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성동] 물랑(moulin)- 어긋난 질감의 좌표

건축 이론-비평으로 박사를 받겠답시고 대학원에 발을 들일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과연 그 바탕을 이루는 서양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학문으로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내 기본적인 생각의 근간으로서? 답이 시원하게 나온 적이 없다. 물론 그래서 그만둔 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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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을 다니면서 비슷한 생각을 자꾸 한다. 무엇이 빠져 있는가. 두 가지를 꼽으라면, 무수히 언급했지만 향신료와 질감이다. 향의 활용은 아예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질감은 그 좌표가 굉장히 어긋나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그저 일시적인 조리의 실수라면 큰 문제가 안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 하지만 그 좌표가 너무나 많이 어긋나 있다면 그건 실수라 볼 수 없고, 진짜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가능성을 두 가지로 본다. 아예 이해를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학습된 차원에서는 이해를 하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서촌(창성동)의 물랑(Moulin)에서 먹은 점심에서는 거의 모든 요리에 걸쳐 질감의 좌표가 꽤 어긋나 있었다.

요리를 조합해 세 가지 코스를 선택할 수 있는데, 중간 메뉴(110,000원)을 주문했다. 와인 또한 골라서 두 잔을 마실 수 있는 메뉴가 세 가지로, 선택에 따라 수준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역시 가운데 것(50,000원)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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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뮤즈 부시. 가짓수를 늘리는 것이 추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전반적으로 많이 나온다는 생각을 한다. 무리지어 나온다면 각각의 관계가 분명해야 한다. 또한 메뉴엔 공식적으로 올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입맛 돋우는 맛보기’라면 손은 덜 가지만 시장이나 계절의 상황 등을 반영해 즉흥적인 음식을 올릴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뒤에 나올 요리들에 비해 무난했는데, 사블레는 이름(sandy)처럼 조금 더 부슬부슬할 수 있고(두께를 좀 늘려서?) 메추리알(Deviled Quail Egg)의 흰자는 조금 더 부드러울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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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고른 요리는 새우와 돼지고기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와 비스크. 고명으로 얹은 당근과 깍지콩의 질감은 훌륭했다. 코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다고 볼 수 있을 정도. 그에 비해 라비올리와 비스퀴, 특히 전자의 질감은 좋지 않았다. 일단 껍질이 단단했는데, 내가 레스토랑의 라비올리에서 바라는 두께를 꽤 웃도는 수준(아마 그 절반 정도면 적합할 듯)이라 이것이 단지 두께의 문제인지 아니면 반죽에도 문제가 있었는지 정확히 저울질하기 어려웠다. 물론 복합적인 문제라고 말하면 속이 편하겠지만(그리고 그럴 확률이 높고). 소의 돼지고기는 뭉쳐 있어 다소 단단했으며 한두 군데 연골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고기보다 단단한 조각이 씹혔다. 왜 대부분의 만두류 음식에서 재료를 다지거나 갈아서 채워 넣을까? 생각해볼 일이다. 한편 이 모두를 아울러 줄 소스 역할을 하는 비스크 또한 갑각류의 단맛이 잘 살아난 반면 농도는 살짝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무겁다고까지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의 방향을 감안한다면 더 진하고 끈적한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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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푸아그라 테린. 웬만해서 푸아그라 같은 재료를 쓴 요리를 시키는 경우가 없는데, 테린이 궁금해서 골랐다. 테린이나 파테 같은 가공육의 의미는 ‘분해 후 재조립’이다. 해채한 뒤 재가공하면서 형태와 질감 및 맛을 완전히 새롭게 불어넣어 새로운 개체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셰프의 재조율하는 솜씨가 드러난다. 푸아그라는 그냥 먹을 수도 있지만 간이다 보니 있는 잔핏줄을 들어 내고, 그 과정에서 조각난 걸 다시 하나의 매끈한 덩어리로 만든다는데 테린을 만드는 의미가 있다. 면보(torchon)에 싸서 만들기 때문에 ‘토숑’이라고 부르며, 하루에는 만들 수 없는 동시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일단 눈으로 이해하자면, 밀도는 다소 높을 수 있지만 부드러운 테린에 바삭한  ‘크럼블(crumble, 아뮤즈 부시의 사블레와 혹시 같은 반죽?)’로 대조를 주고, 비트 젤리와 사과 건포도로 푸아그라에 단짝인 과일의 단맛 또는 신맛을 즐기라는 설정이다. 하지만 일단 크럼블은 바삭함을 거의 지니지 않을 정도로 힘이 없어 입에 넣는 순간 녹아버렸고, 오히려 중심은 꽤 뻑뻑한 테린의 가장자리가 나이프질과 동시에 부스러졌다(crumble). 