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읽는 건축(2)-바, 의사소통의 공간

어느 금요일 저녁, 아주 오랜 친구를 만났다. 계절이 막 가을로 접어드는 저녁 시간, 이 층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의 열어놓은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 순간에 어울리는, 그러나 지갑에는 무리를 주지 않는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시켜놓고 친구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카페 한 구석에 혼자 앉아있는 여자가 눈에 계속 밟혔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어폰을 끼고 혼자 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고, 또 무엇을 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 그 좋은 금요일 저녁, 그것도 사람들이 혼자서는 찾지 않게 되는 카페에서 혼자 앉아있는지는 못내 궁금했다. 언젠가 그렇게 밖에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나 자신의 모습을 동병상련 격으로 투영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시간이 한참 지나, 곁눈질로만 흘끔흘끔 쳐다보던 여자가 카페를 뜨고 나서야, 나는 친구에게 그 시간,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가졌을 법한 개인적인 사연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왜, 그녀는 이 시간, 이 장소에 혼자 있어야만 했을까? 그러자 지금까지 살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을 거의 보내본 적이 없다는 친구는, 자기에게도 그런 시간이 때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건넸다.

이 나라에서 살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고 생을 마감할 확률이 꽤 높다. 태어나서 부모님과 죽 같이 살고, 집을 떠나봐야 군대라는 더 큰 무리에 자신을 우겨 넣기 위할 뿐이며, 학교를 졸업하고는 또 다시 직장이라는 무리에 숨 돌릴 틈도 없이 발을 들여놓는다. 좋은 사람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삶의 미덕이라는 어른들 말씀 따라, 인연이 허락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또 자식을 가진다. 전혀 부정적일 수 없는 삶의 방식이지만, 정말 숨 돌릴 틈은 사치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시간의 연속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결국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어렵지만, 혼자 있게 되어도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글퍼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 길을 벗어나기가 좀체로 어렵다.

그렇게 살다 보니, 때로 정말 ‘딱 한 잔’이 생각나는 저녁이 있다. 혼자 있는 ‘시간’까지는 꿈꾸기 어려우니, 혼자 있는 ‘순간’을 위한 딱 한 잔이다. 집에서 보글보글, 맛난 된장찌개 끓여놓고 기다리는 사람 김빠지게 전화 걸어 핑계 대듯 마시겠다는, 곧 열 잔도 되고 백 잔도 될 수 있는 한 잔이 아닌, 진짜 딱 한 잔. 부서원 모두가 잔도 높이 들고 목청도 높여 위하여! 를 외치는 그런 왁자지껄한 자리에서의 다 같이 잔 부딪혀가며 털어 넣는 한 잔이 아닌,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몇 대 정도 그냥 지나쳐 보내는 동안 조용한 어딘가에서 아무도 모르게, 생각에 잠기며 혼자 즐기는 딱 한 잔. 그 어려운 딱 한 잔을 위해서 어디를 가야 할까,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화면 못해도 술 상대를 한 명은 찾을 수 있는, ‘술 권하는 사회’ 대한민국, 혼자서 술을 마셔보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서도 혼자서 술을 마실만한 바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널리고 널린 게 술집인데, 왜 혼자 마실 술집이 없느냐고 되묻는 사람은 정말 혼자서 술을 마셔보려고 바를 찾아나서 본 경험이 없었음에 틀림없다. 한 집 건너 하나씩 교회가 있어도 인류의 평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고, 두 집 걸러 하나씩 약국이 있어도 세상은 아픈 사람투성이다. 세 집 건너까지는 아니어도 너덧 집 건너, 닭집과 경쟁하듯 널려있는 그 많은 술집들 가운데, 혼자서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개인 음주사를 더듬어보니, 참으로 많은 바 아닌 바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떤 바는 그 어떤 가게도 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자투리 공간에 바와 의자 대여섯 개를 간신히 들여 놓은, 그야말로 정말 바였다. 누군가 미국에서 경험했던 바를 재현해보고 싶었는지, 이름이며 내부 인테리어까지 미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바를 닮았지만, 바텐더들은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무뚝뚝했다. 단골로 보이는 듯한 손님에게만 말을 붙일 뿐, 안쪽 맨 끝 자리에 앉아있던 나에게는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다. 심지어는 가까이 있을 때 먼저 말을 붙여보기도 했으나 귀찮다는 듯, 단답형의 대답만이 돌아왔다. 머쓱해져 곧 자리를 뜨면서 집어왔던 바텐더 명함의 메일 주소로, 글을 쓰기 위해 몇 가지를 묻고 싶다는 메일을 얼마 전 보내봤으나 그것마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바 근처의 또 다른 바에서는 싸구려 ‘플레어’ 가 서커스 불쇼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박수치고 소리지르기에 바빴으니, 이런 곳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술을 음미하기란, 실로 언감생심이었다.

