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 도어- 그저 그런 음식, 넋을 놓은 서비스
데블스 도어에 가보았다. 일단 덜 부정적인 음식 이야기부터 하자. 너무나도 뻔하게 부정적인 걸 먼저 늘어 놓으면 글 쓸 의욕도 기력도 사라져 버린다. 그나마 멀쩡한 것부터 살펴보자.
데블스 버거(13,000원)을 먹었다. 일단 메뉴를 훑어보자마자 ‘아마추어가 기획했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펍 메뉴에 요즘 유행하는, 또는 현대적인 ‘트위스트(메뉴에서 ‘킥’이라 말하는 것)’를 한두 개씩 주어 있어 보이려는 의도랄까. 먹는 이-특히 책상에나 앉아서-는 기획이랍시고 종이에 써 놓고 ‘그럴싸 하군’이라 뿌듯해할지 몰라도 현실의 필터, 즉 조리를 거친 버거는 뿌듯함에 그다지 가깝지 않았다. 그 ‘트위스트’를 주기 위한 요소들이 각자의 조리 과정을 거치며 햄버거라는 시스템 전체에 변수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데, 웬만한 조리로는 전체를 보고 통제할 수 없기 때문.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한 빵+패티의 조합에 세 가지 부재료를 더하면, 그때 늘어나는 변수는 세 개가 아니고 열두 개쯤은 된다. 또한 이 요소는 나눠 여러 사람이 관리할 것이다. 현재의 인력 수준에서 그 모두를 거쳐 식탁에 오를때 음식이 성공적인 양태를 띨 수 있을까? 난 기획자가 거기까지 고민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버거가 그렇게 말한다.
또한 애써가며 쓴 요소가 맛에 미치는 영향도 긍정적이라 보기 어려웠다. 이 버거의 파르메지아노 치즈 “칩(또는 크래커)”가 가장 좋은 예다. 엄청난 기술의 집약도 아니다. 약불에 올린 논스틱 팬에 치즈를 마이크로 플레인으로 솔솔 갈아 뿌려 굳혀 만든다. 유행도 지났다. 3-4년 전에 많이 쓰는 걸 보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전혀 참신한 제스처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궁극적으로, 다른 요소와 의미 있는 관계를 지어내지 못한다. 생각해보자. 이 칩은 나름 섬세한 요소다. 치즈가 완전히 녹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 바삭함을 살리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게 애써 만들어서는 버거 사이에 끼워 버린다. 이미 바닥은 꽤 젖을 정도로 “육즙” 관리가 안 되는 패티와 접촉하는 순간 바삭함은 사라져 버린다. 살아 있다고 해도, 얇은 재료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바삭함은 애초에 부드러움이 핵심 가치인 패티의 감상을 방해한다. 말하자면 훨씬 더 관리가 쉬운 재료인 양상추나 양파 등이 주는 바삭함과는 결이 다르고 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한편 토마토는 오븐 구이라는데 패티의 온도를 빼앗아갈 정도로 차가워서, 메뉴를 다시 확인하고서야 놀랐다. 오븐에 미리 구워 상온에 둔 것도 아닌,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보관한 온도와 질감이었다. 설사 온도가 맞았다고 한들, 한국의 황폐한 토마토 사정을 감안하면 의미가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패티의 지방을 갈라줄 만큼 단맛과 신맛이 생상하고 풍부한 토마토가 한국에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1년 내내 수급 가능한가? 혹 그 밍밍함의 틈을 메우기 위해 오븐 구이를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버거의 가격에 반영된다면 그것은 괜찮다. 하지만 규모가 뻔한 요리사의 급료에 반해 필요 이상의 부담을 준다면? 그때는 정말 의미가 없어진다.
다음은 감자튀김. ‘성냥개비(matchstick)’ 또는 ‘신발끈(shoestring)’ 감자튀김에는 단점이 있다. 워낙 가늘다보니 잘 튀겨도 겉과 속의 질감 대조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속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할 수 없기 때문. 따라서 먹다 보면 정말 성냥개비처럼 딱딱해진다. 게다가 소금간도 전혀 하지 않았다. 사이드로 ‘데블스 도어 만의 수제 피클’이라는 게 있어서, 혹 발효한 오이 피클 같은 것인가 싶어 주문해보니 먹어도 안 먹어도 그만인 양배추 피클이 등장했다. 시고 아주 달고, 쓸데없이 매웠다. 맥주는 그냥 마실 수 있었다.
