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강서구
책꽂이를 뒤져, 너무나도 멀쩡하고 또 새것이지만 나는 아무래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을 추렸다. 나의 책장엔 책이 이중, 삼중으로 꽂혀 있어 뭔가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저장도구로서는 아직 의미 있지만, 책장은 정리도구로서의 정체성은 잃어버린지 오래다. 어쨌든, 한 번 추리고 또 다시 추린 끝에 이삼십 권(정확하게 세어보지 않았다-의미가 있나?)을 집에 들어오다 수퍼에서 주운 신라면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그 위를 사인한 <외식의 품격> 두 권으로 덮었다. 이러저러해서 책을 보낸다고, 그러는 김에 졸저도 기증한다고 몇 자 적었다.
그리고 오늘, 우체국 택배기사가 상자를 가져갔다. 이 책들은 강서도서관으로 갈 것이다. 떠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강서구를 떠나게 되었다. 맞다, ‘떠난다’라기보다 ‘떠나게 되었다’가 더 잘 들어맞는다. 이유야 들면 많은데, 무엇보다 미친 전세가 상승으로 인해 이 집마저 깡통의 대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말하자면 따귀 같은 것이다. 이 동네를 떠나고, 즉 울고 싶은데 한 대 세게 갈겨주는 듯한 뭐 그런. 물론 계속 살고 싶기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매 2년 마다 이짓거리를 하면서 그 언젠가 버거웠던 이사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이사. 물론, 이제 나는 많이 담담해졌다. 지금은 별 생각이 없다 시피하지만, 그 뒤에는 이사의 물리적인 피곤함이 숨어 있다가 고개를 든다. 이사는 그런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쨌든 지난 4년 동안 강서구에서 잘 살았다. 친구가 살고 있어 찾아온 동네, 이제 친구도 나도 떠났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새로 가는 동네에도 기대할 건덕지는 좀 있다. 어쨌든 이사는 그런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