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앤쿡: 멀쩡함-1= 자기파괴적 외식 경험
지난 번 웹진 아이즈에 실린 글을 위해 서가앤쿡에 가보았다. 물론 처음. 한마디로 모든 게 멀쩡한 가운데, 딱 한 가지가 그렇지 않았다. 그게 맛이다. 참으로 애석할 따름.
깨끗하고 나름 발랄(?)한 인테리어에, 열린 주방에서 나오는 요리의 소리와 냄새가 매장을 지배한다. 쌓아놓은 쌀자루가 믿음을 준다(물론 의도겠지만). 직원의 응대는 빠르고 또 친절하다. 대표 메뉴라는 목살 스테이크 샐러드(19,800원)과 생맥주 한 잔을 시킨다. 전형적인 ‘국맥’의 맛이다.
누구의 머리속에서 나왔는지 몰라도, 이 목살 스테이크 샐러드라는 음식은 참으로 노련하다. 채소는 수북하고, 목살은 스테이크라고 말하기엔 얇게 저며 세 점으로 부피를 늘렸다. 그 위에 모짜렐라라고 짐작하는 치즈를 채썰어 또 올리고, 계란에 감자 튀김도 있다. 맞은편엔 디저트로 먹으라는 심산인지 파인애플 통조림도 몇 쪽 올렸다. 옥수수 통조림과 방울 토마토도 빼먹으면 섭섭하다. 일단 엄청 많아 보이는데, 문제는 뜯어보면 신경써서 조리해야할 건 별로 없다는 점. 구운 목살 세 점 말고는 포장을 뜯거나 반조리를 하면 끝이다. 계란? 윗면이 차갑도록 아예 익히지 않은 건 ‘서니 사이드 업’이 아니다. 그저 안 익힌 계란일 뿐. 노른자를 완전히 익히지 않는 것이 목표라면 조리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게 목적이 아니라면? 그냥 안 익히면 그만이다. 계란의 미묘함을 굳이 서가앤쿡이 이해해주기를 바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괜찮은 분위기를 꾸며놓고 큰 노력 없이 푸짐해보이는 음식을 낸다는 점만으로도 서가앤쿡은 훌륭하다. 프랜차이즈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달까. 심지어 통조림 등등을 빼놓으면 나머지 재료는 비슷한 수준의 음식점과 비할때 전혀 뒤지지 않는다. 고기나 채소 모두 굉장히 멀쩡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기가 거의 불가능했다는 게 결정적이자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문제는 단맛. 고기도 그렇지만, 단맛의 드레싱을 푸짐하게 뿌려 놓으니 채소 또한 먹기가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치즈마저 녹아버리면 음식은 들척지근한 곤죽으로 변해버린다. 이 모든 부분은 전체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니, 사실 이걸 음식이라고 보려면 한참 고민해야 한다.
저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매운맛도 없는데 이 정도로 단맛 일색이라면 끼니를 위한 음식(Savory Food)의 기본 맛 얼개가 파괴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이 훌륭함은 자기들이 돈을 버는데 유용할 훌륭함이지, 내 돈 내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훌륭함은 아니다. 그러나 설빙의 콩가루 빙수 등 온갖 생각 없는 프랜차이즈 및 비 프랜차이즈 자영업이 괴식을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는 이 암울한 현실에서, 돈을 먹더라도 납득이 가는(즉 자기가 뭘 하는지 알고 있는) 방식으로 먹고 있으니 차라리 귀감으로 삼을 수 있겠다. 최소한 머리를 쓰고는 있으니 훌륭하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종류의 음식이 제공하는 자기파괴적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전략적으로 쓴다면 자기파괴, 특히 음식을 이용한 자기파괴 카드는 더 큰 그림을 보아 총체적 맨 정신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분명 될텐데, 이런 카드가 그 역할을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