또 다른, 스스로를 ‘바’라고 정의하는 어떤 술집에는 아예 바텐더가 없었다. 아니, 바텐더라고 이름 붙여진, 가슴골이 시원하게 보이는 블라우스를 예쁘게 차려 입은 ‘언니’들이 있기는 했지만, 술을 손에 대는 건 손님이 사준 것을 마실 때뿐이었다. 주문한 칵테일은 무전기를 통해 주방에서 만들어졌다. 이곳의 대화 수준은 한마디로 저질이었다. 대학시절 미팅에서나 이루어졌을 법한, 오래 전에 지겨워진 호구조사를 하지 않으면, 그다지 재미없는 자신들의 얘기를 끝없이 늘어놓을 뿐이었다. 침묵은 술 판매의 적이므로 가급적이면 계속 말을 하거나 시키라고 교육을 받은 모양이었지만, 그 침묵을 어떻게 메우라고 누군가 말해주었을 리는 없어 보였다. 두 ‘언니’ 들이 내가 돈을 치른 가짜 모히토를 마시며 붙어있었지만, 하고 싶지도 않아져 버린 내 얘기를 듣는 데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거기에 내온 마티니는 지나치게 미지근했다. 곧 자리를 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텐더가 없는 바는 바조차 아니다. 이런 바는 바의 이름을 욕되게 할 뿐이었다. 바 아닌 바를 나서는 내 발걸음은 무거웠고, 지갑은 가벼웠다. 이런 집에서 혼자 술 마시려는 시도는, 결국 그 씁쓸함에 더 많은 술을 부르게 된다. 딱 한 잔으로는 결국 어림도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주라도 사서 구멍가게 전용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오면, 삶은 곧 두 배로 쓸쓸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술 맛도 당연히 더 쓰다.

이렇게 마음 잡고 딱 한 잔만 마실 수 있는 술집, 또는 ‘바’를 찾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일단 반주 위주의 음주문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술만 마시면 속이 쓰리다고, 부대찌개든 삼겹살이든 식탁에서 불 피워 먹는 종류로 일단 한 상 떡 벌어지게 시켜놓고 배 터져라 먹어야 일단 술맛이 난다는 게 다수의 취향이다. 그래야 술이 술술 잘 넘어가서, 그렇게 배 터지게 먹은 걸 목구멍이 찢어져라 토할 때까지 마실 수 있다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렇게 가로수며 전봇대에 푸짐하게 토해놓은 덕분에, 도시의 비둘기는 누군가가 ‘하늘의 쥐’ 라고 빗대었을 정도로 포동포동하지만, 제대로 된 프랑스 식당이 없어서 그런지 그 포동포동 오른 살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왠지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그렇게 토할 때까지 마시는,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꼭 끝을 보아야만 하는 전투적인 음주태도 역시 버겁다. 한 두잔 정도 목만 축일 수 있도록 가볍게 마시는 건 술 마시는 것 같지도 않다니 반론의 여지도, 의욕도 물론 없다.

거기에다가 우리나라는 혼자서 무엇인가를 하기에 편안한 분위기의 사회가 절대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다. 무엇이든지 무리를 지어서 해야만 하는 것이 제2의 천성이다. 무리를 지어서 그 안에 자신을 들여놓지 않으면 바로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동문회에, 향우회 같은 모임은 기본이고, 누구를 위한 대표인지 모르는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의도 웃기는 단체인데, 또 그 대표 회의가 연합회까지 만들어야 격이 맞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렇게 껍데기를 둘러놔야 보호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성이 없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무리의 이름과 울타리 뒤에서 스스로는 익명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손가락질한다. 그렇게 무리를 지어서 무엇이든지 하기 때문에, 다들 삼삼오오 같이 모여서 노는걸 보니 억울해서라도 혼자서는 못 노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래서 혼자 영화라도 볼라치면, 같이 볼 친구 하나 없으니 인생 헛산 모양이라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며, 혼잣손님을 받지 않는 식당도 아직 많다. 하물며 술 마시는 건 오죽할까?