하나의 완결된 형체를 다시 갖춘다는 의미에 충실한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 사과는 일단 썬 형태 자체가 콤포트 등등 서양 음식의 곁들이로 쓰는데 어울리는 질감으로 익히기에 걸맞지 않는데다가, 수분이 빠져 꼬들꼬들해 푸아그라와 어울리지 않았다. 건포도도 마찬가지. 건자두도 그렇고, 말려 단맛이 농축된 과일을 다시 요리에 더해 수분을 불어넣는 상황에 대개 ‘plump’라는 형용사를 쓴다. 물기를 다시 머금어 통통해졌다는, 따라서 부드러워졌다는 의미다. 삼계탕 등에 넣어 분 대추와는 다르게, 입에 넣으면 껍질에 저항이 없고 농축된 즙이 나오는 상태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 건포도는 여전히 꼬들꼬들했다. 나머지 비트 “젤리”와 사과식초에 버무린 크레송, 얄게 저민 생 래디시는 크게 보탬이 되지 않는 요소였다. 아, 그리고 가운데 저 움푹 들어간 건 손자국인가? 생김새에 결함이 있다면 손님에게 내지 않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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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네 가지 버섯 소스의 오골계 사보야드(Savoyarde, 머스터드와 타라곤 기본 소스에 끓인 닭고기). 간단하게 말하자면 딱딱하고 짰다. 이가 아플 정도로 딱딱했고, 간이 센 서양 음식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소스가 과도하게 졸여져(overreduced)  그런 것처럼 짰다. 왜 굳이 오골계를 써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또한 왜 굳이 써야하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곰보버섯(morel)을 쓰겠다면 말렸을때 질겨지는 기둥은 잘라내야 한다. 또한 허벅지-다리와 그 윗부분의 근육 성질은 다를텐데 왜 일부를 굳이 포함시켰는지도 잘 모르겠다. 앞의 두 요리에 비하자면 이건 여러모로 확실한 실패였다. 먹고 그날 오후 내내 얼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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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도 코스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의도는 높이 사지만 종류와 양의 제한이 없는 건 레스토랑이나 손님 양쪽 모두에게 좋은 설정은 아니다. 많이 먹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 보여주고 고르라고 하는 것도 좋지만, 손님의 회전이나 여건 상 냉장고에서 금방 꺼내 썰어주는 것이라면 또한 맛을 즐기기에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차라리 종류도 양도 레스토랑에서 제한하고, 처음 코스를 손님이 골라 조합할때 그에 잘 맞을만한 걸 추천해서 조금씩 주는 편이 낫다고 본다. 세 종류에 각각 한 점 정도라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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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스에는 정식 디저트가 포함되지 않지만 대신 아뮤즈와 느낌이 비슷한 푸티 푸르를 준다. 이 디저트를 포함, 페이스트리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일반 음식보다 더 높았다. 맛도, 숙련도도 좋았다. 빵이 형편없는 걸 보면 제과 경력자?(극단적인 표현을 썼지만 정말 빵은 형편없었다. 껍질이 거의 없고 전반적으로 질겼다)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겠다. 실수는 할 수 있다. 좀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기술이 딸리거나 재능이 없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를 못하면 곤란하다. 아니, 이해를 못해도 괜찮은데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건 진짜 곤란하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한국 음식은 00해야 해’하는 기준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목록을 양식에 적용해 만들면 실패한다. 양식에는 또 다른 ’00해야 한다’의 목록이 있다. 이걸 받아들이는 것이 모든 움직임의 선결과제다. 맥락의 특수성을 감안할때,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양식당은 ‘부러 가야만 하는 곳(destination restaurant)’이다. 그렇다면 그 선결과제는 각자 해결한 위에 쌓은 음식을 손님에게 내야 한다.

4 Responses

  1. Kwangsu Kim says:

    쓰신 글들을 보면 자주 느껴지는게 가성비 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모든 요리에 유사한, 높은 기준치를 설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하나 지적을 하자면 플레이팅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막 던져놓은 사과 조각에 접시에 묻은 소스? 자국까지..

  2. Kwangsu Kim says:

    향신료 좋죠. 화사한 향이 복잡하게 입에 머무르는 그런 먹음직스러운 콜드디시를 먹은지가 몇년인지…

  3. hy says:

    이곳 이야기는 몇번 들어서 궁금했어요. 근데 사진으로 보니… 일단 코스 세개만 놓고 봤을 때, 뭘 하겠다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아요. 컨셉이 설마 “오늘 이거 다 먹고 쫑”? 런치가 이렇게 헤비(양, 질감, 구성, 모든 면에서)하게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음.

    • bluexmas says:

      복기하면 할수록 엉성한데, 글에는 안 썼지만 서촌 같은 동네에 있고 또 예약 전문이라면서 070 전화번호 쓰는 거 웃기죠. 그 동네 지역번호 하나 받아다 붙여 놓아야죠. 그런데 생각이 못 미치면 어떻게 파인 다이닝을 하겠습니까…