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는 식탁
철학이 있는 식탁: 먹고 마시고 사는 법에 대한 음식철학(The Virtues of the Table)
줄리언 바지니 지음 / 이용재 옮김
이마 / 376쪽 / 17,000원
머리말
1부 모임
1장 살펴보라 | 감히 알고자 하라
치즈 모둠
2장 타급자족 | 상호 의존
리소토
3장 시간을 지켜보라 | 제철주의
사과와 블랙베리 크럼블
4장 유기 농법 너머 | 관리
외알밀 빵
5장 배려 있는 도살 | 연민
양고기 버거
6장 제값을 치르자 | 정의
몽킨스
7장 포용력을 갖추자 | 모호함
대량 생산 식품의 고전
2부 준비
8장 레시피를 찢어 버리자 | 판단력
후무스
9장 족보에서 벗어나자 | 전통
마르미타코
10장 맞는 도구를 쓰자 | 기술 실천지
제빵기로 구운 빵
11장 일상의 되풀이를 포용하자 | 습관
토마토 묽은 소스
12장 소금은 넉넉하게 | 회의
가공육
3부 먹지 않기
13장 아침 뷔페에 저항하라 | 인격
그래놀라
14장 감량 | 의지력
수프
15장 체중 유지 | 겸손
송로버섯 기름
16장 단식 | 자치
죽
4부 먹기
17장 은혜를 표현하라 | 감사하는 마음
계란 볶음밥
18장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알기 | 객관성
와인
19장 공연의 시작 | 미적 감상
먹물에 익힌 오징어
20장 점심의 재발견 | 리듬
라이스 샐러드와 프리타타
21장 홀로 식사하라 | 내면성
칠리 논 카르네
22장 즐거움을 공유하라 | 주흥
메제
23장 오늘만 날인가 | 마음 쓰기
소다빵
맺음말
감사의 글
주
재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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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영어 표현이 있다. ‘Shades of Gray’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거기까지는 가지 말자. 어쨌든, 내가 이 표현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전적인 의미와 정반대의 기억 때문이다. 흔히 ‘그래봐야 회색이니 모호한 상황’이라 이해하겠지만, 나의 회색은 그렇지 않다. 아날로그가 건축과 스튜디오의 대세였던 시절, 마커 세트의 회색은 두드러지지 않는 다양함을 스케치/드로잉에 불어 넣을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웜’과 ‘쿨’, 각각의 그룹에 속한 열 몇 가지 색채만으로도 트레이싱지 위의 세상은 충분히 다채로울 수 있었다. 물론, 원색 만큼 눈에 드러나지 않기에 그 차이를 이해하고 능숙하게 다루는 건 모두의 몫이 될 수 없었다.
여느 때보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제철/지역주의, 유기농 등 ‘핫’한 제반 화제가 이렇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자 명암이 굉장히 또렷한 회색인데도, 사람들은 보색의 대비가 뚜렷한 원색으로 인식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생각으로, 덮어놓고 숭배하거나 폄하한다. 숭배하는 부류는 ‘이것이 인류의 구원책’이라 여겨 광신하는 경향이 있고, 폄하하는 부류는 ‘새로운 상술’ 등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둘 다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세상에 간단한 일이 단 하나도 없는 것처럼(안타깝게도), 삶의 삼대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인 ‘식’을 둘러싼 제반 문제도 그렇게 명료하고 똑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 나은 선택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음, 여기 철학이 있다’라는 사람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다. 그렇다, ‘엌, 철학이라고?’라는 반응을 기대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는 이름이나 경구의 나열을 최소화하고,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논리를 통해 음식 관련 제반 화제의 폭을 넓힌다. 원색의 양 극단으로 이루어진듯한 화제의 사이를 벌려 회색의 명암을 보여주고, 그게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다채롭다는 걸 증명한다. 그리하여 이 먹고 사는 문제에 진정 감출 수 없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감히 알고자 해서(Sapare Aude)’, 명료한듯 보이는 모호함을 걷어내고 오히려 모호한듯 보이는 명료함을 찾으라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