그렇게 마냥 쉽지는 않게 만만해 보이는 바를 찾아 혼자 바에 들어선다고, 길고 길었던 방황이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 자리를 찾아 앉기까지의 시간도 꽤나 길게 느껴진다. 당신처럼 혼자 술을 마시러 온 손님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그렇게 바를 찾아서 자리에 앉고도 마음은 여전히 불편할 수 있다. 때로 당연히 혼자 마실 수 있도록 꾸며놓은 바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늘어 앉은 손님들의 은근한 눈총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짝을 지어 온 손님들의 제자리는 사실 바가 아니다.

‘바’에 있는 그 ‘바’는 생긴 그대로 사람들이 한 줄로 나란히 앉도록 만들어졌으므로, 무리를 지은 손님들이 끼리끼리 앉아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바에는 혼자 앉는 것이 좋고, 그런 손님에게는 바텐더라는 의사소통 상대가 있다. 바텐더와 손님 사이의 일반적인 의사소통에는 미묘한 경계선이 존재한다. 손님은 바텐더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만, 어느 선까지만 그러하다. 바를 혼자 찾은 사람들은 당연히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겠지만,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드러내는 것을 볼모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만약 속내를 드러내고 싶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면,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친구를 찾았을 것이다. 손님이 원하는 대화는, 바텐더가 스폰지처럼 흡수한 뒤 더 이상 머금을 수 없게 되면 개수대에 짜서 흔적도 없이 흘려버리는, 물과 같은 종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부담이 없다.

미묘하기는 바텐더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혼자 찾아와 술을 마시는 손님에게 말을 먼저 걸어야 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능동적으로 듣거나 말하는 식으로 대화를 끌어나가면 손님은 곧 부담을 느끼고 입을 닫아버린다. 당연히 너무 수동적이어도 손님은 입을 닫는다. 손님은 소라게처럼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는 싶어하지만, 지고 있는 껍데기의 편안함이며 익숙함을 버리려고는 하지 않는다. 무거움을 대가로 치르고서라도 지고 다니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에서 벌어지는 의사소통은 미묘하고, 또 어렵다. 결국 좋은 바라는 공간을 완성하는 마지막 열쇠는, 제대로 된 의사소통인 것이다. 술도, 또 심심할 때면 입에 털어 넣는 너트 믹스도, 멋진 인테리어와 커다란 고해상도 평면 텔레비전, 그리고 내 취향의 음악도 바에서의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모두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는 의사소통의 공간이다.

의사소통이 그렇게 좋은 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전제하에 생각해 본다면, 우리나라의 나이에 민감하고 수직적인, 존댓말 중심의 서열 문화는 바를 완성하는 좋은 의사소통에 때로 걸림돌이 된다. 종업원과 손님의 관계는 언제나 수직적이고, 또 다분히 일방적이다. 어디에서 누구를 접대하든지, 손님에게는 깍듯하게 대해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바에 서서 손님을 맞으면 마음 편하게 말을 붙이기가 어려워진다. 본능적으로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에 거꾸로 된 바의 상황 설정 역시 도움은 되지 않는다. 보통 바에서, 바텐더는 서 있고 손님은 앉아있다. 얘기를 하려면 바텐더는 손님을 내려다 보아야만 한다. 패밀리 레스토랑 따위에 가면, 손님은 왕이라고 종업원을 부르면 손님 앞에 와서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앉아서 올려다보는 세상이다. 물론 그렇게 억지스럽도록 과장된 서비스가 바에 필요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역전된 물리적 관계는 정신적인 관계에 부담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여러모로,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 바에서의 의사소통이다.

