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그 요리 (1)-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콘비프 샌드위치

지난 5월부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공식 명칭에 띄어쓰기 안 하는듯?;)의 월간 회보 <책&>에 <소설 속 그 요리>라는 연재를 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이런 기획이 몇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어쨌거나 음식 글 쓰는 사람이고 소설을 좋아하므로 아주 즐겁게 쓰고 있다. 딱 열 장에 이것저것 다 쓰는 것도 나름 스릴 있고. 의뢰를 받았을때, 첫 번째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의 첫 소설을 골라 들었다.  회보 자체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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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지의 고정필자이자 칼럼니스트 애덤 고프닉은 <식탁의 기쁨>에서, 소설에 존재하는 음식을 네 가지로 범주화한다. 첫 번째는 저자가 차려 먹으리라 기대하지 않는 등장인물에게 내는 음식이다. 두 번째는 등장인물 묘사를 위해 저자가 요리하는 음식이다. 세 번째는 저자가 등장인물과 함께 먹기 위해 요리하는 음식이며, 네 번째이자 가장 최근 나타난 것이 등장인물을 위해 요리하지만 실제로는 독자에게 돌아가는 음식이다.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여자는 사실은 비프 스튜를 만들었는데, 나 혼자 먹어 치우려면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아라며 남자를 부른다. 예상치 못한 초대, 고프닉의 분류에 의하면 첫 번째 범주의 음식이다.

음식을 빼놓고는 하루키의 소설을 말할 수 없다. 읽으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김말이 오이에도 군침이 돈다. <상실의 시대>에서 병상의 미도리 아버지와 나눠 먹는 오이다. 식물 같은 삶을 사는 이가 아작아작 씹는 소리에 동했는지, 또 다른 식물인 오이를 맛있게 받아 먹는다. 주인공의 입을 빌자면 살아 있다는 증거 같은 것이다. 인터넷엔 이를 따라 오이를 먹었다는 간증도 있다. 그의 글이 가진 힘이다.

하루키 문학 세계의 음식을 나는 두 갈래로 이해한다. 첫 번째는 일본 음식 문화의 수준이다. 삼치 된장 구이 같은 일식도 있지만 대개 양식이 등장한다. 이는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 양식을 받아들여 자국 문화로 완전히 흡수시켰다는 반증이다. 돈까스와 단팥빵, 명란 파스타 같은 일식 양식이 그 근거다. 그래서 양식의 등장도 자연스럽다. 등장인물이 김릿(진과 라임즙 칵테일)을 마셔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는 양식 취향이 보여주는 하루키 문학의 탈 일본화다. 음식뿐만 아니라 그는 미국 영화, 음악, 문학을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그 영향 아래 일본의 전형적 정서와는 다른 문학 세계를 선보여 왔으니, 그게 바로 인기의 비결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스튜 말고도 쇠고기 요리가 하나 더 등장한다. 콘비프 샌드위치다. 나는 맥주와 콘비프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나서 책을 꺼내 들고 느긋하게 쥐를 기다리기로 했다라는 한 문장에서 몇 가지를 읽는다. 첫째, <바람의 노래>의 시간적 배경은 1970년, 일본에선 이미 그때 술과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동네 사랑방 격의 바(또는 펍)가 존재했다는 것. 둘째, 45년 뒤인 2015년에도 서울에 파는 곳이 없는 콘비프가 이미 그때 존재했다는 것. 마트의 고기 통조림은 살이 완전히 부스러지는 게 장조림에 더 가깝다.

물론, 콘비프가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 정식 명칭은 Corned Beef지만 옥수수와는 상관이 없고, 굵은 소금 알갱이(Corn of Salt)에 절여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크게 보면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등과 같은 가공육의 일종으로 장기 보존을 위한 염장의 산물이다. 한식에서는 국거리인 양지머리를 덩어리째 소금에 절였다가 푹 삶아, 따뜻할 때 얇게 저며서는 샌드위치를 만든다. <바람의 노래>에서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호밀빵을 쓴다. 맨해튼의 카츠 델리는 127년 동안 이런 콘비프 샌드위치를 만들어왔다.

소금과 시간만 있으면 콘비프는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요리 연구가 마이클 룰먼의 레시피를 소개한다. 2-2.5kg 양지머리 덩이 기준으로 물 4L에 소금 45g과 설탕 100g, 후추 25g을 섞는다. 밀폐용기나 지퍼백에 고기를 완전히 잠기도록 담가 냉장실에 5-7일 둔다. 물을 버리고 깨끗이 헹궈, 팬에 담고 잠기도록 물을 붓고 피클 향신료 20g을 더해 약불에서 3시간 정도 삶는다. 결 반대 방향으로 최대한 얇게 저며 빵 사이에 끼운다. 오이 피클, 치즈 등을 입맛 따라 함께 끼워 먹는다. 하루키처럼 맥주를 곁들이고 싶다면 라거, 에일 모두 다 잘 어울린다.

『책&』2015년 5월호

1 Response

  1. 01/03/2018

    […] 애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쉬는 기간에 긁어서 올려 보겠다. 참고로 1편은 예전에 올렸던 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