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밥, 밀과 빵
동네 이마트에서 사온 약 2주전 즉석도정 쌀을 사왔다. 현미와 백미를 각각 1kg씩 사서 플라스틱 밀폐 용기에 한데 섞은 뒤, 찬장에 넣어두고 꺼내 밥을 해 먹는 패턴이다. 그런데 한 사나흘 밥을 안 한 뒤 꺼내보니 바구미 가족이 피크닉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 5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당황하지 않고 이마트 고객 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해당 매장의 제품군 매니저와 통화를 했는데, 요약하자면 즉석도정쌀에서 바구미가 발견되는 건 종종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첫째, 겨를 벗겨 현미 상태로 들어오는 쌀인 경우 지방 등등 때문에 이미 잠재적으로 바구미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둘째, 이를 백미로 도정하더라도 매장에서 쓰는 소용량 기계인 경우 알까지 한꺼번에 골라낼 여력이 떨어지므로 포장 이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납품 업체에 받아다가 들여오는 재고량을 조절하는 정도. 발생 가능성보다는 책임 소재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쌀을 가지고 해당 매장 만족 센터에서 환불 받고 다시 사는 것으로 일단락지었다.
쌀과 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식으로 삼는 탄수화물이므로 밀, 그리고 빵과 비교를 하는데 사실 쌀과 밀, 밥과 빵은 다르다. 밀의 물성으로 인해 떨어지는 가공성을 근거로 쌀의 우수함을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제분과 제빵 과정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 덕분에 완전히 외주가 가능하다. 심지어 반죽을 각 생활 단위에서 직접 하는 경우라도 공동체 오븐 등을 통해 에너지원을 일원화하는 방식을 도입해 효율을 높인다. 게다가 이렇게 품을 들여 만들면 용기 없이도 휴대가 가능하고 보관도 밥보다 오래 할 수 있다. 밥과 달리 빵은 수분을 걷어내는 방식으로 조리하므로 미생물 발생이나 변질 가능성이 밥보다는 낮다. 게다가 글루텐 강화 목적으로 쓰는 소금이 간까지 해주므로, 마이야르 반응과 맞물려 밥보다 더 입체적인 맛과 질감의 대조를 낸다.
이렇게 밥과 빵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또한 주식으로 삼는 탄수화물이므로 한쪽 식문화의 변화가 반대쪽의 개선에 실마리를 줄 수 있다. 요즘 빵 문화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다양한 곡식의 발굴 및 사용이다. 떨어지는 생산성 등의 이유로 외면해온 외알밀 등의 재발굴해 빵을 만든다. 그만큼 특별하다고 볼 수 없을지 몰라도, 계속 저변을 넓히는 통밀의 사용도 결국은 같은 움직임의 범주에 속한다. 두 번째, 이러한 곡식의 신선함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소량의 즉석 도정 및 제분을 한 가루로 빵을 만든다. 댄 바버의 최근작 <The Third Plate>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리 가루를 낸 밀을 ‘죽은 곡식’이라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특유의 저장성이 꼭 필요한 시대가 지났으므로, 접고 대신 질을 추구하자는 움직임이다.
쌀 문화권에서는 특히 두 번째의 즉석 도정 및 제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관성이 떨어지는 밥의 특성상, 나름대로 훌륭하지만 가격이 높은 대안인 즉석밥에 의존하지 않는 한 최말단의 생활주체가 직접 조리를 해야 하기 때문. 이러한 특성상 조리기구, 즉 밥통이 계속해서 발달해왔지만 이제 원재료인 쌀의 수준을 높일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곧 스스로 움직여 쌀을 씻고 밥을 안칠 기세인 밥통의 기술보다 낮은 수준으로도 확보 가능하다. 관건은 범위와 적용 주체다. 주류 마트나 백화점에서 직접 도정한 쌀을 팔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10kg 수준의 대용량이 기준이다. 소포장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물론, 실제로 대용량 소비가 가능한 주체에게도 장기적으로는 의미가 떨어진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2014년 쌀 소비량은 1인 178.2g, 반올림해 180g이라 쳐도 4인 가족이 다 소비하는데 거의 2주일이 걸린다.