이렇게 바라는 공간에서 의사소통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좋은 바를 찾기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관계 맺기와 의사소통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쩌면 의무적으로 떠맡아야 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우리는 그 어려운 과제를 딱 한 잔 하러 가는 공간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의식해야만 한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또 ‘딱 한 잔’ 생각이 난다. 오늘 밤은,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찬 바람이 여민 옷깃으로 슬금슬금, 스며들어오는 계절이 되었다.

에스콰이어 11월호

우리나라에 와서 다시 좀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혼자서 술을 마시는 데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여행을 다니면 꼭 어디엔가 가서 혼자 술을 적당히 취기가 오를 때까지 마시고 잠을 자는 것으로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곤 했다.

혼자 술 마시기의 정점은 재작년 봄부터 여름 사이였다. 3월말 생일을 맞아서 친구 녀석이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여한 옷가게의 바로 옆에 있는 바(1층은 음식점, 남부 음식 전문)에 가게 되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붙박이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금요일이면 일을 끝내고 회사와 바 사이에 있는 학교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언제나처럼 통밀식빵에 칠면조와 치즈 등을 끼운 뻑뻑한 샌드위치를 삼키고 단백질 가루를 탄 우유로 저녁을 때운 다음 바에 들러 에일 몇 종류를 돌아가며 마시면서 벽에 걸린 큰 텔레비전으로 야구를 보거나 바텐더들과 시시껄렁한 농담 따위를 적당히 주고받다가 집으로 돌아와 포도주로 2차를 혼자 해결한 다음 잠이 들곤 했다.

일이 바빠지면서 그런 음주 습관은 조금 더 과격한 옷을 갈아입었다.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했는데(그 당시의 글들에 기록이 남아 있다) 금요일에도 열 한 시, 열 두 시까지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우리나라는 원래 그렇다-라는 반박은 정중하게 거절한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핑겟김에 온갖 멍청한 짓을 하고 싶을 정도로는 스트레스를 받았고 믿거나 말거나 대학시절에도 한 번 가보지 않았던 나이트에 사람구경을 하러 가기 시작했다. 마침 회사 건너편에 사람들이 미친 듯이 많은 나이트가 있어서, 일을 그렇게 늦게까지 하고는 차를 놓고 거기에 가거나, 아니면 일이 조금 일찍 끝나면 바에 가서 술을 좀 먹고, 다시 회사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를 대고 나이트에 또 가서 사람을 구경하거나, 아니면 춤을 추기도 했다. 혼자 갔으니까 춤을 췄지, 누군가랑 같이 갔다면 안 췄을 확률이 높다. 나도 내가 무슨 춤을 추는지 모르니까.

혹시나 그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 ‘역사’라도 이루었다면 여기에 그런 얘기를 쓸까말까 고민을 좀 했을텐데, 솔직히 동양 남자는 인기가 없다. 물론 내가 별 볼일 없는 것도 만만치 않게 작용했겠지만. 끝. 어찌 되었든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이에 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잘 다스려지지 않는 행동 패턴에 일종의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여름이 끝날 무렵 북유럽으로 여행을 갔다온 다음 밤나들이를 끊었다.

바에 대한 글은 바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의사 소통의 공간’이라는 기본 줄기를 잡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바에 갔을때 가졌던, 소위 말하는 ‘casual conversation’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게 다른 것도 있지만 존대말(물론 존대말 자체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이나 동양 문화에서 비롯된 손님과 주인의 관계 같은 요인들 때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자인 사람들이 바에 가서 술을 마시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들었던 것처럼 ‘스폰지’와 같은 대화상대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잘 들어주고 또 묻기도 하지만 가려서 묻고, 전체의 맥락(context)를 다 말하기 않고도 어느 정도의 대화가 가능한, 그런 상대. 솔직히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몇 군데를 가보았는데, 어떤 곳은 너무 지나쳤고, 또 어떤 곳은 아예 그런 대화라는 것이 있지도 않았다. 그러한 앞을 보고 앉을 수 밖에 없는 바의 설정 자체가 그런 종류의 의사소통을 유도한다는 생각이 또 한 편으로는 중심이기도 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한 면 분량을 썼다가 원래 썼던 부분까지 합쳐서 두 면을 썼는데, 사진이 커져서 글씨가 줄어들고 분량은 그 둘의 중간쯤이 되었지만 3점 투시도의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아쉽지는 않았다. 나중에 몇몇 사람들에게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읽기 힘들다는 반응을 듣기는 했지만.