늘어놓은 걸 보니 좋다고 말할 음식은 것 같은데 왜 먼저 늘어 놓았나. 그것은 서비스가 거의 극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바쁘거나 인력 부족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닌, 방기에 의한 나쁨이다. 한마디로 넋을 놓았다. 나는 여섯 시가 채 안 되는 시각에 이곳을 찾았다. 따라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약 절반 정도 찼을까. 그런데 매니저는 일단 나를 바로 안내했다. 혼자 바에 앉아 하는 식사, 좋다. 하지만 문제는 규모도 꽤 큰 바에 단 한 명의 스탭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건축적으로도 설명한 바 있지만, 바의 구조와 의자는 사람을 정면으로 향하게 만든다. 몸을 옆으로 돌려 보거나, 스탭을 볼려 주문하기가 앞을 보는 것보다는 불편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바에는 아무도 없었고, 서버 한 명이 들어오자 마자 단 한 마디의 설명도 없이 메뉴를 주고는 그냥 갔다. 그리고 적어도 10분 동안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매장을 둘러보니 한가한 틈을 타 삼삼오오 즐거운 친목의 대화를 나누는 스탭들이 보였다.
그렇게 10분이 넘는 시간을 보낸 뒤, 한 여자 서버가 드디어 찾아왔다. 나는 메뉴 대신 매니저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요청해, 현재의 상황에 대해 항의했다. 사과를 받았지만 이후의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매니저는 최선을 다하는 듯 보였지만 서버들이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 바에는 외국인 서버가 등장해 맥주를 따라놓고 각각의 이름만 말해준 뒤 사라졌다. 한편 내국인 서버는 음식을 놓고 사라졌고, 케첩과 물수건 등이 ‘셀프’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메뉴를 가져다주고 주문을 받는 과정에서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것. 그리고는 끝이었다. 여전히 앉은 사람을 압도하는 규모의 바에는 거의 아무도 붙어 있지 않았고, 그나마 자리를 지키더라도 바의 폭과 깊이 등을 감안하면 자기 자리에서 손님에게 편안하게 닿기가 어려워 보였다. 따라서 뭔가 필요한 게 있다면 바의 바깥쪽 주변을 책임지는 서버를 불러 요청해야 되는데, 일단 가까이 있지 않으며 손님의 움직임에 주의를 전혀 기울이지도 않았다. 바에 서버가 없어 정면을 바라보고 먹는 사람이 몸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누군가는 그걸 보고 ‘필요한 게 있느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맛없는 걸 굳이 앉아 먹어야 되나 싶어서, 반쯤 먹다가 나가면서 매니저에게 다시 항의를 했다. 이야기 끝에 결국 자리로 돌아가 다 먹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형편 없는 경험과 그를 위해 치른 비용-물론 다 냈다. 대개 항의하고 수긍하면 뭔가를 빼주겠다고 제의하지만 받아 들일 이유는 없다-을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음식, 공간, 서비스가 제각각 엉거주춤하고, 그 셋이 또한 전혀 서로 묻어나지 않는다. 돈은 돈대로 들였으나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이곳에서, 나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파워블로거를 데려다가 사업 기획을 시킨다는 소문 말이다. 혹자는 사실이라고 말하던데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이라지만 돈이 썩거나 하는 곳은 아닐테며, 먹어도 모르거나 전리품처럼 사진이나 찍는 사람들의 역량을 믿고 이런 사업을 진행할 정도로 체계가 없을 거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블스 도어가 드디어 해냈다. 나에게 믿음을 준 것이다. 메뉴부터 음식까지, 이 모든 것에서 제각각 보여주는 느슨함 및 어설픔은 조리의 일정 수준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면 자아낼 수 없는 형국이다. 외국의 것을 들여오려면 목표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존재가 소화를 완전히 거친 다음 재해석해야 한다. 서울엔 그런 게 거의 없고, 데블스 도어도 차별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무슨 샌프란시스코 피어 같은 곳의 관광지 술집도 아니고… 한편으로는 이 정도로 얼기설기하게 짜놓고 될 것이라 믿는 나이브함이 부러울 지경이다. 그나마 대기업 가운데 신세계의 음식 수준이 전반적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해온 터라, 이건 뭔가 싶다.
오늘 글은 오타가 좀 보이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오타는 일상이죠.
파워블로거가 지금 신세계에서 좀 유명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전리품처럼 사진이나 찍는 사람들의 역량을 믿고 이런 사업을 진행했다….. 정확히 보신거 같은데요? 샐러드랑 감자튀김 먹고 어이가 없었습니다ㅋㅋ 인테리어, 음식, 분위기 ,, 인스타에 올리기 좋게 만드느라 음식점 본질은 잊은 듯
파워블로거 팻***
비하인드 스토리가 좀 궁금하기는 하던데 ㅎㅎ
내용을 떠나서 그 파워블로그는 간접경험 대리만족 측면에서 자주 보고는 있습니다.
http://www.noblesse.com/v3/Magazine.do?dispatch=view&id=32379
팻투바하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위 기사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술과 음식을 항상 같이 즐기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됩니다. 그 기대가 분노로 바뀔때의 심정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