또한 저 수준의 쌀 소비량으로는 가정용 도정기를 들여놓는 것도 딱히 경제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최저 30 만원 대인 기계값 부담은 생활수준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지만, 효율이 떨어지는 단목적 기기(unitasker)의 설치 공간 부담 및 유지 관리리는 확실히 부담일 수 있다. 그럼 어떤 대안이 있을까. 원두커피처럼 쌀 정기 구독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주 또는 월 단위로 구운 커피 콩을 보내주듯, 각 생활 주체의 기본 설정에 맞춰 일정 기간 별로 일정량의 즉석 도정한 쌀을 보내주는 것.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존재는 하는 동네 쌀집의 새로운 사업 모델로도 검토해볼 수 있다. 쌀집이라기보다 쌀 창고에 가깝게 도정 및 포장한 쌀푸대를 쌓아놓고 파는데, 가뜩이나 밥도 안 먹는 현실에서 그렇게 수동적으로 사업하기 보다는 정기 배달 시스템 같은 걸 도입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빵과는 다른 밥의 생산 과정에서 재고 및 품질 관리에서 가능한 부분을 최대한 외주해서 집약적으로 관리하자는 개념이다. 다만 문제라면 100g 10,0o0 원대인 커피와 비교해 쌀의 부가가치는 확연히 떨어지므로, 사업성이 있느냐는 것. 또한 여전히 재료의 고급화 전략을 생산 그 자체, 즉 쌀이라면 온갖 유기농, 무농약 등 땅에서 찾는 문화에서 과연 호소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생산부터 조리까지의 연결고리를 쭉 훑어보면, 가뜩이나 밥을 덜 먹는다는 현실에서 이것 외의 영역은 가치 향상 가능성이 포화 상태에 달했다고 본다.
한편 쌀이 떨어져 꾸역꾸역 찾아간 이마트에서는 환불까지 순조로웠으나, 쌀 판매대에서는 2015년 쌀이 들어올 과도기라 소량의 즉석도정쌀은 아예 판매하지 않았다. 물론 그 외에도 비교적 최근에 도정한 소포장 쌀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완전 및 반조리 식품 등이 계속 선보이는 이 시점에서 여전히 복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정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쌀은..중형급 수퍼마켓에 들어오는 포대쌀 중 품종 확실히 기재한 것, 양구.고성 오대쌀, 김포.강화 고시히까리, 추청 이런게 그래도 성공률이 높더군요. 물론 대부분 10kg포장이란 게 아쉽구요, 드물게 4kg 포대로 나오는 물건도 있습니다.
이천 경기미처럼 이름값이 높은 건 다른 거 섞어서 파는 경우가 많더군요. 최근엔 철원오대쌀도 유명세를 타니 기대보다 떨어지는 물건도 나오나봅니다. 도정은…그냥 타이밍 봐서 보름-한달 정도 지난 것 구하는 게 일반적인 구매로는 최선이더군요.
서울사람들이 식당에서 어제 그제 지어놓은 온장고 밥 뒤엎지않는 이상, 즉석도정에 집착할 것 같지가 않네요;;
몇 년 전에 마트 즉석 도정코너를 이용해봤었는데요, 쌀이 품질이 떨어져서 아직까지도 이용하지 않고 있네요. 어느정도 품질이 보장되는 브랜드 쌀에 (이천쌀 여주쌀 철원쌀 등) 반해 마트 즉석도정미는 소위 ‘혼합미’를 취급하지 않나 싶어요. 쌀도 품종에 따라 특성이 있고 취향에 따라 선택하시는 분도 많이 늘었기에 각 품종별로 갓 도정한 쌀을 주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무척 좋을 것 같습니다. 쌀도 오래 놓고 먹으니 맛이 떨어지는게 눈에 보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