갈때마다 술쳐먹기 바빠서 제대로 된 사진은 하나도 없다. 저 메뉴판은 내가 정말 좋아했던 건데 몇몇 여대생 알바 바텐더들이 한꺼번엔가 그만두고 나서 글씨가 구려져서 나름 대문자라면 자신있으니 한 번 정도 메뉴판을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적도 있지만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인연이 참 얄궂은게, 저 바는 에스콰이어 미국판에서 애틀랜타의 바 두 세 개로 꼽는 것 가운데 하나다. 여름이면 에어콘을 틀어놓고도 문을 열어놓곤 했는데 그 문으로 들어오는 후덥지근한 여름 밤 공기 냄새며, 바로 옆의 철길에서 기차 지나가는 소리는 기억에 선하다. 다른 어떤 것도 사실 그렇게 생각이 나거나 가보고 싶지는 않은데, 여기는 생각도 많이 나고 꼭 다시 가보고 싶다.

 by bluexmas | 2010/01/23 06:10 | Architectur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펠로우 at 2010/01/23 06:55 

근사한 바 메뉴판과 근사한 글이군요^^; 뭐 국내 분위기가 좀 그러니 클래식 바를 기대하긴 힘들죠. 매체에서 소개하는 ‘바’를 보면 불쑈 하는데나, 호텔 바, 청담동 바 정도를 알려주고…

저야 외국어가 딸려서 외국 술집에 가서도 별 소통은 없었지만,(술맛은 좋았습니다) 오사카의 이름모를 재즈바는 기억나네요. 오사카 북쪽 우메다의 도지마쪽 골목에 있는 곳인데, 재즈DVD등을 틀어주는 곳이었습니다. 처음 시켜본 쿠바 리브레맛이 아주 허접하진 않은듯하고, 약간의 좌석료가 따로 있습니다. 적당히 DVD와 음악 듣고 있는데,한가해진 무렵 주인이 와선 ‘듣고싶은 아티스트 잇으면 얘기하라’하더군요. 좀 당황해서 얼떨결에 ‘데이브 그루신이나 리 릿나워,GRP 아티스트’를 얘기하니, 87년작 GRP Super Live in Concert Japan DVD를 틀어주더군요. 나쁘지않은 기억이었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4 22:30

메뉴판은 근사하지요… 글은 뭐^^;;;;

저도 좀 다녀보고 말씀하신 그런 생각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굳이 의사소통이 필요한 것도 아니죠. 손님을 편하게 하는 것도 기술이니까요. 손님이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주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서 한 잔 걸치면서 듣는 음악은 또 다른 기분이니까요.

 Commented at 2010/01/23 19: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4 22:32

원래 그런 방향으로 썼는데 그 다음부터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어요.

그 역사라는 건 참 은근히 이루기 어렵더라구요. 외국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라면 혼자 술 마시러 다니기 정말 쉽지 않아요. 몇 번 해보고 좀 좌절을 느꼈습니다.

저 메뉴판은 사실 잘 쓰던 알바들이 그만두고 다른 어린이들이 쓴거라서 그냥 그래요. 기사에 실린 사진은 최고였죠. 그래서 한 쪽만 나와서 만족했다고나 할까요…?^^

 Commented at 2010/01/24 11: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4 22:33

네, 이번 달에도 나왔어요^^ 그렇게 단락을 나누는 건 사실 편집을 할 경우에 단락 한 두개를 통째로 들어내고 흐름상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에요. 다 묶어서 하나의 주제로 아울러지지만 그냥 몇 개 빼놓아도 이상은 없는 게 편집을 하더라도 덜 골치아플 것 같아서요^^

 Commented by 뽕네푸 at 2010/02/01 20:07 

비**입니다. 기사 잘 되가세요?

이글 너무 좋아요~~~

전 바를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바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전 주로 그냥 술집^^

근데 글 읽어보니…좋아하는 바가 하나있는것도 참 멋진 일인거 같은데요..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01 21:48

흐 #싸고 있습니다. 한 번에 거의 세 개를 써야 되는 상황이라서요…

그 근처에 괜찮아 보이는, 작은 진짜 바가 하나 있던데 다음 번에 같이 한 번 가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