
캡사이신 : 입안에서의 맛은 매우나 깊지않구요ᆞᆞ먹고 난후 속쓰립니다ᆞㅎ
귀한 의견 감사합니다.
책상머리연구가님.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선 침묵 좀 하세요. 언제나 님의 요리지론의 준거라는게 죄다 외국(그것도 주로 서양위주) 레시피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거 알겠는데요. 국산고추 껍데기 태워서 알맹이만 먹으라니요 크윽. 요리법에 따라 식재의 질점을 달리하며 조리해야 하는 법인데, 한국음식에 들어갈 식재를 외국 조리법에 기인한 식재의 질점으로 조리해버면 그게 “합리적 조리법”인냥 분식해버리는 그 패기! 히야.. 고춧가루의 대안으로 캡사이신이라!
“식재의 질점” 화이팅~!
최소한
1.난 고추를 그냥 써도 맛있기만 하더라. 하나도 안 질기더라
2.내가 불에 태워 껍질 벗겨 써 봤는데 그냥 먹는 게 낫더라
이정도는 거론하셔야 책상머리 연구가라고 비판이라도 하지 않겠어요?
‘식재의 질점’을 고려한 결과가 왜 이 수많은 단점을 낳는지, 아니면 그 단점을 어떤 장점으로 상쇄하는지 정도는 얘기해 주시면서 ‘한국식 레시피’를 외치셔야죠.
쓰신 것 처럼 캡사이신은 지용성이었죠, 참. 저도 이번 광화문 시위 물대포에 식용유 부어넣었다는 기사를 보고 새삼 깨달았었습니다.
그런걸 찬 냉면육수에 넣으면 고추맛을 다 내긴 요원한 일이겠네요. 생선 매운탕도 고춧가루 맛이 겉도는 마당에…
‘기름’하면 다들 식겁하지만 짬뽕이나 육개장, XO소스가 그렇게 맛있게 매운것도 결국은 고추기름 덕일 텐데요. 벨페퍼는 구워다가 기름에만 담가둬도 맛있고요. 한식에도 고추에 기름 좀 더 팍팍 넣어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