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꿈앤들 숙성 치즈- 국산 “프리미엄”유제품의 절대적 가치
지난 토요일, 부산역 대합실에서 마지막 10분을 죽이려고 얼쩡거리다 눈에 들어와 산 치즈다. ‘숙성치즈’가 정식 명칭이라고. 여러 번에 걸쳐 의견을 밝힌 것처럼 국산 유제품엔 큰 기대와 믿음이 없다. 그래도 눈에 띄면 호기심 때문에라도 사서 먹어본다. 그래서 이 치즈는, 그렇게 기대 없는 가운데 먹은 것으로는 좋았다. 이름-_-처럼 숙성이 되었는데, 판매직원이 설명한 것처럼 ‘와인이랑 먹어야 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다. 치즈의 ‘포텐’이 있다면 절반 정도에 이른 숙성도랄까. 맛은 굳이 비교하자면 뒤에 살짝 퍼지는 씁쓸함이 몬터레이 잭과 흡사하다. 우유와 유산균만 썼다고 적혀 있어 싱거울까봐 우려했으나 간도 꽤 잘 맞았다. 와인과 함께라면 레드보다 화이트가 맞을 숙성도와 단단함이었다.
먹으면서 몇 가지 생각했다. 첫째, 정확한 이름이 필요하다. 치즈도 발효를 통한 미세조정으로 맛을 정하는 기호식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지역이든 재료든 정확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만든 이름이 정체성 확립과 홍보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럴싸한 스토리텔링이 제품 각인-판매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둘째, 가격 대비 가치에 대해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건 몇 번 언급했다. 이 치즈는 100g에 10,000원, 코스트코에서 살 수 있는 일반적인 슬라이스-가공 아닌-치즈 가격의 약 열 배고, 제품군 가운데 중상급으로 꼽는 그뤼에르가 100g에 3,830원이니 거의 세 배다. 그보다 낫다고 할 수 없으니 너무 비싼 건 확실하다. 여건을 감안하면 그 가격 밖에 못 붙일 수는 있지만, 그 결과로 어디에 호소할 수 있을지는 만들기 전에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아직도 가공치즈가 치즈의 주류라고 생각하는 소비자층이 주류 아닌가.
셋째, 다양화 또는 맛내기의 전략이다. 치즈 색깔이 다양해서 물어보니 녹차 등으로 물을 들인 거라고. 의미가 아주 없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맛보다 색깔 위주의 다양화로는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다. 좀 더 다양한 숙성도 등이 치즈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절반 정도만 숙성시킨 치즈의 가격이 이미 저 수준이라는 걸 감안할때 역시 지속가능한 모델인지는 모르겠다.
올 봄 피에르 가니에르 갈라 디너에서 끝에 나온 치즈가 임실에서 만든 톰므(Tomme)였는데, 훌륭했다. 주문 제작품이었다는 사실에서 생각해보면 필요한 건 기호/취향을 확실히 하는 수요층의 구매의지+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아닐까.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로 이를 수 있는 좌표가 특히 중요한 게 기호식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백지에 그리기 시작하는 접근으로는 그 가격대에서 원하는 그림이 나오기 전에 기력이 다 떨어져 버리지 않을까 우려한다. 우유 소비가 갈수록 주는 현실에서도 국산 유제품의 선택의 폭이 크게 넓어지지 않는 원인이 가격-품질 경쟁력을 감안할때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저 예처럼 레스토랑이 주문 제작을 통해 서로를 알리는 상황 같은 게 가장 이상적일텐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치즈 코스가 별 인기 없고, 내는 곳에서도 가격이 저 수준이라면 엄두를 못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